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바뀌는 날의 생각

by 시온

2026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고는 하지만, 어제와 오늘 사이에 달라진 것은 달력 한 장뿐이다. 그럼에도 이 날만큼은 세상을 향한 기대를 다시 꺼내 보게 된다. 개인의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앞으로 살고 싶은 사회는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출발점이 곧 도착점을 의미하지 않는 사회였으면 한다. 태어난 집안, 자란 동네, 부모의 학벌이 그 사람의 미래를 미리 결정해 버리지 않는 사회 말이다. 이력서 한 장에 적힌 단어들이 사람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도 사라졌으면 한다. 학교 이름, 자격증 개수, 경력의 연속성 같은 것들이 마치 완성된 증명서처럼 취급되는 풍경 말이다. 쌓아온 것이 많다고 해서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탄탄대로처럼 보이는 길도 어느 순간 끊기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로운 길이 열리기도 한다. 노력과 시간이 의미를 가지려면, 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빨리 고립되지 않는다. 잘될 때만 박수치는 게 아니라, 넘어졌을 때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연대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면, 그냥 서로를 너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습관 정도로 생각해도 좋다. 혼자 견디는 일이 미덕이 되지 않는 사회다.


피부색, 출신 지역, 혈통 같은 정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쓰이지 않는 사회도 꿈꾼다. 섞이지 않는 것을 순수함이라 부르는 사회는 얼핏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사회다.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질문이 줄어들고, 질문이 사라지면 집단의 지적 수준도 함께 낮아진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섞일 때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사회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어떤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더 많이 알고, 더 옳다고 믿는 태도도 여기서 함께 경계해야 한다. 직함이나 경력이 판단력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는 규칙이 빽빽한 사회가 아니다. 누군가 선을 넘었을 때 주변에서 반응이 오는 사회다. 처벌 이전에 경고가 작동하고, 침묵보다 표정이 먼저 움직이는 사회. 완벽해서가 아니라, 어긋남을 그냥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균형이 유지된다. 이 모든 감각은 어릴 때부터 배워진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더 잘하는 법보다 같이 사는 법을 먼저 익히는 순간부터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투표장이 아니라 교실에서 먼저 자란다.


그리고 사람을 편 가르는 언어가 힘을 잃는 사회를 바란다. 문제는 나눠도 사람을 나누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분법은 명쾌하지만 복잡한 설명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갈라치기는 언제나 짜릿하지만, 대개 틀린다.


2026년 첫날, 이 모든 것이 당장 이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방향을 잃지 않는 사회는, 느릴지언정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말한 '애기애타(愛己愛他)', 나를 사랑하되 남도 함께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은 이런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일 것이다. 새해는 언제나 이런 조용한 희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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