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은 어른다움

by 시온

오늘 안성기 배우님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향년 74세.


이미 오래전부터 혈액암과 싸워오신 분이라는 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열흘 전쯤 식사 중 갑자기 쓰러지셨고,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한 시대가 존경한 어른 한 분이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안성기 배우님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의 광고 모델로 여러 해 함께하신 적이 있었고, 그래서 그분의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인연 속에서도, 함께 일했던 분들에게서 전해 듣는 이야기들이 일관되게 같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늘 겸손하셨고, 점잖으셨으며,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셨다는 것. 특히 신뢰를 무엇보다 중하게 여기셔서 출연료나 계약 조건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분이 세상과 맺어온 관계의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였습니다.


안성기 배우님은 흔히 '국민 배우'로 불립니다. 아마 이 호칭의 첫 세대일 것입니다. 요즘처럼 '국민 첫사랑', '국민 여동생', '국민 MC' 같은 수식어가 쏟아지는 시대에, 그분에게 붙었던 '국민 배우'라는 말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애써 얻으려 노력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태도와 선택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다섯 살에 처음 카메라 앞에 섰던 그분은 이후 거의 70년 가까운 시간을 연기와 함께 살아오셨습니다. 한국 영화의 역사가 곧 그분의 필모그래피였고, 시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관객 앞에 섰습니다. 청춘을 대변하는 젊은 배우에서 중년의 무게를 담는 연기자로, 그리고 마침내 한 시대를 관통한 어르신으로. 고래사냥,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투캅스, 실미도, 라디오 스타. 제목만 들어도 그분의 얼굴이 떠오르는 작품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분을 기억하게 만든 건 화려한 필모그래피가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 보여주신 삶의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함께 일했던 분들 중 어떤 이는 "존재 자체가 위로였고 힐링이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이는 "친정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이런 표현들은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배우를 넘어, 한 사람으로서 어떤 자리에 계셨는지를 보여줍니다.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어른, 굳이 가르치려 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본이 되는 사람. 안성기 배우님은 그런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혈액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그분은 여전히 영화계의 크고 작은 자리에 나타나셨습니다. 몸이 힘드셨을 텐데도 후배들의 작품 시사회에 참석하시고, 영화제 무대에 오르셨습니다. 어떤 분은 그때의 모습을 보고 건강을 걱정했지만, 그분은 웃으며 "다 나은 것 같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도 주변을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셨던 걸까요.


요즘은 어른이 드문 시대라고들 합니다. 누군가를 존경할 만한 어른으로 기억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입니다. 그런 시대에 안성기 배우님 같은 분의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제게는 근처에서 지켜본 인연에 불과했지만, 그분이 더 오래 이 자리에 계시며 '참어른이란 무엇인가'를 더 오래 보여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민 배우라는 말이 하나의 수식어가 아니라 하나의 책임이 될 수 있음을, 그 무게를 감당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신 분. 화려한 수상 경력이나 작품 목록보다, 함께 일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따뜻함과 신뢰로 남은 분.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그래서 더욱 깊이 기억되는 분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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