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가리키는 손가락들

by 시온

2025년 초가을, 나는 두 이야기를 연결 짓게 되었다. 하나는 그 즈음 뉴스에서 접한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전에 내가 직접 겪은 일이었다. 놀랍게도 두 이야기는 매우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었다.


첫 번째 장면. 유명인의 재판을 맡은 판사에게 ‘접대 의혹’이 제기되었다. 대법원 감사위원회는 심의 끝에 이렇게 밝혔다.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인 판단처럼 들렸다. 그런데 이후 알려진 사실은 조금 다른 그림을 만들어냈다. 수사기관이 해당 판사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 단계에서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결과 수사기관은 수사를 진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감사위원회 역시 계속해서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판단 주체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사안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두 번째 장면은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한 경쟁사가 규제기관의 지침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 관련 자료도 비교적 분명했다. 나는 문제를 알리기 위해 담당 과장을 찾아갔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릅니다. 담당 사무관에게 이야기하세요.” 사무관을 찾아갔더니 이번에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결정은 과장님이 하십니다. 과장님께 말씀 드리셔야 합니다.”


그 사이 어떤 기록도 남지 않았다. 지침 위반으로 보이는 상황은 계속되었고, 나는 같은 설명을 반복하며 규제기관을 오가다가 연신 담배만 피워댔다. 이 사례가 모든 규제기관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 내가 마주한 시스템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순환시키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 두 사례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단순한 무능이라기보다, 결과적으로 매우 정교하게 작동하는 방어적 구조였다. 누구도 직접적으로 거부하지 않았고, 누구도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른 곳”을 안내했지만, 그 ‘다른 곳’은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법원과 수사기관의 경우는 교묘하게 보였다. 감사위원회는 외부 수사기관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객관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외부 수사기관이 실제로 수사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절차는 제도적으로 제한된 상태가 되었다. 이는 마치 “고객의 목소리를 존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고객센터의 전화 연결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의도와 무관하게, 그 결과는 제도적으로 내부를 우선 고려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내가 겪은 규제기관의 사례는 보다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과장과 사무관 사이를 오가는 이른바 ‘핑퐁’은 우연이라기보다, 조직 내부에서 부담스러운 사안을 다루는 하나의 관행처럼 보였다. 누구도 명시적으로 거절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문제 제기자를 지치게 만드는 효과를 낳고 있었다.


이러한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시간이다. 법원과 수사기관의 사례에서 감사위원회는 수사 결과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에 명확한 기한은 없었다. 그 사이 재판은 진행되고, 여론은 다른 이슈로 이동한다. 내가 겪은 규제 위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장과 사무관을 오가는 동안 시간은 흘렀고, 문제의 핵심은 점점 희미해졌다.


시간 지연은 단순히 사안을 묻어두는 것 이상의 효과를 냈다. 처음에는 분노가 있었고, 몇 차례 반복되자 피로가 쌓였다. 어느 순간부터는 “어차피 안 된다”는 냉소가 마음을 차지했다. 시스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포기를 유도하고 있었다.


결정은 공식 절차 속에서 내려졌지만, 그 과정은 외부에서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어떤 판단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 왜 특정 사안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 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다만 그 작동 방식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호막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는 빠져나오기 힘든 미로로 작용했을 뿐이다.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단순했다. 권력과 조직은 구조적으로 자기 보호 성향을 가진다. 이는 반드시 개인의 부패나 특정인의 무능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시스템 자체가 그런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거나, 오랜 시간 그렇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법원은 법원이라는 조직을 보호하는 쪽으로, 규제기관은 규제 대상 그 자체보다는 관계와 절차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다.


문제는 이러한 자기 면역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할 때다. 그 경우 조직은 외부의 정당한 문제 제기와 비판까지 함께 차단해 버린다. 제도가 스스로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결국 신뢰의 붕괴로 돌아온다. “어차피 안 된다”는 냉소가 사회 전반을 덮을 때, 그 시스템은 이미 상당 부분 정당성을 잃은 상태다. 판사 의혹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이나, 내가 겪은 규제기관의 미온적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단지 몇 건의 사건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권력 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질문은 이제 이것이다. 우리는 이 미로를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계속 같은 복도를 맴돌며, “담당자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말을 또다시 듣게 될까?


※ 이 글은 특정 개인이나 기관의 불법 행위를 단정하거나 고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필자의 경험과 공개된 보도를 바탕으로 제도와 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성찰하기 위한 문제 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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