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따의 소신발언
'내외법(內外法)'이란 '남녀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조차 못하도록 금지하는 제도'로서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풍습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제도 덕분에 남녀 간의 신체적 접촉은 물론, 대화도 제약이 있었으며, 심지어 부부관계에서도 남녀가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내외담'이란 담벽으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를 분리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여성들은 외출 시에도 얼굴과 몸을 장옷이나 쓰개치마로 가리고 다녀야 했는데, 사실상 남성보다도 여성에게 더욱 불리하고 강압적인 제도였다.
현재야 시대가 많이 변했기에 남녀 간의 접촉이나 교제도 자유로워지고, 여성도 노출 있는 옷 좀 입는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까지도 과거 내외법의 잔재와 여파가 얼핏 얼핏 남아있긴 하다. 불과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중고등학교는 남/여학교로 나뉘어 있었다. 설령 남녀공학 학교에서 마저도 남녀분반 시스템을 유지하여 철저히 남녀를 격리시켜 놓았던 사회적 배경이 존재했던 덕택에,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여전히 미개한 사회 문화와 분위기가 잔존하고 있는데, 이는 연애 문제에서도 미세하게 답습되고 있다.
필자가 초등학생 때에는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당시에 유행했던 남학생들의 여학생들을 향한 호감 표현 방법들은 모두 '괴롭힘'으로 시작했다. 정확히는 본인이 좋아하는 여학생을 끊임없이 괴롭혀서 관심을 끌어보는 그릇된 호감 표현 방식이 유행이었다. 가령, 잊을 만하면 여학생을 때리고 도망간다던가, 큰 소리로 '아이스께끼'라고 크게 외치며 뒤에서 몰래 치마를 들춰보고 도망가는 등, 애정 표현을 가장한 성범죄가 잦았다. 이 남자아이들이 여기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중고등학생으로 자란다면 동급생(심할 경우 교사 및 교직원까지)의 신체를 두고 지저분한 이야기를 동성 친구끼리 낄낄거리며 나누고, 섹스를 포르노로 배우며 왜곡된 판타지를 품게 되고, 군대를 가면 출타 나갈 때마다 성매매 업소를 들락거리며 전우끼리 영웅담 늘어놓듯이 썰을 풀게 되고, 회사에서는 농담이랍시고 여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남발하게 되고, 여기서라도 멈추지 못하고 더 심해지면 몰카범, 스토킹범, 데이트 폭행범, 강간범 등 성범죄자들이 되는 것이다.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현재는 위 행위들 모두 엄연히 성범죄로 분류되는 세상이 왔기에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우린 그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요즘은 위에서 언급했던 직접적인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남자들이 호감 있는 여성들에게 특히 갓 대쉬를 할 때 아직까지도 과거 미개했던 사회 문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음이 얼핏 보인다. 필자는 현재 20대 후반으로 미개했던 어린 시절을 함께 경험해 본 비슷한 세대의 남자들이 여성에게 호감 표현하는 방법들을 보고 듣다 보면 참으로 개탄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본인의 자산, 학력, 인맥 자랑이라던가, 아직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설픈 카톡질로 뜬금없이 보자고 불러내려 한다던가, 물어보지도 않은 본인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관심을 받으려 한다던가. 나이를 서른 가까이나 먹고도 연애가 이렇게 서투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이성을 마주하고 얘기해 보는 과정을 지혜롭게 거쳐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어렸을 때 시행착오를 겪어봐야 올바른 시기에 매력 있는 남녀로 거듭날 수 있는 법인데, 애당초 이전 시대상이 잘 배우지 못하고 강압적인 시기였기에 현재에 이르러 이러한 부작용이 생겼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흐르는데 성(性) 인지 수준은 그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지 못하고 흐르다 보니,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를,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를 서로 이해를 못 하고 불쾌감만 들고,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갈등의 골은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깊어져만 가고, 남/여성 혐오가 사회적으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 학교든 직장이든 그 외 종교 시설이든 앞으로도 이거 반성 못하고 못 고치면 젠더 갈등, 성차별 문제 해결의 미래는 그냥 '노답'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지금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래도 '내외법'을 채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