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창의력, 떠오르는 감식안

by 시온

"늦가을에 어울리는 발라드풍 노래를 만들어 주세요." 단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몇 초 후, 그럴듯한 멜로디와 가사가 화면 위에 펼쳐진다. 생성형 AI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인간의 역할은 '창조자'에서 '선택자'로 이동하고 있다. 이제는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곡을 작곡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가 내놓은 수십, 수백 개의 결과물 중 어떤 것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지, 어떤 것이 진짜로 '팔릴 노래'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AI 시대의 성공은 창의력(creativity)보다 감식안(discernment)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감식안이란, 진짜 가치를 골라내는 능력이다.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혼잡한 정보 속에서 본질을 가려내는 판단력이며, 현재의 흐름 속에서 미래의 반응을 미리 읽는 통찰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로 칭송 받는 케인즈는 주식 투자를 "미인대회에서 당신이 보기에 가장 예쁜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심사위원들 다수가 예쁘다고 생각할 사람을 고르는 일"에 비유했다. 이 통찰은 AI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 마케터는 자신이 좋아하는 모델이나 BGM을 고르면 실패한다. 타깃 고객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야 성공한다. AI가 만든 수천 개의 결과물 중 '시장'이 반응할 작품을 알아보는 능력, 그것이 바로 감식안이다.


감식안은 예측과 다르다. AI는 이미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트렌드를 감지하고,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의 취향을 예측한다. 하지만 감식안은 '무엇이 인기 있는가'를 넘어 '왜 사람들이 그것을 좋아하는가'를 이해하는 능력이다.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 분위기, 시대정신, 인간의 미묘한 정서를 읽는 힘이다. AI는 '무엇'은 알 수 있어도 '왜'는 아직 모른다. 감식안은 데이터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례를 접하고 경험이 쌓이며 다듬어지는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차별점이 될까? 역설적이게도, 생산 능력이 아니라 분별 능력이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는 '무엇을 만들지'보다 '무엇을 걸러낼지'가 더 중요해졌다.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이 진짜인지, 지금의 대세가 언제 퇴조할지"를 먼저 감지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AI가 창의력을 민주화했다면, 감식안은 오히려 귀해졌다. 모두가 창작자가 된 세상에서, 진짜 가치 있는 것을 선별하는 능력은 새로운 희소자원이 되었다. 창의력의 문턱은 낮아졌지만, 감식안의 문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감식안을 갈고 닦을 수 있을까?

첫째, AI를 창작 도구가 아니라 훈련 도구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프롬프트로 수십 개의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그중 '좋은 결과물'과 '평범한 결과물'의 차이를 스스로 분석하는 과정이 감식안의 근육을 단련시킨다. 무엇이 사람의 시선을 붙드는지, 어떤 요소가 감정을 움직이는지를 반복적으로 체득하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와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한다. 조회수 같은 지표만 보지 말고, 댓글의 정서나 밈의 변화 같은 인간적 반응을 함께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 숫자는 '무엇'을 말하지만, 맥락은 '왜'를 말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읽을 수 있어야 진짜 감식안이다.


셋째, 반(反)트렌드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 대세를 따르는 대신, 사람들이 곧 지겨워할 신호를 먼저 감지하는 것이 진정한 감식안이다. 모두가 미니멀리즘을 외칠 때 극대주의의 귀환을 예감하고, 모두가 레트로에 열광할 때 퓨처리즘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이 시장을 선도한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의력을 넘어서고 있지만, 인간의 감식안을 흉내 내기엔 아직 멀었다. AI는 패턴을 읽지만, 인간은 방향을 결정한다. AI가 가능성을 제시할 때, 인간은 의미를 부여한다. 본격적인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진짜를 알아보는 눈이다.


창조의 시대가 저물고 선택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AI는 무한한 옵션을 제공하지만, 그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감식안에 달려 있다. 과잉 생산의 시대일수록, 분별이 힘이 된다. 창의력 이후의 시대, 감식안이 당신을 빛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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