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정원인 제주에서 가장 험난한 직업, 정원사
읽기 쉬운 글은 쓰기 어렵다고 한다.
그만큼 밖으로 보여지는 면이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사실 그 기저에서는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주의 작은 개인 정원 베케에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다.
4월에 제주에 간다면 정원 베케에 와있는것만으로 휴식이다. 베케는 돌담을 의미하는 제주의 고유어이다. 실제로 제주의 여미지 식물원에도 근무하고 국내 유수의 정원과 조경을 담당했던 사장님이 기존의 원예원 밭 안에 베케라는 까페를 만들었다.
정원 밭 한 가운데 이 정원들을 볼 수 있는 까페가 고개숙이며 내려앉은 느낌이다.
밭담도 그대로 살리고, 돌무더지도 그대로 있고, 돌 무더지 사이사이 물이 빠지면서 지면에서 내려앉은 곶자왈이 있다. 화산섬인 제주에선 흙과 돌에도 구멍 숭숭 숨골들이 있어 음지에서 습기를 먹는 이끼류와 고사리들이 건강하게 크고있다.
처음 밖에서 정원을 보면 자목련부터 백목련, 매그놀리아, 그리고 벚꽃, 겹벚꽃까지 큰 나무들이 멋지게 자리잡고 있다. 꽃 나무와 사이프러스 같은 조경수들이 주인공으로 보인다.
그러다 정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다보면 그 나무들의 아래 음지에서, 낮은 베케 아래 현무암 곶자왈 에 낮은 잡목들과 수초와 이끼들이 펼쳐져있는걸 보게된다. 일반적인 조경원이나 정원에서는 보기힘든 모습으로 제주의 땅이 꺼진 곶자왈, 숨골들이 있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정원의 초입 베케 본건물 카페 안에 들어와 창가에 앉으면 독특한 경험을 하게된다. 베케 건물은 1층이며너 반지하의 형태로 내려앉아있다. 그리고 통창을 지면에 맞추었다. 얕은 풀섭과 잔디와 작은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지면과 같은 위치로 내가 앉아있는 경험을 한다.
사람은 일생에서 대개 딱 한번 풀섶과 축축한 땅의 지면 아래에 위치한다. 바로 죽음 뒤에. 이곳 베케에서는 땅 속에 누우면, 혹은 지면에 붙어있으면 어떤 모습일지.. 내가 뭘 보게될지 경험하게 해준다.
가만히 있으면 유리창 너머 눈앞에서 티끌만큼 작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땅은 검지만, 그 바로 위로는 햇빛도 비치고 생명도 피어나고 움직인다. 내가 굳이 굽어보지 않더라도 모든 생명들은 각자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굽어봐야 생명이 살아가는게 아니듯이, 잔디와 풀과 이끼들은 스스로 땅속에서 기운을 받아 4월의 땅을 깨고 있는것이다. 얼었던 땅을 힘겹게 부스고 일단 나오면 땅밑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태양과 바람과 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일단 세상에 나오면 된다.
오직 초록으로만 서로의 다름을 알아내야 하는 시기, 4월
오늘 4월의 일요일, 화려한 자태와 향기를 붐어내던 온갖 목련들이 구질구질하게 떨어져 다 사그러지고 이제 땅에는 화려한 꽃나무의 위용은 가고 오직 잡목과 작은 꽃과 이끼들만이 살아나 있다. 오직 초록으로만 서로의 다름을 알아내야 하는 이 시기. 햇빛은 강렬하지만 따듯하고, 주변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말소리가 새소리와 같이 어우러진다. 정녕 땅속에 있는 느낌이 이러하다면, 죽음도 견딜만 하겠다.
사방이 정원인 제주라는 자연환경에서 몇 평 안되는 밭뙤기 에 정원을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얼핏 만용일 수도 있다. 무엇을 심든, 혹은 무엇을 심지 않든 눈을 돌려보면 이미 주변에 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공간에 들어와 땅밑에 내려앉아 보면 알게된다. 때로는 인위적으로 만든 자연이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