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걷는사람 Jul 27. 2024

개조식 보고서(3) - 말하듯이 써라.

공문서 일수록, 중요한 글일수록 더욱 잘 써야 한다

미국은 정부, 학교, 기업 모두 통일된 양식 & 서술식 보고서

     

미국의 경우, 학교에서부터 일반 사회, 기업까지, 학술논문부터 정부기관의 공식 보고서도 모두 서술형이며, 양식도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하계 논문이나 학회까지, 의회의 연설문이나 각종 보고서까지, 정부의 공식 보고서까지 글의 양식이 어느 정도 통일되어있다.

서체 Times New Roman, 폰트 11~12, 줄간격 MS Word 기본 1

사실 한국에서 일반인이 미국의 공문서를 보기는 쉽지 않은데, 2020년 미 해군 브렛 크로지에 대령의 명령 불복종 사태를 계기로 그의 코로나 사태 대응 건의문이 화제가 되어 언론에 나온 적이 있다. 가끔 미국 정부의 공문서가 전 장관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대개 "Memo"라는 이름으로 1-2 페이지가 나온다. "Memo"라고 하면 한국식 메모로 보아 대충 끄적인 메모로 오인하기 쉬우나, 미국에서 톱다운 공식명령이든 바틈업 보고서든 이게 바로 미국의 공문서이다.


2020년, 코로나 초기 미해군 크로지어 함장의 항명 사건


2020년 3월 31일, 괌 해안에는 미국의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핵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이 정박해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거대한 항공모함이 미국의 힘을 상징하면서 평화롭게 쉬는듯이 보였다. 루즈벨트함은 두달전 1월 4,800여 명의 장병들을 태우고 남중국해에서의 임무 수행을 위해 출항하여 태평양과 남중국해 인근에서 임무수행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3월부터 함내에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즈음은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이제 막 확산되기 시작하고 속수무책으로 감염이 확산되고 있던 때였다.


루즈벨트호는 3월 27일 괌 해군기지로 복귀, 정박하였으나 장병들은 지상에 하선하지 못하고 함내에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당시 코로나의 지상 전염을 우려하여 배에 탄 사람들을 내리지 못하게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배안에 있다가는 남은 승조원 4800여명의 생명이 더 위험에 처할 상황이었다.


핵항공모함 USS시어도어루즈벨트호의 브렛 크로지어 함장(해군 대령). © 로이터=뉴스1.

루즈벨트함의 함장이었던 브렛 크로지어(Brett Crozier) 해군 대령은 먼저 해군본부에 하선을 요청했지만, 해군본부 측에서는 하선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함장은 3월 30일 해군지휘부 등을 포함, 국방부까지 20여 명에게 “위험에 처한 승조원들이 배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해달라”는 메모 서한을 이메일로 동시에 송부했고 이튿날 서한이 언론에 공개됐다. 미 국방부에  메모 서한을 보낸다. 논란이 일자 해군에서는 승조원 하선을 허락하면서 동시에 4월 2일 크로지어 함장을 해임시켰다.


브렛  크로지어(Brett Crozier)는 1992년에 미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뒤 임관하여 2020년 당시 50세의 해군 대령으로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 호(USS Theodore Roosevelt)의 함장이었다. 당시 루즈벨트 함은 며칠전부터 괌에 정박하고, 승조원 전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해군에서는 승조원들을 내리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는 4800여명이 타고있었는데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있기 때문에 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함장은 현재 군함에 이미 수십 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승조원을 책임지는 크로지에 함장은 먼저 해군본부에 건의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예 상위부서인 국방부에 바로 공식서한을 보낸 것이다.


크로지에 대령의 공문서 - 품격있는 보고서의 전형


크로지에 대령의 메모 4쪽중 첫장 발췌

3월 31일 언론에 서한이 공개되자, 수천명의 장병들의 안위를 무시한 해군본부를 비판하며 여론이 들끓었다. 해군 지휘부에서는 마지 못해 승조원 하선 결정을 내린고 4월3일까지 승조원들이 지상에 내리게 된다. 여론이 돌아서게 된 계기는 크로지에 대령이 쓴 4쪽짜리 보고서 때문이었다. 위대한 연설이나 감동적인 글이 아니라, 사무적이고 건조하게 작성된, 4페이지 짜리 보고서 하나이다. 공문서 하나가 언론을 움직였고, 국민들의 여론도 움직였다.


크로지에 대령의 보고서는 제목과 내용이 있는 전형적인 공식 문서의 형태이면서 서술형 보고서이다. 그 내용과 전개가 잘 쓰여진 짧은 에세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다. 그의 보고서를 읽고 있자면 공직자나 군인이 의사소통을 할 땐 어떻게 해야하는지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소리치지 않고도 외칠 수 있고, 화내지 않고도 분노를 표출할 수 있고, 그래프와 도식을 안써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다.


크로지에 함장의 보고서와 그 함의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에 잘 분석되어있어 링크로 대신하고자 한다.

-  https://medicimedia.us12.list-manage.com/track/click?u=5db6d627be95cdf71380be990&id=6190e5ea4c&e=87856b74e0


품격있는 글쓰기로 장병은 구했지만 함장은 파면되다.


그러나 공문서가 언론에 나온뒤 국민들은 해군본부를 비판했고, 해군 지휘부는 이에 분노하여 작성자인 크로지에 함장을 명령불복종으로 파면시켰다. 해군본부 내부적으로는 서한을 언론에 유출한 자를 색출하면서 4월 2일, 크로지에 함장을 전격 경질한다. 당시  모들리 해군장관 대행은 “서한을 작성한 행위에 대한 보복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편지를 외부로 유출한 인원에게는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서한 유출에 크로이제 함장의 책임이 드러난다면 군의 질서와 규율을 해치는 행위”라고도 하면서 결국 크로지에 대령을 파면시킨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45668.


파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공문서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이를 읽어본 미 국방부와 시민들은 함장을 파면한 해군본부를 더 비판하게 된다. 결국 함장의 상급자인 해군장관 (당시 지명자)를 물러나게 하는 대형 사건으로 번졌다. 당시는 명령과 규율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였고, 비록 크로지에 대령도 파면되고 해군장관도 모두 경질되었지만, 미 전역에서 크로지에 대령의 용기와 리더쉽이 회자되었다. 과거 루스벨트 대통령의 군복무 시절 일화도 회자되며 공직자나 군인의 용기에 대해 많은 생각꺼리를 준다.


한국에선 어땠을까? 공직자나 군인의 충성과 복종의무, 이에 따른 명령불복종의 문제, 무엇에 대한 복종이어야 할지 내용과 절차적 문제 등 여러 쟁점과 논점이 이어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로 올리고자 한다.

 

우리 개조식 보고서의 개선방향

  

가급적 개조식 보고서는 그만하면 어떨까? 개조식 보고서보다 서술식 보고서를 쓰자. 흔히 개조식 보고서가 바쁜 현대사회에서 효율적으로 간명하게 쓰니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술형 보고서로 길게 쓰는것이 궁극적으로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긴문장형 보고서가 궁극적으로는 더 효율적이다. 긴 문장 형태로 쓰게 되면 기본적으로 길어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말을 줄이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 개조식 보고서는 보고서를 짧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보를 줄이기 쉽다. 쓰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필요한 정보가 들쭉날쭉 생략되면서 전체적으로 중요한 내용의 왜곡을 불러온다. 반면 서술형 보고서는 불필요한 기타 정보를 줄여야한다. 어차피 말하듯이 서술형으로 쓰는거기 때문에 누구도 못쓸순 없다. 장황해질 순 있어도 왜곡시키긴 힘들다. 즉 정확한 정보를 줄이는게 아니라 불필요한 사족을 줄이다보면 정확한 정보와 의견이 살아 남을 것이다.    


양식도 문장형태의 보고서에 글자 크기나 양식을 통일해서 표준 보고서 양식으로 써야 좋다. 표준 보고서 양식으로 통일하도 장려하면, 불필요한 형식과 양식 경쟁을 할 필요 없고 여기에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미국식 보고서처럼 단순하게 양식을 통일하여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 특히 개조식보고서가 마치 훌륭한 보고서의 전형인 양, 개조식 보고서 찬양을 하는 행정 문서에서 원천적으로 개조체를 없애고, 일반 문장형태의 보고서로 써야한다.


정부기관에서부터 개조식 보고서를 가급적 자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외에 공개하거나 공표하는 문서, 공개발표하는 국가대계나 계획, 정책보고서, 언론발표, 언론공개문의 경우 서술형 보고서나 서술형 글쓰기만 쓰도록 제한할 필요가 있다. 왜 중고등학교까지도 국어책이나 시험에선 되자 서술형 글쓰기로 배웠는데, 대학에서도 서술형 글쓰기로 논문을 쓰고 시험을 봤는데, 취업이나 고시에서도 서술형 글쓰기로 글을 쓰고 내의견을 말했는데..왜 갑자기 정작, 관공서에만 들어오면 글이 짧아지고 밑도 끝도 없이 말을 짧게 해야하는가?


사실 글쓰기가 분명하고 보고서만 읽어도 명확하면 굳이 면대면으로 만날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면 업무 소요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 효율화가 가능하다. 글이 명확하다면 말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말로 끝맺음을 대신한다.

... 결국 나는 공무원의 개조식 글쓰기가 일제 관료의 잔재라는 이유로, 또는 관료적 권위주의 때문에 강화된 관행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게 아니다.
개조식 글쓰기는 애초에 의도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역효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에 경계할 뿐이다. - 이준웅, 2017


참고

- 이철재 중앙일보, 2020.4.1, " "전쟁 아닌데 병사 죽게하나" 美핵함장 4쪽짜리 SOS 서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44528-

- 조선일보, 2020.4.4, ""캡틴 크로지어!" 경질된 美 함장에 승조원 수백명 '마지막 경의'". "캡틴 크로지어!" 경질된 美 함장에 승조원 수백명 '마지막 경의' (chosun.com).

- 코로나 영웅, 미 항모 루즈벨트호 함장 크로지어 리더쉽 – 꿈꾸는섬 (happist.com)

- 이준웅, 2017, "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 [미디어 세상]소통과 먼 ‘국정운영 5개년 계획’ - 경향신문 (khan.co.kr)

- 소준섭, 2024.1.4, "공문서 문장을 바꿔야 공직사회가 바뀐다", 민들레, 공문서 문장을 바꿔야 공직사회가 바뀐다 < 민들레 들판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매거진의 이전글 개조식 보고서 (2) - 기원과 방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