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 정도면, 이렇게라도‘선에서 만족과 안분의 삶을 살아보려구요.
’더 좋은, 더 잘‘에 대한 추구를 멈추기로 했어요.
’
한국 스님께 육조 혜능의 단경을 배울 때, 스님께서 계속 저에게 욕심이 많다고 지적을 하셨어요. 그때는 오히려 스님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내가 무슨 욕심이 많다고. 원불교 교무님이 되면서부터 욕심을 부릴래야 부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교무님이 돈 욕심을 내봤자 얼마를 모으며, 옷 욕심을 내봤자 그 머리에 무슨 멋이 나며, 이성 욕심을 내봤자 결혼도 못하는데. 욕심을 어떻게 내는 건지조차 몰랐죠.
하지만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나는 늘 ‘더 잘, 더 좋은 것’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죠. 평생을 그 더 잘하려고, 더 좋은 결과, 더 좋은 상태,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느라 만족하는 삶이 어려웠습니다.
열심히 하고나서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부족하다는 마음에 스스로에게조차 일 마친 후의 여유를 허하지 못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다음에는 ...게 하자. 다음에는 ..에 가자.’라는 표현으로 만족스럽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며 늘 다음을 기약했죠.
그러니 삶에 완전한 이완이나 만족, 기쁨, 감사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몰랐죠. 그게 욕심이라는 사실을. 더 잘하려는 마음이 성실인 줄 알았고, 더 잘하고 더 좋은 것을 위해 노력을 쉴 수 없는 삶이 능력있는 사람이 살아야 하는 자기 절제의 삶이라고만 생각던 겁니다.
결국 그 쉬지 못하는 마음이 삶에 알 수 없는 긴장을 초래했고, 그 긴장은 몸과 마음의 에너지 고갈을 불러왔죠. 그래서 자유롭고 싶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늘 가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죠.
세상 사람들이 흔히 갖는 돈이나 옷, 사치품이나 음식, 이성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매사에 더 잘,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 또한 욕심이었던 거죠. 조금 다른 각도의 추구 또한 욕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니 마음 깊숙한 곳에 이완이 시작됨을 느낍니다.
가장 좋은 것은 조금 부족한 상태의 것이라고 늘 설교하고 책에도 써놓고 정작 나 자신은 만족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었던 거죠. 다 잘 하려고 그런 거였지만 지혜가 부족했던 겁니다.
요가나 명상, 마음 공부는 자기의 한계를 명확히 아는데서 출발하죠.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자기의 한계와 비전을 명확히 알 때 비로소 진정한 수행이 시작되죠. 자기에게 꼭 맞는 행복의 길에 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번 인도 방문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나를 좀 더 깊이 바라볼 수 있었어요. 꼭 어디로 가지 않더라도 관심의 방향을 자기에게로 돌리면 답이 보입니다.
작년 에베레스트 가는 길 초입에 ”모든 문제도 너 안에 있고, 해답도 너 안에 있다‘는 마음에서의 울림이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리 마음에 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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