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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conut Dec 12. 2021

의대를 꿈꾸다

어쩌다 영어 공부는 큰 고민이 없어졌지만 주요 과목인 수학이 문제였고 이를 해결하고자 대치동에서 아는 사람들만 아는 비밀의 유명한 수학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아무나 과외를 하지 않고 시험을 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만 가르쳤고 주로 전교 5등 안에 드는 친구들이 해당했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선생님은 과묵했지만 카리스마 넘쳤다.

시험 문제들은 흔히 푸는 학교 시험 유형이 아니고 근본 원리를 물어보는 문제들이었다.

물론 나는 40명의 반 친구들 중에서 10등 수준이었으니 당연히 선생님의 시험 문제를 거의 다 풀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합격했다.

(나중에 대학교까지 졸업한 뒤에 만나 저녁을 먹으며 물어보니 공식을 외워서 푸는 다른 애들과 다르게 창의적으로 해결하였고 이 점을 높게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보통 과외는 1대 1로 진행하지만 공부 자극을 주기 위해 전교 1등 친구와 1대 2 과외를 진행하였다.

물론 전교 1등 친구는 갑자기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는 공부 못하는 친구와 과외를 하자하니 반대하였지만

선생님이 1대 2 과외 안 할 거면 그만 가르치겠다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나와 같이 하게 되었다.

그렇게 같이 공부를 하면서 느껴지는 실력 차이를 줄이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덤으로 대치동 전교 1등의 공부 노하우까지 보고 배우니 성장하는데 이만한 영양제가 없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에 수학 실력이 쑥쑥 자라는 게 느껴졌다.


당시 입시제도는 고등학교 1학년은 이과, 문과 상관없이 같이 수업을 듣고 2학년부터는 이과와 문과로 나눠서 공부를 진행했고 1학년 막판에 어디로 갈지를 정해야 했다.

당시 나는 장래희망은 없었지만 반기문 UN 총장이 나오던 시기여서 모두가 외교관이나 UN총장을 꿈꿀 때였기도 하고

대치동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을 마치고, 2학년 올라갈 때 3학년 수학까지 끝내는데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정도밖에 못 배웠기에 나도 당연히 문과로 갈 것이라 생각하고 학교에는 문과로 가겠다고 서류를 냈다.


그리고 과외 수업을 하다 선생님께 문과 하기로 했다고 하자 바로 어머니 좀 뵐 수 있냐 물어보셨다.

방 문 밖에서 두 분의 대화가 끝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고 선생님이 집 밖으로 나가고 나가서 어머니께 물어보니 "수학에 재능이 있어서 이과로 가야 합니다."라 했다 한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등교하기 무섭게 교무실로 찾아가 문과에 체크된 표시를 지우고 이과에 체크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18살. 남고생. 얼마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인가.

그때 대학생인 친누나가 내게 찾아와서 해준 말이 있다.

"누나가 대학 가보니까 의대 가면 소개팅이 끊이지가 않아. 의대로 가봐."

그리고 미래에 대한 큰 계획이 없던 내게 의대는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은 여러 뒤쳐진 과목을 배운다고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남자 고등학교인 만큼 장난꾸러기처럼 재밌게 놀면서 공부를 했다.

성적은 계속 올랐지만 고등학교 3학년 여름 수시에 지원할 시기가 되었을 때에 내 성적은 서울 내에 있는 유명한 공대를 갈 수준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수시 지원서를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공대에 지원을 했고 나는 시키는 대로 시험을 보고 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성적이 점점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서울권 의대를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렇게 수능날이 되었다.

날은 유독 추웠지만 긴장이 되지는 않았다.

1교시 국어 2교시 수학까지 크게 문제없이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수능 날에는 급식이 제공되지 않기에 도시락을 가져가야 했는데 당시 어머니께서 소식을 해야 머리가 잘 돌아간다면서 밥을 아주 조금만 챙겨주셨다.

양이 적은 밥을 아껴먹다 보니 내 앞자리 학생 옆으로 다른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수학이 너무 어려웠다. 그 문제 답이 뭐냐. 이런 식의 얘기였는데 앞자리 친구가 공부를 제법 했는지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 하면서 답을 알려주는데 나랑 제법 많이 달랐다.

내가 틀렸나 싶다가도 무시하기로 했다.


3교시 영어도 큰 문제없이 보았는데 4교시 과학을 앞두고 배가 너무 고팠다.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났지만 미리 챙겨 온 초콜릿을 급하게 입에 넣으면서 참았다.

그리고 수능은 무사히 다 끝났다.


그리고 집에 와서 보니 수능시험 중 수학이 정말 어려웠다 한다.

당시 100점 만점에 1등급 커트라인이 79점이었으니 80점만 넘어도 상위 4프로였을 정도로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험에서 96점을 받았다. (만점자는 0.024%인 35명이었다. 그리고 수능날 내 앞자리 친구는 자신 있게 말했지만 다 틀렸던 거다.)

당시 수능은 표준점수로 나타냈는데 시험이 어려울수록 표준점수가 높아진다.

보통 수능에서 수학 100점 표준점수가 130~140이었는데 당시 수능이 워낙 어려웠어서 나는 무려 148점을 얻었다.

1점 차이로 대학이 나눠지는데 큰 점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게 나는 서울 내에 있는 유명 의대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여름에 성적이 오르기 전에 수시로 보았던 공대가 붙어버린 것이다.

당시에는 수능을 아무리 잘 봐도 수시가 합격하면 수시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성적이 올랐음에도 수시 붙은 학교로 가게 되면 '수시에 납치되었다'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래서 나는 높은 성적임에도 공대로 납치가 된 상황이니 며칠 동안 가슴이 매우 아팠다.


결국 고민 끝에 공대는 휴학을 하고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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