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넘어가려는 사람들

by 시온

운동하려고 체육관에 갔는데 바닥에 깃털이 잔뜩 깔려 있었다. 셔틀콕에서 빠진 것들이었다. 우리 타임 전에 배드민턴 동호회가 운동을 한 흔적이다. 총무가 치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못 치운다"였다. 고성이 오갔고, 결국 체육관 관리하시는 분들이 치웠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그분이, 두 다리 멀쩡한 사람들이 흘린 것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쓸어 담았다.


운동 끝나고 관리자에게 물었다. 운동한 사람이 치워야 하는 거 아니냐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맞는 말씀이지만요, 그쪽은 회원 수가 많아서요. 선거 때 표가 되니까 저희가 뭐라 하기 어렵습니다." 시설 관리 부서에 민원을 넣었다. 똑같은 답이 왔다. 배드민턴 동호회 뒷정리는 체육관에서 알아서 하겠으니 이해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체육관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청소하시는 분이 불편한 다리로 바닥을 쓸 때마다. 깃털을 남기고 유유히 코트를 떠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더 불쾌한 건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다. 고개를 돌리고, 슬쩍 넘어가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들이 더 문제다.


오만한 사람은 눈에 띈다. 맞설 수도 있고 기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슬쩍 넘어가는 사람들은 책임을 흐리고 기준을 바꾼다. 한 번은 예외가 되고, 두 번은 관행이 되고, 세 번째부터는 "원래 그런 것"이 된다. 그 과정에서 잘못은 사라지고 불편함만 남는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떠안는 사람은 늘 같다. 말없는 사람, 힘없는 사람, 대체 가능한 사람.


"표가 많아서"라는 말이 공공시설 관리자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곳은 이미 공공의 공간이 아니다. 납세자 모두의 시설이 아니라 표의 크기로 권리가 달라지는 곳이 되어 버린다. 규칙은 존재하지만 적용 대상은 선택된다. 다수는 규칙을 어겨도 되는 집단이 되고, 소수는 참고 넘어가야 할 집단이 되고, 약자는 대신 치워주는 사람이 된다.


"이해해 달라"는 말도 잔인하다. 이 말은 책임의 주체를 지워버린다. 어질러 놓은 사람은 사라지고 처리하는 사람만 남는다. 문제를 '불편한 민원'으로 축소시킨다. 규칙과 원칙의 문제를 감정과 배려의 문제로 바꿔 버린다. 그리고 은연중에 침묵하는 쪽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운다. 따지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세상 원래 그렇다고, 괜히 문제 키우지 말자고, 우리가 손해 보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을 안다는 것은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지, 구조에 순응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이들의 태도는 현실 인식이 아니라 책임 회피다.


체육관 바닥에 깔린 것은 깃털만이 아니었다. 무너진 상식도 함께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상식을 치우는 사람은 가장 약한 사람이었다.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두 다리 멀쩡한 사람들의 흔적을 치우는 동안, 제도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오만은 얼굴이 있지만 방조는 제도 속에 숨는다. 문제를 만든 사람보다 문제를 '없는 일'로 만드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빨리 망가뜨린다.


체육관을 나오며 생각했다. 상식이 무너질 때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은 잘못한 사람이 아니라 약자라는 것을. 그리고 모두가 보고도 "그냥 넘어가자"고 말할 때, 상식은 한 겹씩 벗겨진다는 것을.


매번 깃털은 치워지지만, 불편함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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