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임용시험에 꼴좋게 낙방을 하고, 서울 인근 신도시의 한 중학교에 기간제 자리를 얻었다. 한 학기짜리 일자리라 1학기에는 공부를 하고 2학기에는 임용시험에 집중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정신승리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 시름 놓으려는 참에 031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새로 일을 하기로 한 학교였다. 요는, 교장 선생님이 미리 봐 둔 선생님이 따로 있는데 담당자인 자신이 그걸 모르고 너를 뽑아 버렸는데 이를 어쩌냐는 것이었다. 어쩌긴 뭘 어째. 내가 꺼져주면 간단하구만. 낙하산 타고 누군가 내려왔으니 너는 그만 꺼지라는 말을 뭘 그렇게 빙빙 돌려가며 하니.
종각쯤이었던 것 같다. 그 전화를 받은 곳이. 전화를 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걷는 일이었다. 광화문까지 갔다가 다시 종로 5가까지 갔다가 다시 광화문 쪽으로. 종로통을 걷고 또 걷다,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었을 때, 내 눈에 커다랗고 뻘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따라 인도가기'. 인도 전문 여행사인가보구나. 생각하는 동시에 신호가 바뀌었고, 나는 계단이 가파르기 짝이 없는 허름한 건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장 빨리 출발하는 팀에 합류할 수 있나요? 이틀 뒤요? 저는 가능해요. 비자요? 아. 급행비자라는 게 있군요. 해 주세요. 네. 이틀 뒤에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이렇게 도망가듯 떠난 곳이 인도였다. 가이드가 아닌 인솔자의 인솔하에, 괴이한 카레 냄새가 밴 에어 인디아 항공편을 타고 홍콩을 경유하여 뭄바이에 도착했다. 현지 시각으로 3월 1일 밤 11시 쯤이었다. 인솔자를 포함하여 8명이었던 우리 팀은 두 대의 택시에 나누어 타고 타지마할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공항을 떠나 시내로 향했다. 사이드 미러라는 것은 애초에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이 분명한 택시는 차선도 신호도 아무런 힘이 없는 무법의 도로를 끊임없이 클락션을 울리며 질주했다. 창문 밖에서 매캐한 매연이 콧속으로 빨려 들어왔고, 눈에 보이는 모든 차들이 쉴틈없이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가 귀를 때렸다. 고작 3월 2일에 남들 다 가는 학교를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대신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를 끝없이 생각했다.
타지마할 호텔은 지금껏 지나온 풍경들과는 무척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울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위압적이기도 했다. 다른 택시에서 내린 인솔자는 이곳은 안전한 약속장소일 뿐 우리가 잘 곳은 아니라고 했다. 그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나는 타지마할 호텔을 끼고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 또 더 작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부렸다.
책가방 만한 배낭 속에 든 간단한 옷가지와 세면도구, 허리춤에 차는 작은 가방에 든 미화 300달러와 디지털 카메라 그리고 여권, 그리고 배낭 아래에 오래된 침낭을 칭칭 감아 맨 것이 짐의 전부였다. 30일의 여정을 소화하기 위한 침 치고는 꽤 단촐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낭이 단촐한 준비물 가운데 필수품이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벽과 천장이 맞닿는 부분이 이가 맞지 많아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모양새였고, 침대 위에 깔린 이불은 깔린 이래 단 한 번도 빨린 흔적이 없어, 켜켜이 먼지가 쌓여 있고 때가 뭍어 있었으며, 각종 벌레들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화장실 상황은 더욱 형편없어서 물이 잘 나오지도 않을 뿐더러 그나마 나오는 물은 옅은 황토색이었다. 세면대에는 때가 끼어 회색빛이었고, 욕조는.... 그만 두자. 어쨌든 피로를 풀어야 했으므로 대충 세수를 하고, 침낭을 깔고 잠을 청했다. 과연 이 선택이 맞나. 의심하며 밤새 잠을 설쳤다.
해가 밝아오는 것같아 혼자 산책에 나섰다. 자연스레 발걸음은 타지마할 호텔 방향으로 향했다. 호텔 주변의 나무는 까마귀떼가 까맣게 뒤덮고 있었다. 호텔 주변의 차가 다니지 않는 길거리마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그 안에는 어린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호텔 건너의 작은 공원에서는 멋지게 사리를 차려 입은, 꽤나 부유해 보이는 사람들이 래핑요가(laughing yoga)를 하고 있었다. 집이 없어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 앞에서 억지 웃음을 짜내며 깔깔거리는 래핑요가라니. 이것이 인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고, 이 강렬한 하나의 장면은 인도의 고질적인 빈부격차를 단 하나의 장면으로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그렇게 인도와 만났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