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에는 오래 눈길이 머무는 장면이 있다. 엘프의 여왕 갈라드리엘(Galadriel)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길게 늘어진 흰 드레스, 잔잔하게 빛을 두른 머리칼, 흔들림 없는 눈빛.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그 품위가 어디서 오는지 딱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누가 봐도 '멋지다'는 반응이 먼저 나온다.
그런데 잠깐. 그 드레스의 끝은 어디에 닿아 있는가?
바닥이다. 흙바닥, 돌바닥. 그리고 그 위를 오가며 쌓인 먼지와 오물. 끌리는 드레스의 끝단은 그것들을 고스란히 쓸고 다닌다. 우리가 찬탄하는 그 우아함은, 사실 더러움을 끌고 다니는 끝단 위에 서 있다.
이 장면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단순한 영화적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닥에 닿는 끝단이 있어야 드레스의 길이가 생기고, 길이가 있어야 흐름이 생기고, 그 흐름이 있어야 품위가 완성된다. 더러움을 끌고 다닌다는 사실이 우아함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 자체가 우아함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구조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샤넬 No.5는 오랫동안 고급 향수의 대명사로 통해 왔다. 그 향의 핵심 원료 가운데 하나가 용연향(龍涎香)이다. 향유고래의 뱃속에서 만들어지는 물질인데, 소화되지 못한 먹이의 잔해가 담즙과 뒤엉켜 굳어진 덩어리다. 토해지거나 배설된다. 바다를 수년에서 수십 년 떠돌며 산화되고 숙성되기 전까지는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고 한다. 길에서 모르고 마주친다면, 아무도 주울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다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통과하고 나면, 다른 원료와 결합해 세상에서 가장 오래 기억되는 향의 일부가 된다.
여기에 미화는 없다. 고급스러움의 기원이 역겹다거나, 그래서 향수가 가짜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구조의 이야기다. 그 냄새나는 끝단이 있었기 때문에, 그 향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연꽃도 마찬가지다. 청정함의 상징처럼 쓰이는 꽃이지만, 뿌리는 진흙 속에 있다. 진흙 없이 뿌리를 내릴 수 없고, 뿌리 없이 물 위로 꽃을 피울 수 없다. 연꽃은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탁한 진흙탕 위에서 고귀한 자태의 꽃을 피운다.
세 가지 사례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멋은 깨끗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통과하거나 끌고 왔기 때문에 생긴다.
문제는 멋을 손에 쥔 사람들이 이 구조를 잊을 때 생긴다.
찬사를 받는 자리에 오르면, 그 자리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기억이 흐려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목이 뻣뻣해지고,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드레스 끝이 무엇을 끌고 다니는지, 지금 몸에 두른 향수가 어디서 왔는지, 연꽃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를 보지 않으려 한다.
반대로, 지금 자신의 처지가 바닥에 가깝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도 같은 진실이 다른 언어로 말을 건다. 낮은 자리, 보이지 않는 자리, 비루하다고 치부되는 자리. 그 자리가 단순히 낮은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성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바다를 떠도는 냄새나는 덩어리가, 언젠가 전혀 다른 것의 원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갈라드리엘이 폼을 잡으려면 드레스 끝이 더러워야 한다. 가장 고급스러운 향의 출발점은 고래의 토사물이다. 연꽃은 진흙을 딛고 핀다.
멋지다고 어깨에 힘줄 일이 없다. 현실이 비루하다고 기죽을 이유도 없다. 둘 다 같은 구조의 다른 지점에 서 있을 뿐이다.
우아함은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아래에서부터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