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직도 커리어도 전문성도 싫어요

요즘 것들의 투정이자 비밀고백

지금껏 힘들게 투쟁하여 살림을 마련하고 번듯한 가정을 세워온 5060년 대생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생떼인지 안다. 그래서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한 고백이다. 실은, 너무 일 하기 싫다.


이직을 하면 이직처에서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내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증명해내야 한다. 이직을 하기에 앞서 커리어 고민을 해보자니 어떤 길로 가든 고생길이 훤하다. 이제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일까, 어딜 가든 장단점이 있다는 걸 잘 아는데 단점을 꺾을 만큼의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 없었는데 생기지 않는 건지 원래 있었는데 사라진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없다는 사실뿐.


그리고 전문성.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전문 자격시험이나 특정 직업군을 선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 또한 전문성에 혹해서 지금 씬에 들어왔고, 전문성을 쌓으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다. 그리고 짧게나마 갈아본 결과 나의 체력은 평균 미달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평생을 평균과 평균이상을 상회했기에 이 미달이라는 값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뭐든 다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체력 때문이라도 꿈같은 말이라는 걸 배워버렸다. 여전히 지금 하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더 치열하게 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체력도 고갈되어 버렸다. 이렇게 소진된 좋아하는 마음이 애처로울 따름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 내가 가장 쉽게 쫓는 감정은 '질투'다.

학창 시절 교탁 앞에만 서면 유재석과 박명수가 번갈아 빙의하던 반 친구를 사실 많이 질투했다. 그가 나를 제치고 반장이 되었을 때는 더더욱. 나는 열심히 접어둔 쪽지 속 호언장담을 부들부들 떨면서 읽었고 부반장이 되었다. 이 질투를 인정하지 못할 때는 참 괴로웠다. 반장의 사소한 한마디도 괜히 비꼬는 것처럼 들렸으니. 그 괴로움을 벗어나고 싶어 그의 장점을 인정하고 나니 배배 꼬인 실이 풀리며 방향이 보였다. 나도 연습해 봐야지, 따라 해 봐야지, 하길 십수 년. 이제는 PT에 떨지 않는 과장이 되었다. (신입사원 시절 갑자기 시킨 PT를 너무 잘했다고 부사장님께 칭찬받았다. 하하)


그런데 요즘 아무것에도 질투가 나지 않는다. 조직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하고 임원이 되는 사람. 멋지지만 부럽진 않다. 성실히 돈을 모아 투자공부를 해 또래대비 빠르게 자산을 불리는 사람. 부럽지만 질투나진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직장에 다니지 않고 꿈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 진심을 다해 존경하고 응원하지만 나에겐 성공해 낼 배짱도 두둑한 지갑도 없다.


무언가 변화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으면 불안에 떨며 고통을 찾아다니던 시절을 지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이 낯선 계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또래 친구에게 이야기하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글러먹은 요즘 것들의 나태함과 배은망덕일까...


그 와중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질투를 발견하고 그 빛을 따라가 보려고 오늘도 글을 쓴다. 이 비밀스러운 고백들 덕에 이 브런치 계정을 주변에 알리지 못하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세상 어딘가의 영혼의 친구에게 닿길 바라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은 고통과 권태, 둘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