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24년 8월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보낸 학업 시절은 지옥 같았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한국은 좁고 인구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모두가 앞서 나가려 하고, 때로는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고백은 예술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가 놓인 과잉 경쟁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경쟁 압박’을 가장 강하게 느끼는 사회다. 통계청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인의 직장 내 경쟁 체감도는 OECD 평균의 1.8배, 반면 업무 몰입도는 38개국 중 35위, 노동생산성은 시간당 GDP 기준 42.5달러로 OECD 평균(62.2달러)의 68% 수준에 머문다(2023년 기준). 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더 적은 성과를 내는 사회, 그것이 한국이다.
이 모순의 근본에는 ‘뒤처질까 두려워하는 경쟁 구조’가 있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기회가 거의 없고, 한 번 낙오하면 영구히 낙인찍히는 사회. 그래서 사람들은 ‘잘하기’보다 ‘실수하지 않기’를 목표로 삼는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시도보다는 눈치와 방어가 우선된다. 경쟁은 창의의 불씨가 아니라, 두려움이 서로를 더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된다.
그 위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아부 문화’다. 실력보다 관계가, 성과보다 상사의 기분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조직일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문제 해결이 아닌 사람 관리에 쏟는다. 회의에서는 현실을 말하기보다 눈치를 보고, 보고서는 사실보다 상사의 선호에 맞춘다. 이른바 ‘아부의 기술’이 능력의 대체재가 된다.
문제는 이런 문화가 개인과 조직의 생산성을 동시에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대기업 관리자들은 상사 비위 맞추기나 불필요한 내부 정치에 근무시간의 19%를 소비한다(Los Angeles Times, 2001년 1월 30일). 실제 업무의 5분의 1이 '눈치와 아부'에 쓰인다는 뜻이다. 한국처럼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런 환경일수록 심리적 안전감이 낮고, 직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보다 안테나 세우기를 택한다. 결국 경쟁이 치열할수록 창의는 사라지고, 협업은 불신으로 대체된다.
아부는 단기적으로는 생존 전략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방향 감각을 흐리고 사회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린다. 진짜 실력이 아닌 ‘말 잘 듣는 사람’이 올라가는 구조에서는 유능한 사람일수록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더 눈치를 본다. 그 결과는 ‘치열한 경쟁 속의 집단적 정체’다.
몰입이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고, 그 결과가 공정하게 평가 받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도 ‘공정한 경쟁’보다 ‘유리한 관계’를 우선시한다. 불신의 문화에서 몰입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해도, 그 에너지는 서로를 경계하고 방어하는 데 소모될 뿐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경쟁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경쟁은 인간의 창의와 성취를 자극하는 본능적 장치다. 그러나 그것이 ‘이기는 것’에만 집중될 때, 사회는 점점 피로해지고 냉소적이 된다. 생산적인 경쟁은 투명한 기준, 공정한 평가, 실패에 대한 관용, 그리고 협업을 통한 성장의 보상에서 나온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환경이야말로 진짜 혁신의 토양이다.
임윤찬의 고백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가 천재여서가 아니라 그가 경험한 ‘지옥’이 많은 한국인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입시, 취업, 승진,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우리는 늘 서로를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치열함이 더 나은 사회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덜 경쟁하는 사회’가 아니라, ‘제대로 경쟁하는 사회’다. 실력과 성실함이 정직하게 평가 받는 구조, 타인을 밟지 않아도 함께 오를 수 있는 시스템, 실패가 낙인이 아닌 발전의 초석이 되는 문화. 그것이 진짜 경쟁력이다.
진정한 경쟁은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과정이다. 한국이 그 단순한 진리를 회복할 때, 아부 대신 신뢰가, 두려움 대신 몰입이, 질투 대신 존중이 이 사회의 새로운 리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