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유럽에서 들려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13일의 금요일 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는 파리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테러를 일으켰고, 그로인해 무고한 시민 15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또 그 만큼의 사람이 심하게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파리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쉽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가 넘어 겨우 괜찮다는 소식을 듣고 한 시름 놓기는 했지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파리에 아물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아시아의 오지를 찾아다니는 여행을 주로 하다 처음 유럽으로 발길을 돌린 건 친구가 파리로 유학을 가면서부터였다. 그렇게 파리 6구 Monsieur le prince 가(街)에 자리 잡은 친구의 작은 스튜디오를 본거지 삼아 방학 때마다 유럽으로 떠났고, 파리를 중점에 두고 이웃한 헝가리, 영국,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했다.
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를 여행할 때는 주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보며 감탄했던 반면 유럽에서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물이나 미술품, 조형물 그리고 무엇보다 수백 년에 걸쳐 기어이 만들어낸 특유의 ‘문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잘 알려진 파리의 에펠탑이나 노틀담 대성당, 피렌체의 두오모 그리고 런던의 빅벤 등 TV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혹은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에 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때로는 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주변을 빙빙 돌면서 벽을 만져보기도 했고, 또 어떤 곳에는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주변 카페 노천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며 눈에 담으려 애를 쓰기도 했다. 노틀담 대성당 내부의 어둠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비치는 햇살의 대비적인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기도 했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운 야경에 취해 늦도록 강변을 걸어 다니기도 했다. 또, 로마 바티칸 내부의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보는 동안은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고, 오르셰 미술관이나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과 같은 곳에 들어가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그림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차차 내 시야는 건축물이나 미술품보다는 그곳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일상을 사는 사람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 문득 마주친 사람의 표정에 시선이 갔고, 멋내지 않았지만 멋스러운 사람들의 옷차림에 시선이 머물렀으며, 공원에 아무렇게나 누워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궁금해졌고, 카페에서 그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이 궁금해 따라 먹어보기도 하였다. 베네치아의 좁고 복잡한 골목길을 헤매면서는 이 미로 같은 길이 마치 사람의 마음과 닮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어버릴 정도로 관심사가 사람에 천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건축물도 미술품도 아닌 바로 문화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그 무엇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사람들 삶의 깊숙한 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 말이다.
공원의 잔디에 누워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고, 굳이 유행을 좇지 않더라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고, 길거리 악사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으며,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도 장시간 첨예한 토론을 이어가는 등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것. 초등학교에서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되 그 참뜻은 모르는 ‘자유’가 바로 이런 것이고,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누리면 그것이 ‘문화’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똘레랑스라는 이름의 자율과 배려와 존중 등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 유럽이, 파리가 한없이 부럽고 사랑스러웠다.
IS의 테러 소식에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바로 파리의 이 자유가 침해당했다는 점이었다. 평화롭지 않으면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유롭지 않으면 평화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자유와 평화는 같다. 따라서 이 사건은 테러를 당한 300여 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평화를 위협받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시 갈 것이다. 나는 다시 Monsieur le prince가 xx번지에 짐을 부린 후, Au petit suisse 카페 노천에서 커피를 마실 것이고, 뤽상부르 공원에서 책을 읽을 것이고, 오데옹 극장에서 연극을 볼 것이며, 세느 강둑에 아무렇게나 앉아 노틀담 대성당을 바라보며 콰지모도를 떠올릴 것이다. 테러에 굴복하여 움츠러들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자유와 평화를 온전히 누리는 것이야말로 테러를 이기는 진짜 방법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