교육적 이상이 아닌 교육적 현실로부터

학생들이 느끼는 학종의 x같음

by 정준민


정시보다는 다양한 평가방식을 활용한 종합평가, 이를테면 학생부 종합전형을 바탕으로 입시가 진행되는 것이 교육적으로 성장을 촉진하기 쉽다는 것에 많은 교육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의 근본적 목적은 선발이 아니라 성장이고, 다양한 역량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다면적인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종합평가를 활용해야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을 촉진하기 더 쉽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가 마무리되고 새로운 교육과정이 개정되고 있는 지금, 수많은 곳에서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논의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진행되고 있다고 필자는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에서 중고등학생을 4년 간 교육하며 만나고, 20대를 대상으로 진로교육을 진행하며 만난 10~20대가 이야기해 준 교육적 현실로부터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교육적 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혹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학자들과 교사들이 교육학적으로 ‘이러한 교육이 맞다’는 소위 ‘좋은 교육’이 무엇인가를 당위적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느껴진 것이다. 학생들이 마주하고 있는 교육적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좋은 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이런 좋은 교육을 하면 학생들이 성장할 것’이라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좋은 교육이 아무리 교육학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현장이 고려되지 않은 좋은 교육은 현장에서 처절하게 실패를 겪게 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학생들이 피부로 느낀 교육적 현실은 학자와 교사들이 이야기한 좋은 교육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1020들은 점차 정치적으로도 이러한 교육에 반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역설적으로 학자들과 교사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육’이 1020의 강력한 저항을 받게 되고, 그 결과 현장에서 필연적으로 정책이 실패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시 확대를 주장한 홍준표가 20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은 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10년만 이런 행태가 더 반복된다면, 우리나라는 공정성 담론에 잠식되어 더 이상 좋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좋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하지 말자는 건가? 도대체 그럼 어쩌자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좋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느끼는 구체적인 교육적 현실을 파악하고, 이 교육적 현실을 변화하기 위해 좋은 교육이 논의되어야만 실제 현장의 교육이 변화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말하는 그“교육적 현실”이 도대체 뭔데?’라는 궁금증이 있을 수 있겠다. 구체적으로 입학사정관제와 학종을 경험한 1020대들이 필자에게 이야기해 준 내용을 통해 실제 1020들이 느끼고 있는 현장의 교육적 현실은 어떠한지를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어차피 학종을 하게 되면 돈 많고 빽 있는 부모 둔 자녀들이 더 유리한 거 아니야?”

“조국 사태를 봐봐.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냥 정시면 이런 일은 없을 텐데”

“결국엔 잘하는 애들만 선생님들이 상 같은 거 몰아줘서 명문대 보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냥 평타치고 이러면 솔직히 학종에서 아무런 혜택이 없는 것 같음.”

“선생님한테 잘 보이려고 아부 떨고.. 그렇게 까지 해야 되는 게 존x 짜증나”

“솔직히 교사 입장에서 교권 높이려고 학종 하는 거 아님? 지들이 수업 못하고, 굳이 우리 입장에서 들을 필요 없어서 안 듣는 걸 학종 이용해서 억지로 듣게 하는 거 아닌가?”

“학종 때문에 재수할 때도 정시 파이 자체가 작으니까... 고등학교 때까지 좀 못했어도, 나중에 극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균충 존나 재수 없음. 농촌에 산 게 뭐 대순가? 솔직히 실력대로 하면 명문대 가지도 못했을 텐데”


이러한 1020의 발화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바, 학생들이 주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주관적 실재) 학종에 의한 교육적 현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종은 돈 있고, 빽 있는 부모를 둔 학생들에게 유리한 불공정하고, 계층이동에 불리한 평가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입학사정관제 시절의 자소서 대필, 돈으로 여러 활동하여 학생부 부풀리기, 숙명여고 쌍둥이 및 조국 사태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는 정시와 학종이 SES의 영향을 받는 수준이 비슷하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건들로 인해 1020에게 이러한 인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 학종이 적용될 때 학종의 혜택을 본 것은 소수의 상위권 학생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70~80%의 학생들은 교사의 ‘차별’을 느끼게 되었다. 이는 교사 입장에서는 수업을 더 잘 듣고, 열심히 한 사람들에게 공정한 대가를 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로 교사들의 추천서나 상 몰아주기 등이 20~30%의 학생들에게만 쏠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많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관행이었겠지만 말이다.

셋째, 학생들은 학종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국 선생님에게 일련의 ‘아부’를 해야 한다는 것에 큰 불만을 느꼈다는 것이다. 물론 이제는 추천서도 없어졌고, 그렇지만 여전히 내신을 잘 받기 위해서나, 상을 받기 위해서나, 학생부에 한 줄을 잘 받기 위해서 아부가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자신의 성장을 위해 정시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냥 정시가 확대되어, 정시로 대학을 갈 수 있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학생들 입장에서는 고등학교에서의 목표는 오롯이 진학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어떤 성장을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학종이 강화되는 것은 그저 교사의 교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 수 있다. 나아가 N수를 통한 극복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균충’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혐오도 해석할 수 있다. 나랑 동 실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살기 때문에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내가 도전할 수 있는 파이를 축소시킨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학종으로부터 파생된 교육적 현실은 물론 학생들의 왜곡된 인식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실질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따라서 1020에게 ‘이러한 교육이 좋은 교육이니, 이런 교육을 하는 것이 맞다’라고 주장하는 것으로는 설득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입장에서는 ‘학자나 교육부가 말하는 교육이 현장에서는 전혀 그렇게 작동하지도 않고, 좋은 것 같지도 않은데 뭔 개소리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의 아이들이나 일반학교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은 70~80%의 학생들은 학종을 기반으로 한 교육에서 오히려 소외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20~30%의 학생들에게 모든 관심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교육과정 개정의 화두인 고교학점제도 이상적으로는 학습자 주도성을 극대화하고, 학생들의 흥미에 맞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현장의 교육적 현실을 고려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우선 학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최우선인 선생님들은 고교학점제에 맞춰 대학이 요구하는 학종의 평가요소에 해당되는 ‘전공 적합성’을 신장하기 위해 소위 상위권을 위한 수업을 학점제를 통해 중점적으로 개설할 것이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명문대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70~80%의 학생들을 위한 수업들은 학점제를 통해 개설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필자가 지역아동센터에서 만나고 있는 학생들이 흥미를 북돋고, 소질을 개발해 줄 수 있는 수업들은 선생님들이 개설할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70~80%는 결국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달리 교육에서 소외되고,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현장의 교육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논의되고 있는 좋은 교육은 현장에서 무기력하다.


위의 사례는 교육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좋은 교육에 대한 논의를 했을 때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앞으로 교육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현장에서 교육의 당사자들이 겪는 교육적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적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좋은 교육이 논의되어야만 현장에서 교육이 실패하지 않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밝힌 교육적 현실을 고려하여 좋은 교육을 논의하기 위해 다뤄볼 수 있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여러 교사들이 필자에게 이야기해 준 교육적 현실도 고려하였다. 교사들도 사실 현장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한 사정이 있지 않은가)


1. 지금껏 입학사정관제와 학종에 의해 현장에서 70~80% 이상의 학생들이 차별받고, 소외되었다. 학종 및 고교학점제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소외되지 않는 교육을 현장에서 교사가 진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교과 진도를 빼야 하는데, 모든 학생들의 수준에 맞춰 교육하려면 교육청이나 정부가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까?

-하위권과 중위권도 참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만들 수 있으려면 교육과정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명문대에 많은 학생 보내기가 목표인 현재 고등학교 상황에서 과목 개설이 상위권을 위한 방향으로만 편중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고교학점제와 입시정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2.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학생들은 학종이 돈 있고, 빽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평가방식이라고 느낀다. 학종이 그나마 공정하게 느껴지기 위해서는 평가방식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교사에게 아부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국/영/수 과목의 내신을 어떤 식으로 평가해야 할까? 최근의 기술적 발전을 이용할 수는 없을까?


3. 학생들은 현재 고등학교에서 명문대 진학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학생들이 명문대 진학만이 아니라 학창 시절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의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그렇게 변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모범생으로서 좋은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된 교사들이 어떻게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을 나오는 것 이외에 다른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게 도울 수 있을까?


필자가 제시한 주제를 넘어서서 학생과 교사의 교육적 현실에 기반하여 다룰 수 있는 주제들이 충분히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진행될 교육적 논의는 학자들과 교사들이 현장의 교육적 현실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이러한 교육적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를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