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품고 다시 걷기, 토론토에서
오늘 다시 로즈데일 계곡 속으로 들어가, 계곡에서 이어지는 다른 트레일을 따라 에버그린 브릭웍스-Evergreen Brick Works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계곡에서 빠르게 걸으면 30분 남짓에 닿는 거리. 바쁨을 이유로 1년에 한두 번 갈까 말까 하던 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곳에 갔던 때를 떠올려보니 벌써 2년 전. 오늘 그 길을 걸으며 지난 시간 내가 얼마나 숨 가쁘게 살아왔는지가 문득 실감 났다.
눈은 거의 사라졌고, 길은 조금 질척였지만 걷기에 무리는 없었다. 평일 낮의 숲길은 여전히 한산했고, 녹음이 우거지지 않은 겨울은 자연이 스스로의 본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계절임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트레일 끝에서 맞이한 Evergreen Brick Works는 토론토의 대표적인 장소다. 매주 토요일이면 파머스 마켓이 열리고,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붐비는 곳. 한때 토론토의 벽돌 10만 장 이상을 생산하던 채석장을 생태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주로 여름이나 가을, 풍광이 가장 빛날 때 이곳을 찾곤 했다. 그런데 봄이 오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할 계절, 회색빛의 겨울과 봄 사이에 마주한 브릭웍스는 마치 이 도시의 생생한 속살을 보는 듯해 낯설고도 정겨웠다. 공원 안의 높지 않은 언덕에 오르니,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문득, 이 연재를 프롤로그도 없이 시작했던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 여정을 프롤로그 없이 시작했다.
돌아보면 아마도 시작을 준비할 겨를조차 없었던 시간들이 먼저 나를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고 이후의 시간을 정리하며 쓴 글, <토론토의 겨울―백수의 시간에서 남은 것들> 은 작년 말에 쓴 것이고, 올해 1월 말 본격적으로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며 올렸으니 그 글이 자연스레 프롤로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백수의 시간 동안 두 달 남짓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읽히고, 응답받으며 나는 참 많은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배우게 되었다.
문득 돌아보니 이 글들은 어느새 나의 백수의 시간을 정리한 작은 기록의 지도처럼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쉽지 않은 시간을 견디게 해 준 수많은 응원과 격려에 깊은 감사의 마음뿐이다.
브런치를 처음 본 것은 몇 년 전이었다.
근사한 로고도, 일상을 섬세하게 엮어낸 글들도 마음에 오래 남아
‘언젠가 나도 여기에 글을 올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캐나다에서의 삶은 글 한 편을 쓸 틈조차 줄 만큼 버겁게 흘러갔다.
게다가 영어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나를 늘 옭아맸다.
나는 여전히 부정할 수 없다.
디아스포라로서 영어는 나를 측정하는 굉장히 중요한기준처럼 느껴져 왔고,
성공을 유지하거나 더 큰 성공으로 나아가는 잣대 일수 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래서 한국어 쓰기를 스스로 제한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리고, 예상치 못한 과분한 위로와 응원을 받으면서 나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제국의 언어’에 대한 강박을 스스로 찢고 나올 수 있었다.
이 두 달은 어쩌면 나에게 하나의 '해방일지'에 가까웠다.
내가 가장 편안한 언어로 나의 세계를 표현하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곳에서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느린 계절의 토론토를 기록하는 동안, 나는 천천히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이것이 아마도 이 백수의 시간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박사과정 지원은 또 다른 선물을 안겨주었다.
두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한 곳에서 지난달 합격 통보를 받았고, 다른 한 곳은 인터뷰 요청이 왔다.
이미 하나의 오퍼를 수락한 이후였기에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또다시 기다리고 결정해야 하는 과정 자체를 더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응시와 그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은
어떻게 포장하든 참으로 피로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곳 모두 합격해 ‘좋은 문제’—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를 맞닥뜨리는 상황 또한 원치 않았다.
어찌 됐건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합격의 안도감을 느낀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성공과 실패의 기준 안에서 오래 살아온 습관이기도 하고,
이 나이에까지 질문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 애쓴 집념에 대한 조용한 보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캐나다 이민 생활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50대에 두 번의 학교 생활을 이미 경험했다. 그리고 올가을, 60대의 캠퍼스 생활을 다시 앞두고 있다.
처음 한국에서 대학에 입학한 것이 1986년, 정확히 40년 전이다.
40년 전 86학번이었던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캐나다라는 반대편 땅에서 2026학번으로 다시 캠퍼스를 걷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전혀 다른 대륙, 전혀 다른 언어, 전혀 다른 나이로 다시 학생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원점 회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굳이 예순의 나이에, 6~7년의 고된 과정을 또다시 선택했을까?
합격의 기쁨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한 이 고된 여정을 왜 예순의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질문이 이 ‘백수의 시간’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특권이었다.
멈춰 있었기에 가능했던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나를 다시 앞으로 걷게 만든다는 사실.
나는 아직 답에 도달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과정 속에 머물고 싶다.
올 가을 시작될 새로운 여정에서 나는 답보다 질문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금 더 좋은 질문, 조금 더 멀리 보게 해주는 질문.
그 질문을 품고 또 한 계절을 걸어가고자 한다.
돌아보면 모든 길은 질문의 자리로 이어져 있었다. 이제 다시 그 자리에서 시작하려 한다.
멈춤이 허락한 사유의 시간 속에서 얻은 이 작은 빛을 품고,
나는 다음 계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