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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에마 Sep 12. 2024

생각이 많아 글이 안 써지는 날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가득 차서 의욕이 넘칠 때, 오히려 글이 써지지 않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나는 그런 경험이 꽤 많다.

생각은 많고, 아이디어는 넘치는 데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무것도 안 나온다. 머릿속에서는 막 글이 써지는 것 같은데, 막상 타자를 치려니 멍, 멍하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 상황인가!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심리일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글이 안 써진다는 건 말 그대로 모순이다. 글을 쓰려면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생각이 많아서 글이 안 나온다니! 이거야말로 모순덩어리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가 내 삶에 은근히 자주 나타나고 있다.     


평소 요리를 잘하지 않지만 가끔 정말로 가끔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막 넘쳐날 때, 재료가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서 주방 한가운데에서 멍하니 서 있었던 경험이 있다.  

    

채소를 먼저 썰어야 하나, 고기를 구워야 하나, 양념은 뭐 넣고 언제 넣지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주방을 떠나고 만다. 역설적이게도 웃프다.


나는 ‘선택의 풍요로움이 나를 묶어버린다’는 것으로 잠정 결정을 내린다.     


아이러니는 이렇게 우리의 창의력에 도전장을 내밀곤 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오히려 글이 써지지 않는 상황은, 마치 한가득 물이 들어있는 컵을 들고 있는데, 마실 엄두가 나지 않는 것과 같다. 요 며칠 그랬다. 아주 복잡했다.     


물이 가득해서 넘칠 것 같으니, 아예 마시기를 포기하는 셈이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이 상황이 나를 오히려 갈증 나게 만드는 역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를 고민해 보았다. 의외로 간단했다. 마음속의 복잡함을 잠시 멈추고, 제일 작은 것부터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을 때는 그 생각들을 하나로 몰아서 ‘일단’ 해보는 것. 꼭 완벽한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첫 줄이 이상하든, 두 번째 줄이 엉뚱하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타자를 쳐서 첫 글자를 화면에 올리는 것이다.     


마치 짐이 너무 많아 가방을 못 싸고 있을 때, 일단 양말 한 켤레를 넣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의외로 가방에 들어갈 자리가 많다는 걸 알게 되고,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 신기하게 일이 술술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글쓰기도 똑같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많아서 못 쓰는 게 아니라, 생각이 많기 때문에 더 작은 생각부터 쓰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한 문장을 쓰다 보면,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끌어오고, 결국 내 생각들이 하나하나 펼쳐지기 시작한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둘 풀어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생각이 많아 글이 안 써진다니! 참 웃기지만, 이 모순된 상황이야말로 글쓰기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지 말자고 되뇌어 본다.     


생각이 많다는 건 내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가득하다는 뜻이고, 그 생각들이 조금씩 흘러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글을 쓸 준비가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믿고 그 첫 문장을 적어보자.   

  

그래서 모순도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이 많아서 글이 안 써진다는 아이러니를 깨닫고, 나는 그 역설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한다. 결국, 생각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글은 첫 문장에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그 한 문장이 다음을 문장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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