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만든 분의 이름을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대부분의 글자는 누군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든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익명의 사용자들이 조금씩 다듬어온 결과물이다. 그런데 한글만큼은 다르다. 세종이라는 위대한 한 분의 결단에서 태어났고, 그 목적과 원리를 설명한 문서까지 지금 우리 손에 남아 있다. 문자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없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간단했다. 배우기 쉬워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분은 소리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설계했다. 덕분에 한글은 발음과 문자가 따로 놀지 않는다. 들리는 대로 쓸 수 있고, 쓴 대로 읽을 수 있다. 디지털 용어로 표현하자면, 입력과 출력이 일치하는 문자 체계다.
그런데 이 위대한 문자가 20세기 중반, 또 한 번의 도약을 맞이한다. 주인공은 공병우 박사다. 그는 의사였지만, 한글 타자기를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한글을 칠 수 있을까? 손가락의 동선을 연구하고, 자판 배열을 수없이 바꿔보며 세벌식 자판을 완성했다. 그의 집념 덕분에 한글은 복잡한 조합 문자임에도 불구하고, 타자기를 통해 빠르게 입력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드문 사례가 되었다. 한글은 종이를 벗어나 기계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중국과 일본도 디지털 시대에 자국 문자를 쓴다. 다만 방식이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발음을 영문자로 입력한 뒤, 화면에 뜨는 여러 후보 한자 중에서 원하는 글자를 고른다. 일본도 비슷하다. 음절문자를 직접 입력하거나 로마자로 발음을 쓴 뒤, 한자로 바꿀 부분만 변환 버튼을 눌러 후보 중에서 고른다. 이들의 입력 방식은 '발음 입력 → 선택'의 구조다.
반면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즉시 글자를 만든다. 선택 과정이 거의 없다. 빠르고 직관적이다. 하지만 이 장점이 오늘날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들었다. AI는 문장을 토큰(Token)이라는 작은 조각으로 나눠 이해한다. 한글은 이 조각의 개수가 영어나 중국어보다 많아지는 경우가 흔하다. '안녕하세요'라는 다섯 글자도, 기계 입장에서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복잡한 구조로 읽힌다. 같은 뜻의 문장이라도 영어나 중국어보다 계산량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 사실이 한글의 가치를 떨어뜨리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마지막 매듭 하나가 남았다는 뜻이다. 한글은 사람에게는 완벽한 문자지만, 기계에게는 한 번 더 손질이 필요한 문자다. 그리고 그 손질은 충분히 가능하다. 기계가 한글을 읽는 방식을 개선하면 된다. 자주 쓰이는 단어나 표현을 덩어리로 묶어 학습시키고, 불필요하게 쪼개지는 구조를 줄이면 계산량은 줄어든다. 문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이해 방식을 한글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세종대왕과 공병우 박사가 품었던 질문은 같다. 어떻게 하면 한글이 가장 잘 쓰이는 문자가 될 수 있을까? 세종대왕은 배움의 장벽을 낮췄고, 공병우 박사는 속도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제 우리 세대의 과제는 기계와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다. 한글의 설계 철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환경이 바뀌었을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문제가 해결되면 한글이 얻을 이득이 단순히 '빨라진다'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색이 정교해지고, 번역이 자연스러워지며, 음성 인식이 정확해진다. 한글로 쓴 정보가 세계 어디서든 빠르게 이해되고 활용된다. 문자의 장점은 더 커지고, 약점은 사라진다. 그때 한글은 비로소 디지털 시대에도 '가장 잘 쓰이는 문자'로 다시 선택받는다.
한글은 이미 위대하다. 그러나 위대함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숙제가 하나 남았을 때, 우리는 더 나은 설계를 찾기 시작해야 한다. 세종대왕께서 만든 문자, 공병우 박사가 다듬은 문자, 그리고 우리가 완성할 문자. 이 세 장면이 겹쳐지는 순간, 한글의 2막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