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건너는 사람들

건너온 사람, 건너가는 사람

by 느린 계절

토론토의 날씨는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초 화창한 날씨로 봄을 알리는가 싶더니 주말에는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 들어서는 하루 걸러, 아니 거의 매일 눈이 이어지고 있다.
10여 년 전, 정확히 이맘때 캐나다에 살기 시작하며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던 시간이 문득 떠오른다.

지난 주말, 토론토에 있는 한국교육원에서 주최한 올해로 20번째로 열리는 ‘한국어 스피치 경연대회’에 다녀왔다.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가까이에서 소식을 접하고도 직접 참여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K-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규모가 클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마주한 풍경은 예상보다 더 활기찼다. 열 개가 넘는 다양한 스폰서와 한국 간식, 기념품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은 축제처럼 느껴졌다.


언어를 건너는 사람들


토론토, 아니 캐나다 전역에서 한국어의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하다. 몇 해 전 노인학 연구소에서 만난 인도의 한 연구생이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모두 알고 즐겨 부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것은 BTS가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전의 일이었다.

이문세는 한국에서도 나의 세대에 가까운 가수인데 당시 20대였던 그 연구생이 30여 년 전 노래를 좋아하는 게 신기했다. 그 연수생은 가사의 의미가 좋다고 했다.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려면 한국어 학습이 필요했을 텐데 그 연구생은 기꺼이 한국어학습을 한다고 했다.
이미 토론토의 여러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는 늘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고, 수백 명의 대기자가 있다는 이야기 또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날의 경연대회는 그 모든 이야기를 눈앞에서 확인하는 자리였다.
백 명이 넘는 신청자 가운데 예선을 통과한 참가자들이 각 레벨별로 무대에 올랐다. 짧게는 1분, 길게는 3분 남짓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한국과 관련된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가자들의 한국어 실력이었다. 단순히 말을 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외국인 관련 일을 하며 영어를 배우고 유지하는 일은 거의 의무에 가까웠기에 때로는 강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캐나다로 이주한 이후 영어는 일상어가 되었지만, 일과 학업 속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일은 나를 증명하고 인정받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종종 영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머물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영어는 나에게 애증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언어는 나를 더 먼 곳으로 데려다주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확장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언어를 통해 평가받고 규정되는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권력의 구조 속에 놓여 있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그 언어는 끝내 나를 온전히 편안하게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날, 비한국인들이 나의 모국어를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자신의 언어처럼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해방감이 스쳤다.
그들 속에서 나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영어를 익히기 위해 기울였던 나의 오랜 노력과 그 과정에서 느껴야 했던 욕망과 소외의 감정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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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K-pop과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가장 큰 이유였고, 한국인 친구나 배우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를 접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의 10대가 떠올랐다.

내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쩌면 학교 교육이 아니라 팝송이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이 되면서 처음으로 팝송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영어는 시험 과목이 아니라 흥미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에는 팝송을 많이 들을수록 영어 실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열심히 음악을 찾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한국 대중문화는 빠르게 성장했고, 한때 우리가 따라가던 문화는 어느 순간 중심으로 이동했다.
이제 그것은 단순한 흐름을 넘어,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하나의 낯선 거울처럼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날 무대 위에서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참가자들의 모습은, 그 거울이 얼마나 멀리까지 닿아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언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문화와 세계를 향해 스스로를 열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지나온 시간의 한 장면이자 디아스포라의 한 단면처럼 느껴졌다.




최근 K-pop과 그 서사를 애니메이션으로 확장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흔히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글로벌 성공의 서사로 읽히곤 한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이해해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

그 점에서 이 작품은 하나의 디아스포라 서사처럼 읽힌다.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 놓인 채,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나 그 사이의 긴장과 간극 속에서도 자신과 화해해 가는 과정.

그 과정은 단순한 순응이나 타협이 아니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며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위치 지으려는 하나의 응전이기도 하다.

그날의 무대가 바로 그와 닮아 있었다.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어라는 또 다른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그 언어 속에서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언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랬듯 지금도 계속해서 자신이 속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언어를 건넌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 사이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조율해 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들이 건너가고 있는 언어의 방향과는 다른 쪽에서,
이미 하나의 언어를 건너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 하루였다.


Speech  6.jpg 한국어 스피치 콘테스트가 열린 토론토대학교 (St. Geoge ) 다운타운 캠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