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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13. 2024

굽은 길은 굽게 간다

나태주 시 <사는 일>

늦잠을 잘까 살짝 고민되는 일요일 아침, 절친 언니와 오전 9시경 만나 공주로 향한다. 오늘 행선지는 풀꽃시낭송대회가 열리는 공주하숙마을 인근 풀꽃문학제 행사장. 그녀와는 같은 직장 동료이기도 하고 낭송과 낭독을 함께 하는 터라 30여분 운전을 하는 동안 즐거운 수다가 이어진다. 공주 하숙마을 근처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가을 분위기가 물씬 묻어나는 시화작품들이 반긴다. 문학협회 회원들의 작품이다. 바로 옆 공터에 낭송대회를 위한 소박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한복과 원피스 등 시 분위기와 어울리는 다채로운 의상을 입은 본선무대 출연자들과 동행한 이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 경연 참가자는 총 20명. 나태주시인의 지정 시 중 한편을 골라 배경음악에 맞춰 낭송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살짝 뜨거운 햇살이 내리 쪼이는 가을날 아침. 무대 앞에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시낭송 경연을 감상한다. 경연 참가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끊임없이 시를 읊조리고 응원군들도 시 원문을 들여다보며 덩달아 마른침을 삼킨다. 한편 한편 낭송이 끝날 때마다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서 <사는 일> <가을서한> <대숲아래서> <아우내의 별> <오늘의 약속> 등 다양한 시를 다채로운 목소리로 만날 수 있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이 사람은 목소리가 좋다, 저 사람은 낭송을 잘하네 나름 머릿속으로 등수를 헤아려보기도 한다.


10여 명쯤 경연을 마친 후 어린이 낭송자 3명이 깜짝 출연해 귀를 즐겁게 해 준다. 기교는 없지만 담백한 낭송이 오히려 더 감성을 자극한다. 시 원문에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읊는 남학생의 낭송에는 박수가 절로 터져 나온다. 어떤 느낌으로 시를 낭송을 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처음 읽었을 때 감동을 받았고 그 느낌을 살려 낭송하려고 노력했다"는 초등학생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다시 10명의 경연이 이어진다. 간혹 연 하나를 통째로 빼먹기도 하고 엉뚱한 시어가 튀어나오거나 잘 읊조리다 발음이 꼬이는 경연자도 있어 아쉬움을 자아낸다. 10여 년 전 처음 시낭송을 접했을 때 설렘과 대회 출전을 할 때마다 느꼈던 긴장감과 설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오늘 들었던 여러 편의 시중에서 나태주 시인의 <사는 일>이라는 시가 유난히 가슴에 스며든다. 삶을 길을 걷는 여정으로 형상화한 따듯한 시이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길은 곧게 가고, 때론 나를 싣고 갈 차가 제 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한다는 시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시구를 시인의 마음을 최대한 담아내려 최선을 다해 읊조리는 그녀들 덕분에 모처럼 힐링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게 되는 귀한 시간을 선물 받는다. 한동안 잊고 있던 시낭송의 즐거움과 삶에 있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다시 한번 떠올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20명 경연자들의 열띤 낭송이 막을 내릴 즈음, 자연스럽게 <사는 일> 시 제목을 메모한다. 외우고 싶은 마음에서다. 때론 내 의지와 다르게 펼쳐지는 일들 탓에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삶의 순간들을 채우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또 다른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며 열심히 살아내는 나에게 오늘도 이렇게 잘 살았다고 토닥토닥 위로해 주는 시가 가슴 한편을 다정하게 채운 까닭이다.


경연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을 뒤로하고 근처 카페로 걸음을 옮긴다. 햇살은 따사롭고 제민천을 따라 걷는 느릿한 발걸음이 여느날 보다 더 여유롭다. 때론 청아하고 때론 세월의 무게가 가득 배어나는 낭송들 덕분에 모처럼 귀호강을 한 덕분일 것이다. 사는 일 별거 있으랴. 시인의 말처럼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어간 덕분에 곧게 걸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개울가에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의 쪽빛 날갯짓도 보는 일, 그것 또한 행복이고 사는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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