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효율적인 체제다. 자원을 빠르게 배분하고 혁신을 끌어내는 능력만큼은 다른 체제가 따라오기 어렵다. 하지만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는 항상 문제였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생산성이 올라갈수록 그 혜택은 특정 집단으로 쏠렸고, 이를 둘러싼 갈등은 되풀이됐다. 이건 정책을 잘못 짰다거나 분배 의지가 부족해서라기보다,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에서 나오는 문제에 가깝다.
기술 전환기는 이 문제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제도를 빠르게 낡게 만들고, 시장은 정부가 따라잡기 어려운 속도로 움직인다. 규제를 강화하면 혁신을 막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규제를 풀면 불평등을 방치했다는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역할은 점점 좁아졌고, 시장과 정부는 서로 대립하는 관계로 고착됐다.
AI는 이 구도를 다시 흔들고 있다. 이제 중요한 건 정부가 시장을 얼마나 통제하느냐가 아니다.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정보 처리 능력이 있느냐가 문제다. AX는 단순히 행정을 효율화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보 환경을 만드는 역량의 문제다.
사실 이 질문은 새로운 게 아니다. 1965년 경제학자 오스카르 랑게는 「컴퓨터와 시장」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시장이 효율적인 이유는 수많은 개인의 지식이 가격이라는 신호로 집약되기 때문인데, 만약 컴퓨터가 이 파편화된 정보를 중앙에서 충분히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면, 계획경제도 효율성에서 시장에 뒤지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요한 건 그가 이념을 옹호하려 했다기보다, 정보 처리 능력이 경제 체제의 성능을 좌우한다는 점을 간파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컴퓨터는 이 가설을 감당할 수 없었다. 정보는 부족했고, 처리 속도는 느렸으며, 현실의 복잡성은 계산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결국 랑게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반증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질문 자체가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기술이 따라오지 못했을 뿐이다.
이 지점에서 AX를 다시 보게 된다. AX는 랑게가 상상한 중앙 계획 시스템이 아니다. 모든 의사결정을 정부가 직접 내리겠다는 발상과도 거리가 있다. 오히려 시장과 조직, 사회 전반에서 발생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해서, 정책 설계와 집행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고도화된 정보 처리 능력에 가깝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랑게는 시장을 대체할 중앙을 상정했지만, AX가 열어주는 가능성은 시장을 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정보 인프라다. 가격 메커니즘을 없애는 게 아니라, 가격이 포착하지 못하는 외부효과, 장기 리스크, 사회적 목표에 대한 정보를 시장 참여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는 계획경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더 잘 작동하도록 정보 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이다.
정부가 늘 혁신의 중심이었던 건 아니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보면 주요한 기술 도약들이 종종 정부가 긴 호흡으로 위험을 감수한 결과였다. 민간 자본은 단기 수익을 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당장 돈이 될지 불확실한 영역엔 쉽게 발을 들이지 않는다. 정부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전제로 자원을 투입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생겨났다. 무엇을 만들라고 지시한 게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방향만 제시한 경우가 많았다.
이게 임무 지향적 혁신이다. 정부가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민간의 역량은 전제하되, 초기 위험은 사회가 나눠 지고, 성과가 특정 기업에만 쌓이지 않도록 참여 기회를 넓히는 역할이다. 문제는 이런 역할을 하려면 정부 자체가 상당한 설계 능력과 실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임무 지향적 혁신을 설계하고, 인내 자본의 투입 효과를 추적하며, 성과가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경로를 이해하는 일은 고도의 정보 처리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이 한계 때문에 "차라리 시장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합리적으로 보였다.
여기서 정부 AX가 중요해진다. AX는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예산을 줄이는 수준을 넘어선다.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과정 전체에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장 신호를 더 정확히 읽고, 장기 효과를 내다보며, 정책 실험의 결과를 빠르게 학습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정부가 이 정도 수준에 도달하면, 시장을 제약하는 규제자가 아니라 시장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거래비용을 낮추는 역할로 전환할 수 있다.
AX가 이 한계를 실질적으로 낮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부는 더 이상 시장의 대척점에 서지 않아도 된다. 랑게가 상상했던 중앙집중적 계획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로 기능할 수 있다. 문제는 계획이냐 시장이냐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잘 정보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정부가 이런 정보 처리 능력을 갖추면 기업의 행동도 달라질 여지가 있다.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장기 투자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면, 눈앞의 실적만 쫓기보다 사회적 필요와 연결된 중장기 혁신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생긴다. 정부는 특정 방향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외부효과와 장기 리스크를 자발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정보 환경을 만든다. 그러면 혁신은 한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의 자산이 된다.
이런 구조가 제대로 돌아가면, 분배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 성과를 나중에 나눠갖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확산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기 때문이다. 임무 지향적 혁신은 초기 위험을 사회가 분담하는 대신, 결과물이 일자리와 기술 축적과 산업 경쟁력으로 시장 전체에 퍼지게 만든다. 분배는 성장이 끝난 뒤 보정하는 문제가 아니라, 성장 과정에 처음부터 들어 있는 설계 요소가 된다. '얼마나 나눌 것인가'보다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과를 만들 것인가'에 자원이 집중되는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자본주의를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는 과정이다. 혁신과 성장에서 자본주의가 보여준 강점은 살리되, 성과가 소수에게만 쏠리는 문제는 완화하자는 접근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 대 정부라는 오래된 구도도 힘을 잃는다. 정부가 충분히 역량을 갖추면, 시장과 맞서는 존재가 아니라 시장이 더 잘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AX의 의미는 생산성 향상에만 있지 않다. AX를 통해 정부가 복잡한 시장 신호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게 될 때, 자본주의는 한 단계 업데이트될 수 있다. 더 투명한 정보 환경, 혁신에 몰두하는 기업, 그 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번지는 구조. 이건 기술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는 규제를 더 늘리는 데서 시작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더 나은 정보 처리, 그리고 그 출발점인 정부 AX에 달려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