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웃음 뒤에 숨겨진 칼날

by 시온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이상한 역설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무례하고 대놓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다루기 쉽다는 것. 그들의 위험은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경계할 여지라도 있다. 진짜 문제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넉넉한 태도로 포장된 이들이라고 한다.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인의 회사에 A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A는 회사에서 늘 온화하고 넉넉해 보였다. 크게 웃고 사람을 챙기는 데 능숙했다. 신입 직원이 들어오면 먼저 밥을 사고, 힘든 일이 있으면 진지하게 귀 기울여 주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좋은 사람’이라 불렀고, 지인 역시 한때는 그를 그렇게 인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팀 회의에서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던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원 앞에서는 그 아이디어와 유사한 내용이 자신의 성과처럼 설명하는 장면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잘 풀릴 때는 자신이 중심 역할을 한 듯 보였고, 문제가 생기면 “저는 다른 의견이었습니다”라는 식의 발언이 뒤늦게 흘러나왔다고 한다.


뒤에서의 행동에 대해서도 여러 말이 돌았다고 한다. 상사에게는 동료들의 사소한 실수를 전하며 조직을 걱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오가며 미묘한 불안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조직이 서서히 갈라지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의 표정은 언제나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공자는 이런 유형의 사람을 ‘향원(鄕原)’이라 불렀다. 겉보기에는 흠이 없고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사지만, 세속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며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인물. 공자는 이를 두고 “향원은 덕의 적이다(鄕原, 德之賊也)”라고 하며 극도로 경계하였다. 노골적인 악은 누구나 알아보고 경계할 수 있지만, 향원은 선의 얼굴로 조직 안에 스며들어 신뢰를 잠식하기 때문이다.


지인의 이야기 속 A의 행보는 이런 설명과 겹쳐 보였다. 그가 맡은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책임 소재가 논의되기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두고도 사람들의 해석은 엇갈렸다고 한다. 놀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를 오래 지켜본 일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몇 년이 흐른 뒤, A는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고 한다. CEO가 바뀌며 조직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던 시점이었다. 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충성스러운 이미지를 앞세워 새 CEO와 가까워졌고, 그 과정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인상적으로 보였다고 한다. 자기애가 강하고 주변의 호의를 신뢰하는 성향의 CEO는 그를 중용했고, A는 다시 조직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갔다.


그러나 CEO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A를 둘러싼 이야기도 달라졌다고 한다. 외부 인사들과의 접촉이 잦아졌다는 말이 돌았고, 일부에서는 언론 관계자들과 만났다는 소문까지 흘러나왔다고 한다. 겉으로는 여전히 현 CEO를 지지하는 태도를 유지했지만, 그의 행보를 두고 조직 안팎에서 다양한 해석이 오갔고, 결국 이러한 의심과 불신은 인사 과정에서 그대로 반영되어, 그는 다시 초라한 모습으로 조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공자는 ‘이원보덕(以怨報德)’을 경계했다. 은혜로 갚아야 할 일을 원수로 되돌리는 태도다. 지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자신을 다시 불러들이고 중용했던 리더가 흔들릴 때, 그 곁을 끝까지 지키지 않았다는 평가가 결국 그를 다시 한 번 조직 밖으로 밀어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조직은 종종 묵묵히 성과를 쌓아온 사람보다, 말과 이미지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에게 더 쉽게 마음을 연다. 향원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연출된 인간미와 면전에서의 듣기 좋은 소리로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계산된 자산으로 바꾼다.


그 결과, 공동체를 위해 조용히 일하던 사람들은 냉소 속에 떠나고 조직은 안에서부터 조금씩 부식된다. 능력보다 교묘함이 보상받는 문화가 자리 잡는 순간, 방향은 흐려지고 신뢰는 무너진다.


향원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그 자체보다 조직의 선택이다. 겉으로 보이는 착함보다 실제의 기여를, 말보다 행동을, 이미지보다 결과를 기준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이 필요하다.


겉으로 따뜻한 사람은 많다. 그러나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넉넉한 웃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그리고 진짜로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을 지켜내려는 의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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