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30년 이상 해서 아부의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지만,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 2개가 있다.
첫 번째는 당사자의 이름을 밝힐 수 없어 가명을 사용한 가상의 예를 드는 것이지만, 그 본질은 변함이 없다. 이름이 '철수'인 임원이 있었다. 임원들이 모인 어느 자리에서 그가 말했다. "예전에는 철수(撤收)가 잦았지만, 사장님을 만나고부터는 늘 사수(死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웃었다. 표면적으로는 유머였지만, 그 말은 충성 서약이었다. 핵심은 부모님께서 고심을 하며 지어준 고귀한 선물인 자신의 이름을 비하하며 개그에 가까운 아부를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장면은 플랫폼을 주제로 한 임원 워크숍이 끝나고 만찬 자리에서 있었다. 한 임원이 건배사를 하며 말했다. "우리는 XXX 사장님이라는 위대한 플랫폼에 숟가락을 얹고 먹고 삽니다." CEO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웃었다. 하루 종일 디지털 플랫폼과 비즈니스 생태계를 논의하다가, 갑자기 CEO 개인이 플랫폼이 되었다. 그 말에는 우리가 기생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고, 우리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규정하는 발언이었다. 리더 개인을 조직 전체와 동일시하며 그에 대한 충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농담의 형식을 빌렸지만,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저는 누구보다 당신 덕분에 먹고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깨어있는 사람이오니,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문제는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 조직의 기준이 바뀐다는 것이다. 능력보다 충성이, 성과보다 찬양이 중요해진다. 실력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남은 사람들은 아부하는 법을 배운다.
아부가 계속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리더도 사람이다. 칭찬을 좋아하고, 비판은 불편하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된다. 특히 불확실한 결정을 내린 직후에는 더욱 그렇다. 아부는 리더의 불안을 덜어준다.
둘째, 리더는 고립되어 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진실을 듣기 어렵다. 사람들은 조심스러워지고, 나쁜 소식은 전달되지 않는다. 이때 아부하는 사람은 리더에게 '내 편'처럼 느껴진다. 고독한 리더에게 아부는 위안이다.
셋째, 조직의 보상 체계가 불투명하면 아부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승진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리더 마음에 들기'를 가장 확실한 전략으로 본다. 한 사람이 아부로 승진하면, 다른 사람들도 학습한다. 곧 아부는 조직의 규칙이 된다. 이렇게 아부는 개인의 전략에서 시작해 조직의 문화가 된다. 리더가 한 번 아부를 받아들이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아부가 몰려온다.
흥미로운 것은 현명한 리더도 아부에 약하다는 점이다.
우선, 성공한 리더일수록 자신의 판단을 신뢰한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부는 이 믿음을 강화한다. "내가 생각한 대로 옳았어"라는 확신을 준다. 또한 리더는 하루 종일 결정을 내린다. 피곤하다. 피곤할 때 사람은 편한 선택을 한다. 비판을 듣고 따져보는 것보다, 칭찬을 받아들이는 게 쉽다.
무엇보다 리더는 외롭다. 동료가 없다. 진심을 나눌 사람이 드물다. 이때 아부하는 사람은 친구처럼 느껴진다. 지능도 외로움을 해결하지 못한다.
역사를 봐도 그렇다. 뛰어난 지도자들도 말년에는 간신에 둘러싸였다. 솔로몬도, 나폴레옹도, 스티브 잡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무리 현명해도 권력이 오래되면 주변이 변한다. 아니, 정확히는 리더가 변한다. 비판을 견디는 힘이 약해진다.
아부가 지배하는 조직은 천천히 무너진다. 가장 먼저 정보가 왜곡된다. 리더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된다. 문제가 있어도 보고되지 않는다. 결정은 점점 현실과 멀어진다.
다음으로 인재가 떠난다. 실력 있는 사람은 아부하는 사람이 승진하는 걸 보면서 환멸을 느낀다. 떠날 수 있는 사람부터 떠난다. 남는 것은 맹목적 충성파와 떠날 곳 없는 사람들이다.
신뢰도 무너진다. 사람들은 공식 발언을 믿지 않는다. "저 말의 진짜 의도는 뭐지?"를 생각한다. 회의 시간의 절반은 정치적 해석에 쓰인다. 협력은 줄고, 부서 간 벽은 높아진다.
결국 조직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환경이 바뀌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센서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코닥이 디지털을 놓친 것,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놓친 것에는 기술만이 아니라 조직문화에도 문제가 있었다.
아부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줄일 수는 있다. 핵심은 리더의 태도다.
반대 의견을 제도화하라. 중요한 안건마다 누군가에게 "이 결정의 문제점을 찾으라"는 역할을 주는 것이다.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썼던 방법이다.
여러 경로로 정보를 받아라. 같은 이슈를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보라. 익명 피드백을 정기적으로 받아라. 한 사람의 말만 듣지 마라.
인사를 투명하게 하라. 승진 이유를 기록하고 공유하라. 사람들이 "실력으로 올라간다"는 걸 믿게 하라.
리더 자신이 피드백을 받는 모습을 보여라. 실수를 인정하라. 완벽한 척하지 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가 문화를 바꾼 방법이다.
작은 아부도 넘기지 마라. "철수에서 사수로"라는 농담, "숟가락 얹기"라는 건배사를 그냥 웃어넘기지 마라. 그 순간 무엇을 말하느냐가 조직의 기준을 만든다.
나는 그날 모욕감을 느꼈다. 만찬 자리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때, CEO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기생충으로 규정하는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플랫폼 전략을 논의하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생태계를 이야기했는데, 저녁이 되자 CEO 개인이 플랫폼이 되고 우리는 그 위에 얹힌 존재가 되었다.
만약 그때 CEO가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재치 있는 표현이지만, 우리는 누구 덕분에 먹고 사는 게 아닙니다. 각자의 성과로 먹고 삽니다.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 한 마디가 기준을 만든다.
권력자는 자신이 받는 말을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조직을 만든다.
아부는 리더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가 무엇을 웃어넘기고, 무엇에 침묵하느냐가 조직의 품격과 성과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