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통화 가능하실까요?”
담임 선생님의 문자였다.
이런 문자를 받을 때면 가슴이 먼저 두근거린다.
하랑이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에서도 특수교육대상자로
일반반 완전통합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3, 4학년의 우울한 시기를 지나
5, 6학년 좋은 담임 선생님들과 친구들을 만나며
아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느린 학습자 커뮤니티와 배움터에서
비슷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랑이는 다시 밝아졌다.
자신감도 조금씩 돌아왔다.
하랑이는 낯가림이 없다.
처음 만난 친구에게도 먼저 다가간다.
중학교 입학 첫 주,
하랑이는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다.
함께 자장면을 먹고 카페에도 다녀왔다.
나는 웃으며 이야기를 들었지만
마음 한쪽은 늘 조심스러웠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하랑이의 다름을 알게 되면 조금씩 멀어질 가능성이 크다.
좋은 아이를 만나면
친구라기보다 그저 받아주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하랑이의 순수함을 이용하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관계를 늘 조심스럽게 바라본다.
음악 시간.
하랑이는 음악반장을 하겠다며 손을 들었다.
여러 아이가 손을 들었고
가위바위보 끝에 하랑이가 음악반장이 되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교실을 찾지 못해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다.
하랑이는 괜히 했다며 며칠 동안 울면서 학교에 갔다.
그런데 다음 음악 시간에는 웃으며 돌아왔다.
선생님께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반장 하길 잘했어.”
도움반 선생님이 하랑이의 특성을
각 과목 선생님들께 전달해 주셨고
그 뒤 음악 선생님이 아이를 격려해 주신 모양이었다.
첫 주 특교자 개별화 회의.
나는 긴장 속에서
아이의 특성을 설명할 자료를 준비했다.
음악 선생님께 드릴 짧은 편지도 썼다.
나는 늘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랑이의 교육권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의 수업권과 다른 아이들의 교육권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고.
모두가 힘들어지면 하랑이가 원하지 않아도
도움반에 내려가야 할 수도 있다.
음악반장 역시 언제든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하랑이에게 성공 경험을 주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나의 욕심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두 선생님은 하랑이의 열심을 응원해 주시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의 연락이 왔다.
급식 배식을 하던 날이었다.
하랑이는 배식을 하며 반찬을 자꾸 흘렸고
그 모습이 못마땅했던 한 아이가 화를 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선생님께 찾아와 말했다고 한다.
“하랑이는 왜 도움반에 안 내려가요?”
“정상이 아닌 걸 아는데,
왜 우리만 참아줘야 돼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였다.
아이들은
하랑이를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 역시
오랫동안 참아왔을지도 모른다.
결국
하랑이는 급식 당번을 내려놓았다.
하랑이는 느리다.
하지만 그것이
정상의 범주에 들지 않는 것일까.
느림은 비정상인 것일까.
나는 언제까지
하랑이를 이해해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랑이는 언제까지
일반반에서 함께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살아가는 일은
누군가 한 사람의 이해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
오늘도
나는 그 자리에서
아이의 하루를 함께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