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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종 Apr 06. 2022

레몬꿀차가 필요한 시간

새로운 도전으로 온기와 영감과 에너지가 필요한 그대에게


아침에 레몬꿀차를 마시다 우연히 발견하였다. 어떤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나도 모르게 레몬꿀차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차가운 공기, 혼자, 새로운 환경, 또 다른 도전.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이 빠짐없이 맞아떨어질 때 어김없이 나는 레몬꿀차를 마셔왔던 것 같다.   


레몬꿀차의 매력에 처음 빠지게 된 건 1996년 호주에서의 일이다. 농가의 일을 도와주고 현지인과 함께 생활하는 우프 프로그램을 통해 머물게 된 브리스베인에서의 일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농사를 짓기 때문에 과일이 풍요로웠다. 첫 번째 방문한 가정에는 특히 레몬과 커스터드 애플이 많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레몬이 흔하지는 않았는데 소쿠리에 가득한 레몬을 맘껏 먹어도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가꾼 레몬 맛이 궁금해서 레몬차를 마셔보았다. 너무 시어서 그냥은 먹기가 그랬다. 다음에는 반으로 갈라서 손으로 꾹 눌러서 짠 레몬즙에 꿀을 넣어서 먹기 시작했다. 호주의 겨울인 6월에는 레몬도 꿀도 흔했다. 부담 없이 매일 한잔씩 먹게 되었다. 어느새 호주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아침 루틴이 되어 있었다. 따뜻한 한잔의 레몬꿀차를 들이키면  온 몸 구석구석까지 온기가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온기는   깊은 곳을 흘러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달래주었다. 그렇게 레몬꿀차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는 이른 아침의 한기를 녹여주며 혼자라는 사실도, 외국 어느 낯선 곳이라는 사실도, 목까지 차오르는 청춘의 복잡한 의문들도 말끔히 가시게  주었다. '세상 어디 떨어뜨려놔도 살아갈  있겠구나.' 자신감도 주었다.


두 번째 레몬꿀차를 열심히 만들었던 때는 2005년 캐나다에서였다. 밴쿠버라는 도시가 이 지구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른 채 준비해서 도착한 곳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UBC) 기숙사에서였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레몬꿀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이 때는 도구를 사용하게 된다. 캐나다에서는 수입 과일이니까 한 방울이라도 아껴 먹으려면 마음에 과즙 추출기에 꽉 짜서 먹었다.


"선생님, 레몬차 한잔 할까요?"


같은 기숙사에 지냈던 한국 유학생이 가끔 레몬차를 구실로 말문을 열어오곤 했다. 그도 홀로 유학하는 상황이라 가끔 레몬꿀차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유학이나 해외에서 체류해 본 사람은  거다. 때때로 '지금 ,  여기 있지?' 하는 의문이 들면서 한없이 외롭고 작아지는 느낌이  때가 있다는 . 분명 본인이 선택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행기 타고 낯설고 물선 객지로 날아오지만 레몬꿀차가 필요할 때가 있는 거다.


세번째는 2022 서울에서다. 17  인가? 얼마 전에 갑자기 레몬이 눈에 띄더니 레몬꿀차를 자주 마시고 있다. 비슷한 상황이다. 혼자, 차가운 공기, 새로운 환경,  다른 도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조합의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레몬꿀차를 찾게 하는 걸까?


어떤 온기, 영감,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과 새로운 도전은

몸과 마음의 에너지 소비가 많다.

정도의 차이가 있고

마음은 괜찮다 해도  

어쨌건 몸은 뭔가가 필요한 가보다.

그래도 참 신기한 일 아닌가.

몸이 알아서 채워간다는 게.


도전하고 떠나고 실험하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사실 누구에게도 새로운 변화와 도전은 의미있다. 조금 두렵고 용기내기가 어려울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이, 이미 도전에 뛰어들어 약간의 두려움을 감수하며 도전하고 있는 이, 도전은 하였으나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해 밤 잠을 설치는 이에게 레몬꿀차 한잔을 권하고 싶다. 아무리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해도 새로운 도전의 무게감은 어차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거니까.


우린 괜찮을 거다. 레몬꿀차가 있다. 온기와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레몬꿀차가 있으니까 우린 잘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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