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누구에게나 느린 순간이 있다.

by Eun

느린 하랑이를 키우며

가끔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90년대 초, 국민학교 6학년 교실.

60명이 넘는 교실에서 나는 7명의 임원 중 한 명이었다.

선생님은 그 7명을 유난히 예뻐하셨다.

우리는 선생님 집에 초대되기도 했고
작은 화분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그 교실에는
매일 지각을 하고
시험에서 늘 평균을 넘지 못하던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매번 그 아이를 앞으로 불러냈다.

회초리로 때리거나, 어떤 날은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기도 했다.

그 아이가 앞으로 나오는 순간 교실은 늘 조용해졌다.


나는 그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만 더 일찍 오면 될 것을,
조금만 더 공부하면 될 것을,

왜 늘 저렇게 반 분위기를 흐리는 걸까.

나는 선생님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선생님에게 예쁨을 받는 아이 중 하나였고,
그 아이는 나와 상관없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스물일곱,
회사에 첫 후배가 들어왔다.

이제 막내에서 벗어나 내 디자인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배는 모든 것이 느렸다.

나의 업무는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더 늘어난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 후배에게 말했다.

“내가 언제까지 너를 참아줘야 하니?!”

하랑이 반 아이가 했던 그 말을 나도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실의 아이도, 그 후배도

아마 조금 느린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얼마나 빠른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아주 느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느린 순간이 있다.


어떤 사람은
어느 과목에서만 뒤처지고

어떤 사람은
조금 늦게 사회에 나가고

어떤 사람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의 길을 찾는다.


그 시간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간이다.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친구에게 괜찮냐고, 아프진 않냐고 묻고 싶다.

후배에게 천천히 다시 해보자고 말해줄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작은 자리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다.


하랑이의 자리를 만들어준 것은
교실 한쪽에 놓여 있던 작은 체스판 하나와

심판으로 끼어주던 친구의 다정한 한마디,

그리고
아무 망설임 없이 웃으며 건네는

배움터 아이들의 인사였다.

작가의 이전글왜 우리만 참아줘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