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 ep1. 처음 보는 사람들과 유람선에서 먹는 자연산 회
"남자친구 있어?"
"없습니다"
"우리 아들이랑 딱! 어울릴 것 같아! 몇 살이야? 어디 살어? 뭐하는지 물어봐도 되나?"
이렇게 나는 섬 여행을 가면 무슨 일인지 어머님들과 아버님들께서 아들을 소개해준다며 말을 걸어오신다.
예쁘게 봐주시는 어른분들 덕분에 나는 늘 여행을 혼자 떠났지만 하나, 둘, 셋 때로는 그 이상의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서 추억을 쌓게 된다.
그렇게 나는 혼자이지만 함께인 여행이 시작된다.
빈 속에 배를 3시간 30분 타고 들어온 홍도에서 나는 회덮밥을 주문했다. 매운탕이 먹고 싶었지만 2인분 이상 주문 음식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채신 걸까? 옆자리에 있던 어머님이 우럭 살이 아주 쫄깃하다며 먹어보라고 대접으로 가득 퍼주는데 인심이라는 건 사장님들에게만 쓰는 표현이 아닌가 보다. 그저 나누는 그 행위 모든 것들이 인심이 넉넉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넘치는 인심 덕분에 나는 회덮밥도 매운탕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나와 함께 한 테이블에서 한 식구처럼 식사를 했던 두 분은 90세가 넘으신 어머니와 함께 온 모녀이다. 두 분은 내가 신기하다고 하시지만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고 이 여행을 즐기시는 모습이 느껴졌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나도 나이를 먹고 엄마도 나이를 먹었을 때, 둘이 어딘가 훌쩍 떠나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올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두 분의 식사를 바라보며 어쩐지 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 졌다.
엄마, 아빠, 오빠, 나 이렇게 가족이 구성되어 있는 식구 안에서 나는 언제나 막내다. 그리고 외가에서도 친가에서도 나는 나이차이가 나는 동생들 덕에 막내처럼 자라 온 시간이 익숙하다.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식당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면 막내가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이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우리 가족문화)
"커피 드시분!!!"이라고 물으면 다들 손을 들어주시고 나는 종업원 체험이라도 하듯 메뉴를 받고 곧바로 커피를 내려주는 기계로 가서 미친 듯이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면 다행이다 믹스커피를 셀프로 타는 식당도 있다) 그리고 쟁반에 착!착! 놓고 주문해 주신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게 바로 막내의 특!권!
그런데 오늘 나는 이곳에서 분명 막내인데 커피를 받았다. 아까 아들을 소개해준다고 했던 어머님께서 커피를 돌리고 계신 게 아닌가... 이 기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 감사하고, 쑥스럽고 오만가지가 드는데 이곳은 사회가 아니면서도 왜인지 내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있는 그대로 우리는 서로를 챙기면서 함께 여유를 즐기는 여행인데 나는 너무 여행을 세상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 것만 같다. 이곳은 야생과 같이 살아남으려고 아둥바둥 하는 사회가 아닌데.. 잠시 이 달콤하고 따뜻한 믹스커피 한 잔을 통해 나는 이번 여행의 긴장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홍도에서 2박 3일 지낼 곳(1층은 식당, 5층까지는 숙소 운영)
과연 내가 방문했던 곳 중에서 가장 뷰가 좋은 횟집이다. 홍도에서 가장 끝쪽에 위치해서 바다가 바로 보이고 노을도 바로 보이는 식당이라 그런지 매일 아침/점심/저녁을 기대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유람선 계획은 없었지만 밥을 먹고 탑승 가능하다는 말에 식사를 같이 했던 분들과 함께 유람선 탑승을 예약했다. 밥을 먹고 방에 짐을 놓고, 옷도 갈아입고 내려와서 40분에 출발하는 유람선을 못 타고 그다음 50분 출발하는 유람선을 탑승했는데... 숙소 이모님이 첫 번째 유람선이 설명을 더 재미있게 해 준다고 너무 아쉬워하는 게 나까지 아쉬운 느낌이 느껴졌다. 나중에 들었는데 입담이 조금씩 다르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할까, 그냥 나는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촛대 바위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첫 번째 포토존이라 그런지 사진 찍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너도 나도 사진을 찍겠다고 무질서 속에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유람선 2층 야외 포토존.
시간이 지나서 다시 사진을 보면 설명은 기억 안 나고 도떼기시장 같은 상황만 기억난다. 사진이 남는 거라고 하는데.. 적어도 다녀온 곳이 무엇인지 알고 전할 수 있어야 진정 남는 게 아닌가 싶어서 나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해와 다른 서해 속의 보석을 만난 기분이다. 갯벌 때문인지 나는 서해에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늘 동해가 더 멋지고 맑다고 느꼈는데 이번 서해에 있는 섬 방문을 통해서 서해/동해 이렇게 나눠서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넓고 내가 보는 건 일부인데 어떻게 그게 전부인 거처럼 말하고 다녔을까?
식사를 하고 또 가방을 가득 챙기셨는데 알고 보니 귤이랑 초코가 가득했다. 유람선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눠 먹는데 그 온기는 잊을 수 없다. 정이라는 게 이런 걸까?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처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라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모녀가, 부부가, 그리고 가족들이 그리고 그 속에 나. 사실은 독립적인 주체들이지만 하나, 둘 모여서 그룹을 이루고 우리가 되는 게 살아가는 온기 곧 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계획할 때, 유람선에서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고 3만 원 자연산 회를 위해서 누군가와 친해져야 하는 혼자만의 미션을 세웠는데 놀랍게도 난 유람선을 탑승하기 전에 배에서 함께 회랑 소주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만났다.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르겠다.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던 모녀, 부부, 그리고 수녀님 2분과 함께 우럭이랑 다른 종류의 회를 하나 더 섞어서 먹었는데 우럭이 진짜 그동안 내가 먹었던 것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쫄깃!쫄깃! 맛있었다.
아버님이 사주셨던 회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하는 시간이었기에 더 맛있었던 거 같다.
언젠가 친한 언니가 나에게 "음식은 아무나랑 먹는 거 아니야"라고 했는데 그 말 뜻을 이해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 지나서 깨달았다. 같은 음식도 가족과 또는 친구와 때로는 같이 먹기 싫은 누군가 먹을 때 맛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참으로 신비롭다 사람의 감정과 기분이라는 것이. 예전에 즐겨보던 프로그램에서는 함께 밥을 먹으면 가족이라면서 여기저기 벨을 눌러 밥을 달라고 하며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을 먹던데 이건 무슨 일인가 하겠지만 어쩌면 다 같이 식사를 한다는 의미는 '먹는다'의 의미가 전부가 아닌 '소통'의 의미가 있는 거 같다.
나는 이제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채움보다는 나누는 소통이 더 기쁨인 거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에서 나누는 삶이라는 건 물질적인 나눔만을 의미하는 게 아닌 서로서로 교류와 소통에서 오는 나눔도 나누는 삶이겠지.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 횟집, 한국에서 홍도 유람선 말고 또 있을까? 궁금하다. 나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 준 홍도 유람선 투어!
'나'도 '핸드폰'도 '카메라'도 모두 함께 배터리가 방전되기 직전이라서 폰을 열심히 살리고 있는 중이다. 사실 충전기를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1층 구석에 콘센트가 잘 작동되어서 잠시 유람선 전기도둑을 10분 정도 했던 거 같다. (선장님 이거 사용하라고 있는 거 맞죠? ^^?)
유람선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숙소는 진짜 천국 같다. 나는 바닥에서도 잘 자는 스타일이라 방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 최고로 틀어놓고 바닥을 뒹구는데 그 어디보다 이곳이 바로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하다가.... 잠시 잠들어버렸다.
>> 다음 이야기: ep2. 몽돌해수욕장; 내 시선 속 프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