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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3. 2025

시간이 답

만남과 이별

12월의 마지막주 대규모 정기 인사가 이뤄졌다. 매해 이루어지는 연례행사다. 내 이름이 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직장인에게 인사는 늘 초미의 관심사항이기도 하다. 인사 발표일이 되면 아침부터 게시판에 인사 파일이 올라올 때까지 긴장이 이어진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카더라' 통신에 귀가 쫑긋해지고 수시로 게시판을 클릭한다. 그즈음이 되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마치 바람난 풍선처럼 떠다니는 직원들도 있다. 본인이 승진이나 전보 대상이 될 경우는 더욱 그 증상이 심해진다. 가벼운 종이 한 장에 의해 봄꽃처럼 활짝 웃기도 하고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처럼 슬퍼하는 것이 직장생활. 물론 아쉽게도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 희망하지 않는 부서나 본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가 있는 부서로 발령이 나거나 근무평정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뒷사람에게  밀려 승진에 누락되거나 등등.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이번 정기인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 중에 1/3이 전보 발령을 받았다. 전보 제한 기간을 훌쩍 넘겨 가려니 했던 직원도 있지만 몇 명은 의외의 이동이다. 본인들조차 당황스러워하는 눈치이다. 만남에는 이별이 따르고 헤어지면 또 반드시 만난다는 삶의 이치를 알고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이별은 늘 더 큰 아쉬움을 남기기 마련. 더구나 본인이 전혀 원하지 않는 부서나 격무 부서로의 이동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오후 5시가 넘어 인사 발령이 게시판에 올라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탄식과 비명이 터져 나온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대는 직원들이 제법 많다. 심경이 복잡하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업무에 좀 익숙해져 내년에는 좀 더 잘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경력자들 자리에 신규 직원들이 배치되었고 이동폭도 큰 까닭이다. 누구나 시작하는 시기가 있지만 신규를 가르쳐 업무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된다. 다행히 잘 적응하고 분위기에도 잘 어우러지면 좋겠지만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 않길 바랄 뿐.


퇴근하면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치맥을 할 직원들이 있으면 시간을 함께하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건넸다. 이내 직원들이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약속장소를 말해준다.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에서 갑자기 함박눈이 탐스럽게 쏟아진다.  가는 날이 장날이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더욱 무겁고 심란해진다. 소위 기피부서로 발령받은 직원이 연신 한숨을 내쉰다. 평소 주량보다 훨씬 술을 더 먹는데도 취하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아 안쓰럽다. 이렇게 떠날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을 썼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생각보다 덜 힘들지도 모른다며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 말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뿐임이 안타깝다. 창밖으로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다. 이러다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앞설 무렵, 집에서도 전화가 두어 차례 걸려온다. 눈이 많이 내렸으니 차를 놓고 오라는 안부 전화이다. 대충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이내 직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나 또한 30여 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매번 익숙해진 자리와 사람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업무가 어려워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같이 근무하는 상사와 마음이 맞지 않아 하소연하던 날들도 있다. 그때마다 곁에서 따스하게 말을 건네주고 보듬어 주는 이들이 있어 잘 견뎌왔다. 사실 직장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일보다 사람이라고 말한다. 일은 날을 새워서라도 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 개선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탓이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 자리에는 새로 발령받는 직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데 늘 그 느낌이 다르다. 다른 부서로 발령받은 팀장 한 명이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가기 싫다는 말을 연발하며 억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할 것이라 믿지만 나 또한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다. 삶에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를 꼽는다면 만남과 헤어짐이 아닐까. 이 또한 시간이 답이라 여기면서도 못내 함께했던 직원들의 뒷모습이 진하게 가슴에 남는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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