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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menPark Jan 13. 2021

영화 <윤희에게> <남과 여>

료칸, 사우나, 그리고 목욕탕

어릴 적 눈이 오면, 볼과 코끝 사과처럼 빨게 지도 뛰놀았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담장 처마 밑에 길게 매달린 고드름을 떼어서, 이 시린 줄도 모르고 오독오독 깨물어 먹던 재미는 친구들과의 놀이 중 백미였다.  지금처럼 두툼하고 고급진  패딩이 있던 것도 아니고 , 오로지 빨간 내복으로  한겨울을 났을 텐데 왜 추웠던 기억이 없는 걸까!

기억이란 가끔은 곡되고 미화되어, 소중한 감정적  자산으로 남는다.


영하 17-18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의 날씨에 며칠 전 내린 눈이 얼어붙어서, 도로가 회색 빛으로 변해버렸다.

중무장한 옷차림으로 행여나 미끄러질세라 뒤뚱뒤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펭귄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펭귄들의 행렬..


영화 '윤희에게'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 보면 바닷가 옆에 위치한 작은 도시 '오타루'가 배경인데,

쌓인 눈만큼이나 절절한 사랑의 깊이를

김희애의 섬세한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 김희애를 다시금 인정하게 되는 영화다. 사람 키 높이만큼 눈이 쌓인 도로와, 끝없이 눈이 내리던 '오타루'를 보면서, 일본 료칸  여행이 생각났다.


나리타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달려가  도착한 '하코네 료칸'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너무도  앙증스러운 요리를, 인터벌도 아주 길게 천천히 대접받은 후,  온천에 몸을 담그고 하늘에서 자분자분 내리던 눈을 바라보던 순간의 느낌은 "참 좋다"였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던 고요의 경험!!


다음날 아침에 온 세상이 밤사이 내린 폭설로 하얗게 변해버려 망연자실, 눈길에 빠져 굴러가지 않던 케리어 바퀴들다시피 질질 끌며 이동하던 기억은 delete키를 살짝..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고 오감이 만족되던 료칸 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친김에 유명한 료칸들을 검색한.


잡지 《지유진》의 편집장 "이와사 도오루"가 만들었다는 '사토야마주조 료칸'을  "버킷 리스트" 목록에 살포시 추가한다.

-사토야마주조에 흐르는 공기와 시간은 여유롭다. 충분히 여유롭다. 이렇게 정직하고 정중한 료칸은 본 적이 없다. -는 믿을만한 이의 후기 때문에라도


별 기대 없이 영화'남과 여'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순전히 배경 때문이었다. 핀란드의 겨울!!


2012년 여름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를 여행할 때
한여름인데도 그곳은 초가을처럼 서늘했다.

"핀란디아"의 작곡가 "시벨리우스 공원"

북유럽의 겨울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해소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름다운 설경,
쭉쭉 높이 뻗은 자작나무들,
그 숲 속에 위치한 사우나..
충분히 아름다운 영상들!!


주인공 전도연과 공유는
장애가 있는 자녀들을 핀란드에서 교육시키며 자녀들의 문제로 아픔을 겪고 있었고,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에서 기인한 아픔을 보상받듯 사랑에 빠진다. 

그들사랑의 배경도 사우나였다.


 핀란드 사람들에는 손님과 함께 사우나를 하는 것이 커다란 환대란다.

계절이 바뀌거나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예를 들면 내일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 반드시 사우나를 한다.

달구어진 돌에 물을 끼얹고 사우나 온도가 급속도로 90도 가까이  올라가면 자작나무 다발로 몸을 두드리고, 잠시 후 사우나 밖으로 나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몸을 식힌다.

또다시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달구고, 밖으로 나갔다가를 반복한다는데, 목욕탕에서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할 때의 상쾌함과 비슷할 것 같다.

폭설로 길이 마비되고, 백야로 암막커튼을 치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룰지라도, 어느 눈 오는 날 핀란드에 가고 싶다." 버킷리스트 추가"


비싼 시간과 돈을 지불하며 음악회나, 전시회장을 찾는 이유는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감정의 온도가 훨씬 뜨겁기 때문인 것처럼, 여행 또한 유일무이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에 포기할 수 없다.

낯선 곳이 늘 궁금해서 버킷리스트의 여행 추가 목록은 늘어만 간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오늘 같은 날은 동네 목욕탕을 찾고 싶다.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가며 몸을 불린 후, "몇 번~~"이라 큰소리로 외치시는 쇄신사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냉큼 달려가 푸른 침상에 누워 불린 때를 미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 밥알 동동 식혜도 마셔가면서..


 정체모를 바이러스 탓에 료칸도, 사우나도, 동네 목욕탕을 찾는 일도 언감의 생심이다.


아! 젊은 시절에 그 젊음을 만끽하시오.
따분한 것들에 귀 기울이느라 황금 같은 시절을 허비하지 말아요.
당신의 인생을 어리석고 흔해 빠진 저속한 것들에 내줘서는 안 되오.
삶을 살아가시오. 당신에게 주어진 멋진 삶을 살아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말이 더욱 사무치게 와 닿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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