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유교나 공자를 비판하는 글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비판은 과녁을 잘못 겨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조선이 겪었던 문제들을 돌이켜보면, 그 원인은 유교 사상 자체에 있었다기보다 사상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어떤 사상이든 그것이 권력과 결합하고, 다른 목소리를 차단하며,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체제가 될 때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실제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공자나 주자학 자체가 아니라, 주자학을 독점하고 그것을 권력 유지의 도구로 삼은 체제였다.
『대학』의 한 구절을 두고 주희는 "新民(백성을 새롭게 한다)"으로 해석했고, 양명학은 "親民(백성과 가까워진다)"으로 읽었다. 단 한 글자 차이지만, 이 해석의 분기점은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꽤 중요한 갈림길이 되었다.
주자학의 新民은 이런 생각을 담고 있다. 도덕적 원리는 이미 완성된 질서로 존재하고, 문제는 백성이 그것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가르치고, 교화하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도덕, 제도와 규범 중심의 질서가 형성된다.
양명학의 親民은 조금 다르다. 도덕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있다.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멀어짐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은 가르치는 것보다 다가가는 것, 위에 서는 것보다 함께 서는 것이다.
이 대비를 단순히 "권위적 대 따뜻함"으로 읽으면 곤란하지만, 적어도 두 사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어떻게 다르게 상상했는지는 보여준다. 주자학에서 백성은 깨우쳐야 할 대상이고, 양명학에서 백성은 연결되어야 할 존재다.
문제는 조선의 지배층이 新民이라는 해석에서 무엇을 발견했느냐다. 그들은 여기서 통치의 정당성을 찾아냈다. "우리는 안다, 백성은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르치고 이끌어야 한다." 이 논리는 위계를 자연스럽게 만들었고, 기득권을 도덕으로 포장했다.
공자는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황과 관계 속에서 판단했고, 仁을 정의하지 않고 실천 속에서 드러나게 했다. 공자는 체계보다 태도를, 규범보다 과정을 중시한 사상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선의 지배층은 공자를 다르게 활용했다. 공자는 사유의 출발점이 아니라 사유를 멈추게 하는 권위가 되었다. 그들이 작성한 정답을 독점한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했다.
조선에서 주자학은 단순한 철학 이상이었다. 그것은 법과 제도의 근거이자 관료 선발 기준이었고, 교육 시스템이자 사회적 위계의 정당화 논리였으며, 도덕적 검열 장치였다. 지배층은 주자학을 국가를 움직이는 일종의 운영체제로 만들었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면 권력은 영속화된다. 불교와 도교는 주변으로 밀려났고, 다른 유학 해석은 이단이 되었다. 질문은 不敬이 되고 의심은 不穩이 되었다. 정책 실패는 능력 문제가 아니라 도덕 결함의 증거가 되었고, 권력 투쟁은 도덕 논쟁으로 포장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기득권은 자신들의 위치를 지켰다.
사실 유교는 원래 스펙트럼이 넓은 사상이다. 공자와 맹자가 있고 순자가 있으며, 한대 유학이 있고 송대 성리학이 있고 양명학과 고증학이 있다. 그 중 주자학은 송대 중국의 특정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버전일 뿐이다. 문제는 조선의 지배층이 이 버전 하나를 유일한 기준으로 만들고, 자신들만이 그것을 해석하고 집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17세기 이후 조선에서 주자학은 점점 더 정통화되고 교조화되었다. 18세기에는 문제를 인식했지만 구조를 바꾸지 못했고, 19세기에는 외부 충격을 해석할 언어 자체가 희미해졌다. 현실은 변했는데 지배층이 해석 도구를 고정시킨 사회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주자학을 채택한 사회라도 다르게 갔다는 것이다. 일본은 변형했고 중국은 상대화했지만, 조선은 절대화했다. 문제는 사상 그 자체가 아니라 사상을 독점하고 수정 불가능한 진리로 만든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이면에는 권력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 논의가 과거사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도 하나의 이념을 독점하고 그것을 도덕으로 만들며 비판을 봉쇄하려는 시도는 계속된다. 어떤 사상이든 그것을 유일한 정답으로 만들고 다른 사고를 차단하려는 순간, 그 뒤에는 권력을 지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조선은 주자학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자학만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 기득권을 영속화했다. 사상을 독점하고 수정 불가능한 진리로 만드는 순간, 그 사상은 더 이상 사유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 유지의 도구가 된다. 주자학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주자학을 독점한 권력이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