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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Aug 05. 2022

일상의 번뇌

소는 초원이 그립다.

조석으로 상대적으로 시원할 때 소들의 풀 뜯기는 정점이다. 지난밤에도 어둑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전까지 열심히 풀을 뜯더니 날이 밝자마자 맛나게 풀을 뜯는다.


무더위는 풀을 키우고 풀은 소를 키운다. 소는 나와 가족을 먹여 살린다. 참 고마운 소들이다. 아침에 방목장에 물을 날라다 주면서 풀만 먹고 잘 자라는 소들에게 감사했다.

 

요사이 방목에서 변화는 이제 저녁이나 비가 와도 소들을 축사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풀  이외의 먹이를 주지 않기에 축사에 가두는 것 즉 집에 대한 나의 집착을 버렸다. 사람들은 축사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 둔다. 현대 축산업은 어찌 보면 모든 사고가 축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광활한 대지를 포기하고 코딱지만 한 내 소유의 축사에 집착한다. 그것이 사적 소유라는 자본주의가 만든 일종의 피해의식의 발로라는 것을 알지만 소유 경쟁은 늘 덧없다.

 축사에 집착하면 우선 들어가는 자본이 늘어난다. 소가 이동하면 되는 것을 주인은 소의 노예가 되고 온갖 맛난 것들을 사주거나 옮겨주어야 한다. 또한 소를 축사로 가둠으로 인해 분뇨문제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배합사료가 나오면서 그것을 통해 소가 빨리 자란다는 것을 습득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내걸어 축사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집자면 배합사료를 먹여야 소를  사주었던 구조에 순응해 갔다. 소를 가둔 만큼 늘어난 노동을 감당키위해 큰 농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했으며 점점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본의 늪으로 깊이 빠져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초원과 풀  그리고 광야가 사라졌다. 기억에 남았다 하여도 그것은 이미 많은 왜곡을 거친 뒤였다.


 한국에서 다시 소가 초원으로 갈 수 있을까?

 자본의 시기와 질투가 언제까지 나에게 관대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식량위기는 허울 좋은 구호일 뿐 우리는 그것의 깊은 속내와 의미에 별 관심이 없다. 그것보다 그냥 오늘의 정해진 일상을 보내고 순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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