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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Oct 13. 2024

노후대비의 재발견

   풍요로운 이 계절에 웬 보릿고개란 말인가. 청명한 하늘이 무색토록 노후재정에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한 절기에 내몰린 밀려든 파도처럼 올봄부터 예기치 않던 목돈지출이 발생한 탓입니다. 궁핍의 시절을 거친 우리 늙은 세대는 검소와 절약이 껌 딱지처럼 몸에 달라붙은 사람들입니다. 사용 중인 생활용품은 웬만해서 새것으로 바꾸지 않고 고물형색에도 새 숨을 불러 일으켜 보물로 재탄생시키는 생명사상의 선도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집집마다 전수받은 생활자원의 보물단지가 여럿 있었던 겁니다. 그래왔던 세상의 판도가 여러 번 뒤집혔음에도 오래 밴 허울을 벗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이번 한 방에 보란 듯이 흔들렸던 것이죠. 그 같은 지출이 노년에 돌출될 거란 상황을 중년에는 예측할 수 없었어요. 살아 뒷북칠 일들이 삶의 여정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 세상이 아닙니까. 40대중반부터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의 출범 시기와 걸맞게 충분하지 않으나 사적연금과 비상금도 함께 준비해 왔습니다. 30대부터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일반론이 강세이지만 개념조차 정착되지 않던 그때 그런대로 앞선 행보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노년의 재정은 당연한 말이지만 노인의 정신과 육체의 자립을 포괄하는 기본 생활자금을 말합니다.  


   먹고 살 일과 몸이 아파 들어갈 비용만 준비하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늙어가는 길목에서 느닷없이 전개될 일들을 누구인들 예측이 가능하겠어요. 그 실체의 으뜸은 나날이 지능해가는 전자제품에 있습니다. 무서운 속도로 우리의 생활을 침투해오는 전자제품의 출시가 이젠 두렵기조차 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생활에서 몸이라도 편해지고픈 욕구의 시선들이 더 편리기기들로 쏠리고 있거든요. 쉴 집이라고 하나 많은 공간을 차지한 제품들에 둘러싸여 실제 거주자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지 않을까요. 어느새 우리들은 기기에게 예속돼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요 그것들마저 노화로 주기마다 교체할 시기가 도래해 만만치 않은 비용을 동반한다는 사실입니다. 긴 수명을 자랑해왔던 옛 전자제품의 세력은 수그러들었고요. 근래 들어 짧아진 수명으로 제조된다는 서글픈 현실의 덧칠은 지금의 재정에 압박을 주고 있습니다. 20년이 가깝게 사용해온 제품들이 고사 직전에 놓였어요. 안 좋은 일은 겹쳐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수명을 다한 몇 가지의 제품은 줄지어 교체하게 되었지요. 이번 교체기로 향후 5년에서 길게는 10년 뒤를 염려하는 일들이 따랐습니다(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향후 지금보다 더 늙어 열악한 환경과 건강에 놓이더라도 지금처럼 유연한 대응이 이어지길 염원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떠올리게 된 대안은 새 제품의 구입 대신 지자체에서 안내하는 재활용센터 중고품으로 대체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비로소 한결 가벼워진 ‘지금’에 이르게 되었고요.


  이와 관련해 고백할 일이 있습니다. 과욕을 불러와 재정에 이중 부담으로 보탠 일입니다. 30년 된 침대와 10년을 넘겨 쿠션이 꺼져버린 면 소재의 소파를 교체할 시기를 맞았던 겁니다. 그간 잘 살아온 내게 포상의 수순으로 사치를 부리게 된 것이죠. 내 생애 마지막 구매일 듯싶었던 그 결정에 머리를 조아리진 않았어요. 과분하나 신체적 장애가 뒤따를 머잖은 장래를 위해 기능이 첨가된 가구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온당한 결정이라 후회하지 않습니다만, 초겨울까지 허리띠를 졸라맬 상황은 헛헛한 느낌을 안겼습니다. 때마침 몸담은 공동체에서 ‘소비멈춤’ 운동이 시작되었지요. 내게 맞춤형일 것 같은 그 행사참여는 곧이어 위안으로 둔갑했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이 고비를 넘고자 주변을 최적화시켰습니다. 지출 항목의 최전선은 목숨을 지탱해 줄 먹을거리에 두었고 웬만한 지출에는 눈감기로 했습니다. 냉장고에 알게 모르게  재워둔 재료만으로도 소박한 밥상이 차려지면 족하다 여겼습니다. 그로써 속을 덜 채워 건강에도 유익할 테니까요. 또한 냉동고를 비울 좋은 기회가 맞닿아 있는 ‘지금’과 헐렁해진 냉장 칸으로 인해 전기요금까지 ‘절약’된다는 점은 꿀 팁으로 선회하지 않을까요. 작년 어느 기사에서 본 젊은이들의 절약캠페인이 생각났습니다. 하루에 돈을 사용하지 않는 날을 기록해 공유하는 챌린지였어요. 외식은 물론 음식택배도 없애고 귀찮더라도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자린고비에 나선 그들의 행동이 갸륵했습니다.     


  돈만 많이 벌어놓으면 노년의 걱정은 그만이라고 안심시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빠져 나올 줄 모르는 이는 빈약하기 이를 때 없는 정신소유자에 속합니다.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겨를 없이 오로지 돈을 추구해온 사람들은 어리석은 일에 쉽게 노출되고 자기함정에도 빠질 위험에 놓인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죠.  

  돈을 많이 비축한 노인이 거지로 전락될 주시사항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병에 자신과 가족이 걸리는 경우입니다. 과도한 병원비지출로 지닌 자산을 탕진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타고난 지병이라면 모를까 평소에 자신의 체력을 잘 관리하는 대응전략 밖에 없습니다. 둘째 세심한 준비 없이 사업에 나섰다가 돌이킬 수 없는 목돈을 날려 재원 회복이 어렵게 된 경우입니다. 무풍지의 배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에 포함됩니다. 셋째 사기대상에 노출되는 노년입니다. 돈을 모으느라 평소 관계의 소홀로 노년에 이르러서 외로움을 타는 노인이 있습니다. 포식자는 이 같은 노인을 호시탐탐 주시하지요. 살갑게 다가와 노인의 환심을 끄는가 싶을 때 돌변해 뒤통수 칠 사기꾼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이처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균형을 잃어버리면 사회화 학습에도 뒤쳐질 수밖에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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