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 서울 구도심 한복판 간선도로는 차량이 아닌 깃발로 뒤덮인다. 발걸음은 통제선 앞에서 멈추고, 왕복 8차선 도로 중 4차선을 무대와 이동식 간이 의자가 점거하여, 자동차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특정 단체의 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이제 이 풍경은 주말의 일상이 되었다. 문제는 우리 모두의 공간이 '의사 표현의 장'이 아니라, 교묘하게 설계된 '공유지의 독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해악의 원리(Harm Principle)'다. 하지만 밀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가 마주한 딜레마의 핵심이 있다. 집회의 자유가 다수 시민의 이동권과 생활권을 상시적으로 제약할 때, 우리는 어느 쪽의 자유를 우선해야 하는가?
헌법 제21조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자유는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고 말했을 때, 그가 의미한 '사슬'은 타인과의 공존을 위한 ‘사회 계약’이었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끊임없이 협상하며 그 경계를 조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서울 구도심에서 벌어지는 일은 이 균형이 일방적으로 무너진 광경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신고제를 택하고 있다. 신고만 하면 원칙적으로 허용되고, 경찰은 제한적 상황에서만 금지를 통고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제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정 단체가 경찰서 집회신고 창구에 상시 인력을 배치해, 매주 같은 시간과 장소를 선점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렇게 되면 다른 단체는 신고조차 할 수가 없게 되어, '선신고자 우선 원칙'이라는 중립적 규칙이 실제로는 가장 조직화되고 자원이 많은 집단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는 19세기 영국의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을 연상시킨다. 경제학자 개럿 하딘이 제시한 이 개념은, 모두에게 열린 공유 자원이 개인의 이익을 위하여 과도하게 사용되어 고갈된다는 통찰이다. 서울 도심 도로라는 공유 공간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공격적으로 자원을 선점하는 집단이 독점하고, 나머지는 배제된다. 자유의 이름으로 보장된 권리가, 역설적으로 자유의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성의 불균형이다. 집회의 자유는 실시간으로, 즉각적으로 보장된다. 신고서를 제출하면 그 순간부터 권리가 발동한다. 반면 질서의 회복은 제도적으로는 사전 조정이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 사후적으로만 작동한다. 경찰은 위법행위가 발생한 뒤에야 개입하고, 법원의 판결은 몇 달 뒤에 내려진다. 그 사이 시민의 불편과 피해는 실시간으로 누적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권력은 행동의 순간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바로 이 권력의 비대칭이다. 집회 주최자는 행동의 순간에 공간을 장악하지만, 침해받는 시민은 구제의 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이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동일 단체가 동일 장소를 무제한 반복 사용하는 것은 집회가 아니라 점거다. 합리적 제한이 필요하다. 교통 혼잡과 소음 피해가 심한 지역에는 집회 허용 구역과 제한 구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공공의 공간은 표현의 무대인 동시에 생활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단순한 접수 기관을 넘어 공익과 사익, 자유와 질서를 동시에 고려하는 조정자로 역할을 확장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중립적 장치가 아니라, 끊임없이 균형을 모색하는 살아있는 대화여야 한다.
미국 대법관 올리버 웬델 홈스는 1919년 판결문에서 이렇게 썼다. "표현의 자유는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라고 외칠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 자유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맥락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집회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고, 다수의 일상을 침해하는 도구로 전락할 때,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반이 아니라 그것을 잠식하는 독소가 된다.
공공의 공간은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의 것이다. 법과 제도는 이 역설적 균형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서울 도심 도로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 아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 자유를, 누구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그 답은 결국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원하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