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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의모든지식 Aug 03. 2021

아디다스 슈퍼스타의 탄생

[아디다스 시리즈 #6]

아디다스가 농구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아디다스가 창립된 1949년이었다. 이 농구화는 미국 육군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주로 농구경기을 위한 용도였는데, 요구사항은 안전한 신발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디는 바닥은 쿠션을 넣어 편안하게 하고 토캡은 단단하게 만들고 뒤꿈치와 발목 패드를 장착했다.

1955년에는 독일 농구 연맹과 협력하여 신발을 개발했다. 1908년부터 출시된 캔버스 운동화와 비슷한 디자인이었는데 내부에 환기구가 2개 있었고 아디다스 고유의 삼선이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1960년대, 아디는 유럽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거대한 잠재시장이던 미국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다슬러의 미국 자문이던 크리스 세번에게 조언을 받게 되었다. 농구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았던 크리스 세번은 1900년대 초부터 농구화는 캔버스 기반 디자인이 대부분이었고 많은 선수들이 발목과 무릎 부상을 당한다는 점을 말해줬다. 그렇게 호르스트와 세번은 다양한 기술자들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농구화를 만들게 되었다. 

천으로 만든 농구화가 대부분이던 당시 기존 농구화보다 튼튼한 가죽 농구화. 안정성을 개선하고 다른 신발보다 30% 가벼운 ‘쉘 솔’, 발 앞 부분의 마모를 줄이기 위해 고무 재질로 만들어진 ‘쉘 토’로 구성된 아디다스 슈퍼그립이 1964년에 탄생한게 된다. 하지만 이 신발은 잘 팔리지 않았다. 당시 선수들과 코치들 머릿속에 있는 농구화는 캔버스가 전부였고 가죽이 가볍고 유연하다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샌디에고 로켓의 코치였던 잭 맥마흔은 3명의 선수가 코트에서 미끄러져 부상당하게 되자, 가볍고 안전하다는 아디다스의 슈퍼그립을 써보기로 결정했다. 샌디에이고 로켓의 선수들에게 아디다스 슈퍼그립은 신세계였다.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많은 팀들이 슈퍼그립을 찾게 되었다.

1969년, 아디다스는 슈퍼그립을 리뉴얼하기로 결정했다. 슈퍼그립은 큰 성장을 거뒀지만 이름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바로 아디다스 최고의 스테디셀러, ‘아디다스 슈퍼스타’. 

이후 슈퍼스타를 위한 슈퍼스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카림 압둘 자바와 25,000달러에 계약했다. 그렇게 슈퍼스타는 1970년대 NBA에서 가장 성공적인 농구화가 될 수 있었다.

NBA LOGO의 주인공을 아는가? 역대 최고의 슈팅가드 중 하나인 LA 레이커스의 제리 웨스트다. 그는 1973년 25,000 포인트를 기록한 세 번째 선수가 되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그가 신었던 슈퍼그립을 금으로 장식했다.

하지만 농구화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에어조던 같은 기능성과 안전성이 뛰어난 농구화들이 등장하고 슈퍼스타는 농구화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러던 1980년대, 전설적인 힙합 그룹 Run DMC가 슈퍼스타를 신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슈퍼스타는 스트릿 패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여러 후속 모델이 꾸준히 출시되며 패션 분야를 확장시켜 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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