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면도로로 모토사이클이 지나간다. 앱 알림 하나에 누군가는 헬멧을 쓰고 출발한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누군가의 노동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최근 한 사건이 그 노동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최근 한 고객이 배달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과 모욕을 쏟아낸 것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음식이 '배달 음료'라고 표시된 곳에 놓였다는 이유였다. 통화 내용은 녹음되어 공개됐고, 그 안에는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말뿐만 아니라 '딸배'라는 비하적 용어와 온갖 욕설이 담겨 있었다. 배달 위치를 두고 벌어진 작은 시시비비가, 직업 전체를 조롱하고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언어 폭력으로 번진 것이다.
이러한 비하 언어는 이 통화에서만 쓰인 게 아니다. 온라인 곳곳에서 배달 노동자를 겨냥한 조롱의 말들이 농담처럼, 밈처럼 가볍게 소비된다. 건전한 직업을 비하하는 언어가 익명의 공간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유통되고, 심지어 직접 통화에서까지 서슴없이 내뱉어진다. 문제는 이런 말이 개인만 다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역할과 신분은 다르다. 배달, 돌봄, 경비, 상담은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역할이다. 평소엔 티 나지 않지만 없으면 일상이 멈춘다. 그런데 비하 언어가 끼어들면 역할은 사라지고 라벨만 남는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부류'가 된다. '나는 저쪽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말은, 사실 자신이 그 자리로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심리에 가깝다.
답답한 건 실수 자체가 아니다. 누구나 헷갈릴 수 있는 상황을, 아무런 검증 없이 개인의 배경과 교양 문제로 바꾸는 태도다.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말은 배달 위치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과정 전체를 부정하는 인격 살인에 가깝다. 직업 비하 언어와 욕설은 그 직업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말을 만들고 쓰는 사람의 수준만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다.
말은 공동체의 합의다. 저속한 호칭이 농담처럼 허용되고, 통화에서 욕설이 거침없이 쏟아질 때, 서로에 대한 예의의 최소선이 무너진다. 그때 잃는 건 특정 직업의 존엄만이 아니라 우리 관계 전체의 품격이다. 비하 언어는 대상을 깎아내리는 동시에,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 전체의 수준을 함께 떨어뜨린다.
배달 라이더와 직장인, 플랫폼 사업자와 플랫폼 노동자, 경비와 이용자는 서로 기대고 있다. 같은 경제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비하 언어는 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칸막이를 세운다. 말로 시작된 칸막이는 나중엔 태도가 되고 편견이 되고 결국 제도적 차별까지 정당화한다. 연대가 필요한 순간, 우리는 서로를 다른 집단으로 묶어 거리를 둔다.
변화는 거창한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배달 앱을 열 때, 통화를 걸 때, 온라인에 글을 쓸 때, 우리가 선택하는 말 하나하나가 모인다. 누군가의 직업을 조롱하는 표현을 듣고도 그냥 넘기지 않는 것, 불만이 생겼을 때 상대를 인격적으로 모욕하지 않고 구체적인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공동체의 언어가 바뀐다.
전화 속 욕설은 한 사람을 향했지만, 파장은 우리 모두에게 닿는다. 우리는 어떤 말로 서로를 부를 것인가? 비하와 조롱으로 선을 긋고 거짓 안도감을 느낄 것인가? 존중으로 다시 연결될 것인가? 말이 무너지면 함께 잡은 손도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