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의 의외의 용도

by 시온

최근 7년 넘게 알고 지낸 사람에게 거의 사기를 당했다. 7년 동안 1년에 열 번도 넘게 술자리를 함께했고, 나름 믿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 젊은 시절 두세 번 당한 뒤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으려 애써왔는데, 결국 또 당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사회생활의 중요한 축 중 하나이다. 상처도 대부분 그 관계에서 생긴다. 수십 년간 일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중엔 진심을 나눴다고 믿었던 이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첫 만남에서 상대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그래도 명함은 꽤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는 명함을 받을 때 두 가지를 본다.

첫째는 전화번호다. 1000, 5555, 1004 같은 번호를 보면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운 좋게 그런 번호를 배정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그 번호를 갖고 싶어서 돈을 들여 만든 것이다. 그건 자기 연출이다. 나를 남들보다 특별하게 보이게 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를 과대평가하거나 남의 인정에 목마른 경우가 많다.

둘째는 명함에 적힌 직함의 개수다. 글자로 빼곡한 명함을 보면 그 사람의 명예욕이 읽힌다. '이사', '고문', '위원', '자문위원'이 여러 줄 적혀 있는 명함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속은 없는 경우가 많다. 공자가 "군자는 실속이 있고 겉치레가 없다(君子實而不華)"고 했다. 명함이 화려할수록 그 속이 비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말에서도 단서를 얻는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제가 누구누구랑 잘 압니다", "지난번 장관이랑 식사했죠" 같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고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유명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건 자기 존재의 빈틈을 남의 이름으로 메우려는 시도다. 쇼펜하우어가 "작은 사람일수록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남의 이름을 빌린다"고 한 말은 틀린 적이 거의 없다.


또 한 부류는 이유 없이 과하게 친근한 사람들이다. 첫 만남부터 "형님, 형님" 하며 어깨를 두드리는 이들은 대부분 목적이 있다. 그게 돈이든 인맥이든 영향력이든, 진심은 아니다. 진심은 속도를 조절할 줄 안다. 서두르지 않는다.


이런 태도가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중함과 냉소는 다르다. 신중한 사람은 사람을 믿되 믿음의 속도를 조절한다. 한 번의 술자리로 판단하지 않고 꾸준한 행동 속에서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본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함을 받을 때 이름보다 숫자와 글자를 본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에 드러나는 과시와 결핍, 욕망과 허영을 읽는다. 명함은 단순히 소속을 알리는 도구가 아니다. 어떤 이는 그 안에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을 적고, 어떤 이는 초라한 자신을 화려한 글자들로 덧칠한다.


결국 사회생활의 지혜는 사람을 사랑하되 맹신하지 않는 것이다. 명함 한 장, 말 한마디 속에서 단서를 읽을 수 있다면 뒤통수를 맞을 일은 조금 줄어든다.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최소화할 수는 있다.

앞으로도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조금 더 천천히 믿을 것이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고, 진짜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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