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그곳은 밴프

by 장선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친구 하나가 돌연 캐나다로 갔다. 그 때도 취업난이라는 것이 청춘들을 아프게 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라는 것으로 캐나다로 간 친구가 몇 년 후엔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고 했고, 또 몇 년이 지난 후엔 남색 캐나다 여권을 보여주며 자신은 이제 검은 머리 ‘캐내디언’이라고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 너를 ‘캐내디언’이 되게 하였느냐고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되돌아 온 말은 ‘밴프(Banff)’였다.

밴프.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캐나다 하면 밴쿠버, 토론토, 몬트리올 그것도 아니면 프랑스 말 쓰는 퀘벡. 이런 동네들이 내가 살아오면서 알게 된 캐나다에 대한 상식선이었다. 그 때부터 밴프는, 내 친구가 국적을 버리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곳, 그러므로 언젠가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머릿속에 자리했고, 하나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올 여름 떠났다. 밴프로.

밴쿠버에서 열흘 정도, 다소 지루하게 보낸 후, 밴프로 가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로 13시간, 그 와중에 시차까지 1시간이 나는 먼 거리였다. 오후에 출발한 버스는 다음 날 아침에 밴프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밤새 버스 맨 앞자리에 몸을 구기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어느 순간 눈이 부셔와 눈을 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 하는 짧은 탄성을 뱉었다. 그곳은 미천한 경험치로는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천국같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온통, 그저 파랗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하늘과, 어디로 눈을 돌려도 의젓하게 솟아있는 산과, 그 아래 굽이굽이 흐르는 옥색 물들. 그 사이를 버스가 의연히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밴프는 나와 첫인사를 했고, 그 작은 마을에서 오롯이 1주일을 머물렀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 아니 일분일초도 흘러가는 것이 너무나 아까워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수시로 강변을 따라 걸 었고, 숲속을 헤매고 다녔고, 마을 곳곳의 상점들을 누볐다. 대중교통으로 옆동네와 옆옆동네의 호수들, 연못들, 폭포들도 찾아다녔고, 현지인 투어에 합류해 은퇴한 호주 외교관 할매와 단짝이 되어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밴프는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이라는 점이 인상인 곳이다. 미국의 대자연을 만났을 때는 ‘대자연에 인간이 침투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캐나다의, 특히 밴프의 자연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동네를 무심히 돌아다니는 사슴을 만나거나 숲속에서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를 만나는 일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물론 곰을 만났을 때 행동요령이 곳곳에 쓰여 있어 곰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반 두려움 반도 있었지만 말이다.(다행인지 불행인지 곰을 만나지는 못했다.) 밴프를 둘러싸고 있는 네 개의 산에 각각 이름이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산이 다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캐스케이드 산의 여성스러움과 소박함에 정이 들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런들 산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떠날 때는 런들 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돌아보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그늘과 안식과 휴식처를 제공하고, 인간은 자연에 물리적으로 침투하는 대신 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고, 아끼고 보호하는 방식으로 상생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다시 밴쿠버로 돌아와, 지금은 밴프를 떠나 밴쿠버에서 살고 있는 검은머리 캐내디언 친구를 만나 회포를 풀며,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세상을 만나게 해 주었다는 데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 지상낙원을 떠나며, 자연은 거대하며 인간은 그저 미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러므로 사소한 일에 아등바등하고 마음 상하고 등을 돌리는 대신, 호연지기에 찬 한 마디를 던지며 살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인간의 몸을 잠시 빌려 살다가는 인생,

“그 므시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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