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음의 쓸모

by 시온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는가? 정보의 민주화라는 말이 실감났던 시절이었다. 지식이 더 이상 소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약속은 생각보다 빨리 변질되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아니라 광고주를 위해 작동하고, 콘텐츠는 깊이가 아니라 클릭 수로 평가 받는다. 정보의 바다는 통제 불능의 홍수가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에게 쏟아지는 건 깨달음이 아니다. 그냥 소음이다. 뭐가 유익한 정보고 뭐가 잡음인지 구분도 안 되고, 우리는 계속 밀려오는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거린다.


2024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가 올해의 단어 후보로 'Brain Rot'을 올렸다. 뇌썩음이라니. 이게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될 수도 있다는 거 자체가 심각한 문제 아닌가!


뇌썩음은 자극적인 인터넷 콘텐츠에 계속 노출되면서 인지 능력과 정신 건강이 나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좀 과격한 표현 같지만, 실제로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과장도 아니다.


우리 뇌에는 작업 공간이라는 게 있다. 복잡한 문제를 뒤집어보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일이 이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하루 종일 울리는 알림, 끝도 없이 내려가는 피드, 15초짜리 영상들이 나의 뇌에 계속 뭔가를 쏟아 붓는다. 이게 바로 인지부하(認知負荷)다.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는 정보가 계속 들어오는 상태. 정보의 홍수로 인지부하가 계속되면 뇌는 정작 중요한 걸 다룰 시간 없이 손에 걸리는 것들만 처리하게 된다. 통찰력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여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뇌는 점점 쉽고 피상적인 것만 찾게 된다. 깊이 파고들어 진짜 좋은 아이디어를 찾을 힘이 없어지는 거다. 즉각적인 보상에만 반응하게 되고, 오래 집중하거나 복잡한 걸 다루는 능력은 떨어진다.


가장 창조적인 순간은 우리의 뇌가 잡무에서 해방되었을 때, 즉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가 허우적거릴 필요가 없는 ‘멍 때릴 때’ 온다는 것이다. 문제를 붙들고 있다가 지쳐서 산책을 나갈 때, 아무 생각 없이 샤워할 때, 창 밖의 풍경을 그냥 바라볼 때. 그때 뇌가 해방된다. 무의식이 흩어진 정보들을 다시 조합하고, 우리가 찾지 못했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많은 발견이나 영감이 이런 '비집중의 시간'에서 나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달리기를 하며 소설의 구조를 떠올렸고, 작곡가 브람스는 산책 중에 가장 아름다운 선율들을 생각해냈다.


그런데 우리한테는 그 시간이 없다. 뇌가 스스로를 정리하고 통합할 여유, 그 공백이 사라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거창한 건 필요 없다.


정보 채널을 끊어라. 알림 전부 꺼버려라. 뉴스, 메일, SNS는 정해진 시간에만 보는 것이다. 약 먹듯이. 하루에 한 시간이라도 디지털 기기를 완전히 끄는 시간을 만들어라. 이게 최소한의 방어다.


생각을 밖으로 꺼내라. 머릿속에서 맴도는 할 일, 복잡한 생각들은 바로바로 노트나 화이트보드에 적어라. 이게 단순히 메모가 아니다. 뇌의 작업 공간을 비워주는 거다. 그래야 기억이 아니라 창조에 집중할 수 있다.


침묵을 만들어라. 중요한 일 끝내고 나서 10분에서 20분 정도는 그냥 멍때리는 시간을 가져라. 산책이든, 음악 듣기든, 그냥 햇빛 쬐는 거든 뭐든 상관없다. 이 짧은 시간이 뇌를 리셋하고 창의력을 회복시킨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짜 가치 있는 건 많이 아는 게 아니다. 쓸모없는 걸 버리고 자기만의 생각하는 공간을 지키는 것이다.


옥스퍼드가 경고한 '뇌썩음'이 우리 시대의 병이 되기 전에, 오늘 당신의 삶에 침묵을 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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