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할 수 있어"라는 문자에 하얀 불안이 스며있다. 다른 때 같으면 지극히 평범한 문자인데 말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해져 그녀에게 바로 전화를 건다. 대뜸 대형병원에 아는 지인이 있는지 묻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누군가 아프다는 말이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하며 심난해한다. 나 또한 갑작스러운 소식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너무 열심히 사는 것이 병인 그녀다. 나이는 나보다 네 살이 어리지만 늘 언니처럼 가족들을 챙겨주는 사람이다. 형제 중에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둡고 대충 사는 나와는 많이 다른 야무진 그녀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산 죄밖에 없는데 삼십 대 중반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만큼 큰 병으로 여러 개의 산을 만났지만 누구보다 의연하고 씩씩하게 이겨낸 대견한 사람. 이제 그 어렵고 힘겨웠던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데 또 다른 먹구름이 덮쳐온 것일까. 오래전 외었던 나태주 시인의 시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가 스쳐 지나간다. 나태주시인이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인데 아내를 위해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느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중략)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진단에 누구보다도 당황스러웠을 그녀에게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퇴근 무렵이 지나서야 전화를 걸었는데 여러 군데 병원에 일단 예약을 해놨다고 말하는 그 목소리가 사뭇 담담하다. 이미 삼십 대 중반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본 탓일지도 모른다. 15년 전 암진단을 받던 날 전화를 걸어왔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왜 하느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죄밖에 없는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의 주사위를 던지신 것일까 원망하는 마음이 절로 인다.
새로운 365일을 선물 받는 날, 누군가는 산에 올라 어떤 이는 바다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며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이루고 싶은 소원을 간절하게 기원하는 의미 있는 첫날 그녀는 다시 환자복을 입고 입원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다. 검사 결과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며 엄살조차 떨지 않는 담담한 목소리에 가슴이 더욱 저릿해진다. 신은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말이 있던데 이번에도 분명히 그녀는 씩씩하게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나 또한 오그라든 가슴을 살며시 다독거려 본다. 한겨울인데 봄날처럼 햇살이 따스한 날이다. 올 한 해 그녀에게도 봄볕처럼 따스한 일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일들만 가득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하느님! 제발 그러지 마시어요.
본인의 안위보다 가족들의 따듯함을 더 먼저 생각하는 그녀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지독한 병마를 씩씩하게 이겨낸 그녀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않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