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뉴스피드를 열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진다. 누군가의 강렬한 주장, 분노를 자극하는 헤드라인, 그럴듯해 보이는 통계들. 우리는 이 정보들을 스크롤하며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고, 때로는 공유 버튼을 누른다. 그런데 잠깐, 우리는 정말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을까? 출처를 확인했을까? 다른 관점은 없을까 고민해봤을까?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 2,500년 전 공자의 경고가 오늘날만큼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있을까? 우리는 매일 수백 개의 정보를 '배우지만', 그것을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챌린저호 우주왕복선 폭발 사고를 기억하는가? 엔지니어들은 저온에서 O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그들은 데이터를 갖고 있었고, 지식도 있었다. 하지만 조직 내 압력과 일정에 대한 집착이 비판적 성찰을 막았고, 결국 7명의 우주인이 목숨을 잃었다. 지식은 있었지만 사유가 없었던 것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도 마찬가지다. 운영 절차는 있었다. 하지만 그 절차의 의미와 위험성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따랐을 때, 한 세대가 겪어야 할 재앙이 시작되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청소년들은 소셜미디어에서 매일 수천 개의 메시지에 노출된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의 그들은 소속감을 주는 메시지, 감정을 건드리는 콘텐츠에 특히 취약하다. 알고리즘은 그들의 성향을 파악해 비슷한 관점만 계속 보여주고, 어느새 아이들은 한쪽 관점에 갇혀버린다. 확증편향의 늪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전과 프로파간다에 무비판적으로 노출된 청소년들이 극단적 집단의 메시지를 내면화하면, 그것은 곧 사회적 갈등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보여줬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조기 영어 교육이나 구구단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아니, 더 나아가 제대로 이를 닦는 법, 공중도덕을 지키는 법처럼 사회 구성원의 기본 소양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사진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이 글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까?", "다른 관점도 있을까?" 같은 질문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학년이 되면 직접 '가짜 뉴스'를 만들어보게 하는 것도 좋다. 만들어보면 어떻게 사람들이 속게 되는지 체득하게 된다.
교육의 목표는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판단력 있는 시민을 키우는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고 수학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보의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공동체의 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과 사회 모두에게 해가 된다.
가정에서도 할 수 있다. 저녁 식사 시간에 함께 뉴스 하나를 골라 "이 기사는 어떤 관점에서 쓴 것 같아?", "다른 의견도 있을까?" 하고 물어보자. 아이가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게시물이 있다면, 함께 출처를 확인하고 다른 자료도 찾아보는 10분의 시간을 가져보자. 비난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지고 함께 탐색하자.
우리가 아이들에게 칫솔질을 가르치는 이유는 당장의 시험 점수 때문이 아니다. 평생 건강한 치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디어 리터러시와 공중도덕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백신이자,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교육 정책을 만드는 분들께 묻고 싶다. 우리는 정말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고 있는가? 작은 칫솔질 하나가 모여 건강한 몸을 만들듯, 오늘의 기초 교육이 내일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든다.
새로운 시대인 지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