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는 앞서가는데 법리는 현실에 뒤처지는 이유
벤처투자조합은 사모의 방식으로 출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그 성과를 다시 출자자에게 배분하는 투자기구다. 구조적으로 보면 사모펀드의 일종이며, 경제적으로는 고위험·고수익을 전제로 하는 모험자본(Venture Capital)의 핵심 장치다.
오늘날 벤처투자조합은 단순한 자금 도관이 아니다. 스타트업의 주요 주주로 등재되고, 투자계약의 당사자로 직접 서명하며,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자본시장과 혁신 생태계에서 독자적인 행위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법정에 서는 순간, 이 ‘행위 주체’는 갑자기 모호해진다.
서울고등법원은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이전에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중소기업창업지원법에서 각각 한국벤처투자조합과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을 규율하였는데 2020년 제정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한국벤처투자조합과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을 벤처투자조합으로 통합했다. 이 글에서는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을 벤처투자조합으로 이해하여도 무방하다)이 다른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을 상대로 양도담보권 실행에 따른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한 사건에서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은 ‘법인격 없는 사단’으로 실체를 갖기 때문에 소송에서 당사자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03. 8. 20. 선고 2003나23160 판결).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이 다른 투자조합으로부터 주식을 양도받아 회사를 상대로 주권발행을 청구한 사건에서도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의 소송당사자 능력을 인정했다(서울고등법원 2015. 8. 13. 선고 2014나2045247 판결).
하지만 반대로 벤처투자조합의 소송 당사자능력을 부정한 사례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의 조합원이 업무집행조합원을 상대로 조합원 지위의 확인을 구한 사례에서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이 ‘비법인사단으로서의 실체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조합이라는 명칭 그대로 민법상 조합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라고 판단하고 소송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나2033412 판결). 뿐만 아니라 구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상 한국벤처투자조합의 업무집행조합원이 원고로서 한국벤처투자조합의 투자를 받은 회사를 상대로 주식매매대금을 청구한 사안에서 한국벤처투자조합의 일부 규약 조항들만으로 당사자능력이 인정되는 비법인사단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한국벤처투자조합의 소송 당사자능력이 없다고 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7. 9. 13. 선고 2016나2067159 판결).
위 사례들에서 법원은 동일·유사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벤처투조합의 소송 당사자능력을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민사소송법 제52조는 ‘법인 아닌 사단이나 재단은 대표자 또는 관리인이 있는 경우에는 그 사단이나 재단의 이름으로 당사자가 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위 민사소송법 규정에 관하여 대법원은 “민법상의 조합과 법인격은 없으나 사단성이 인정되는 비법인사단을 구별함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그 단체성의 강약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다4504 판결, 대법원 1992. 7. 10. 선고 92다2431 판결 등). 대법원은 사단성 판단 기준으로 대표자의 유무, 기관의 의결이나 업무집행이 다수결에 의하는지, 구성원 변경과 관계없이 단체 그 자체가 존속하는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위 서울고등법원 사례들은 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에서는 다른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렇다면 각 사례에 등장하는 벤처투자조합의 개별 성격이 법원의 판단을 다르게 할 만큼 단체성에 차이가 있었던 것인가? 판결문에 드러난 각 벤처투자조합의 규약 등을 보았을 때 단체성 인정에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할 정도의 내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고 외형상 유사한 규약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다면 재판부는 소송제기의 형식인 사단성보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우선을 두고 개별판단을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이 원고로서 소를 제기한 사안(서울고등법원 2003. 8. 20. 선고 2003나23160 판결)에서 법원은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의 소송 당사자 능력을 인정하고 본안판단에 나섰다. 중소기업 창업투자조합의 당사자능력을 부정했다면 당사자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하고 다시 업무집행조합원 명의로 소를 제기해야 했을 것이다.
조합원이 업무집행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지위 확인 사건(서울고등법원 2020. 12. 24. 선고 2020나2033412 판결)에서도 마찬가지다. 조합을 당사자로 보지 않는 해석을 통하여 업무집행조합원을 상대로 한 지위확인의 소를 각하하고 다시 조합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는 수고를 덜게 한 것으로 보인다(실무에서 이러한 지위 확인의 소는 단체의 대표자가 아닌 단체를 피고로 하여 제기되어야 한다).
법원의 위와 같은 결론은 이미 제기된 소송의 구조와 분쟁 해결의 효율성을 고려한 실질적 산물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위 결론에 따른 이행도 실질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결과다. 이러한 벤처투자조합의 소송 당사자 판단에 대한 일관성 결여는 소송에 있어서 매번 개별판단을 요구하게 되어 비효율을 야기하게 되며, 소송 당사자에게 있어서도 누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하는지 불명확하여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될 위험을 발생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무에서 벤처투자조합은 투자계약 체결시 당사자로 서명하고, 주주명부에 벤처투자조합이 등재되는 등 하나의 경제적 인격체로 활동하고 있으며 실질적 주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벤처투자촉진에 관한 법률상 등록·보고·공시의무를 부담하며(동법 제50조, 제54조, 제61조 등) 위반 시 행정제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동법 제62조). 이는 법률이 벤처투자조합의 단체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소송 단계에서 매번 단체성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면 이는 법적 지위의 불안정성을 의미한다. 누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해야 하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렵다면 이는 단순한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실무상 리스크다.
벤처투자조합은 단순한 계약적 결합이 아니라 투자 생태계에서 독립된 경제적 주체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해석도 그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벤처투자조합의 소송 당사자능력을 원칙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일관되고, 예측가능성 측면에서도 타당하다. 궁극적으로는 입법적 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전이라도 해석론은 현실의 구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벤처투자조합의 소송 당사자능력 문제는 단순한 절차 논점이 아니다. 이 문제는 벤처투자조합을 계약적 결합으로 볼 것인지 조직적 실체로 볼 것인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다. 실무는 이미 답을 내리고 있다. 법리는 아직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