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by 시온

임문영 작가의 『파레오로스』를 읽었다. 처음엔 제목이 어렵고 낯설었다. 파레오로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 단어 하나에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 있었다.


파레오로스는 고대 로마의 삼두전차에서 멍에를 지지 않던 말을 가리킨다고 한다. 다른 두 마리는 멍에에 묶여 전차를 끌지만, 이 말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전체의 방향과 속도를 조율한다. 앞에서 끌지도 않고, 뒤에서 밀지도 않는다. 옆에서 함께 달리며 균형을 잡는다.


저자는 이 은유를 빌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지식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지식은 권력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민중과도 마찬가지다. 외면할 수도, 맹목적으로 따를 수도 없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책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역사를 보면 권력, 지식, 민중 중 적어도 둘이 결을 맞출 때 사회가 나아졌다. 반대로 이 셋이 따로 놀 때, 특히 지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문제가 생겼다.


임진왜란은 흥미로운 사례다. 전쟁 초반에는 무너졌지만, 이순신 같은 장수들, 의병을 이끈 지식인들, 그리고 백성들이 결을 맞추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은 권력의 명령을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백성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싸웠다. 지식과 민중이 손을 잡자 전쟁을 극복할 힘이 생겼다. 권력, 지식, 민중 중 적어도 둘이 함께 가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다.


병자호란은 정반대의 길을 보여준다. 불과 수십 년 전 임진왜란 때 큰 역할을 했던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백성과 함께 싸우기보다 관념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갔다. 명분과 의리를 말하면서 정작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외면했다. 지식이 권력과도, 민중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었던 셈이다. 셋이 모두 따로 놀았고, 결과는 참담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연대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이건 생존의 구조다. 권력, 지식, 민중이 모두 손을 잡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과 권력이, 혹은 지식과 민중이 결을 맞추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임진왜란이 그 증거다. 반대로 셋이 모두 따로 놀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병자호란이 그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게 있다. 지식인이 권력과 민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공동체가 나아지는 길을 열어주는 것, 이게 결국 지식이 지향할 수밖에 없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지식인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生長點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이건 고상한 사명이나 윤리적 당위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식 자체가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부처의 말이 떠올랐다. "오로지 나를 위하는 지름길이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 이건 선의의 호소가 아니다. 부처는 모든 길을 다 살펴본 끝에, 결국 이 길밖에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利他가 곧 利己의 최선의 방책이라는 통찰은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세상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냉정한 관찰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역사 속 수많은 시도들을 들여다본다. 지식이 권력과도 민중과도 제대로 손잡지 못하고 관념과 지식인 놀음에 빠져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 모든 경험의 결과는 명확했다. 지식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 이건 헌신의 미덕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다. 혼자만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결국 자기 자신도 파멸로 이끈다. 부처의 깨달음과 이 책의 통찰이 정확히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책에는 동서양의 사상, 여러 시대의 시대상과 정치, 지식인들의 선택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런 내용들을 제대로 소화하면 통찰을 얻는 것은 물론이고, 독자의 인문학적 지식과 깊이가 상당히 더해진다. 내게는 글을 쓰는 데 많은 자양분이 되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 지식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심스럽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 성급하게 분노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역사를 많이 알면 알수록 인간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비슷하게 실수해 왔는지 보게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함부로 누군가를 비난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여기서 나온다. "그래도 함께 가야 한다"는 낙관이 아니라 "다른 길은 없다"는 솔직한 인식. 그 냉철함 안에 담긴 온기 같은 것.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쓸 때의 자세에 대해서도 배웠다. "누가 나쁜가"를 묻기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를 묻는 것. 분노를 앞세우기보다 구조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 도덕적 판단에 앞서 사람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려 보는 것.


지금 우리 사회도 디지털 전환, 에너지 전환이라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저자는 묻는다. 이 변화 속에서 지식은 어디에 서 있는가? 권력과만 대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중의 불안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앞에서 끄는 영웅이 아닐지 모른다. 옆에서 함께 달리며 균형을 잡아주는 존재. 그게 파레오로스의 역할이고, 어쩌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이 아직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면, 화려한 말이나 선명한 주장이 아니라 이런 태도 속에서일 것이다. 혼자만 빠져나가는 길은 없다. 함께 나가거나, 함께 망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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