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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캣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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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트린 Apr 08. 2020

동생의 현실 집사 적응기

캣맘 일기

- 언니, 핑코가 새벽마다 너무 큰 소리로 울어서 식구들이  잠을 설쳐.

- 언니, 언니가 시킨 대로 캣닢을 뿌려줬는데도 애가 좋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어.

- 언니, 핑코 약 먹이다가  ○○  아빠  피 봤어




2년 전 여름, 막내동생은 얼떨결에 고양이를 떠맡았다.

파란만장 생존기의 주인공인 개똥이의 동생을 임시보호하게 된 것이다.

(한 배에서 나온 개똥이보다 몸집이 작았기에 내 마음대로 동생으로 추정해본다.)


개똥이 대신 순순히 통덫에 잡힌 이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키는데

간호사가 '보호자님, 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었고

핑크핑크한 코가 순하게 보여서 순간 '핑코라고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핑코는 다음 날 캣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범백 판정을 받고

2주 동안의 치료 끝에 퇴원을 허락받았다.

하지만 전염성이 있는 범백균은 한동안 분변으로 배설될 수 있어서 

퇴원을 도 고양이가 없는 집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마땅한 임시보호처를 구하지 못하자 나는 초등학생 딸을  막내동생에게 사정했다,


동물이 있으면 외동인 네 딸 정서에도 정말 도움이 될 거다,

길어야 한두 달이고 그동안 사료와 모든 비용은  내가 책임지겠다, 등등. 


동생과 제부는 나이 많은 언니의 부탁인지 강요인지를 거절하지 못하고

임시보호라는 전제하에, 그리고 외동딸의 정서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핑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핑코와 동생네 가족의 동거는 순탄치 않았다.


순해 보이던 인상과 달리, 난생처음 인간의 집에서 거주하게 된 핑코는 극도의 두려움과 경계심을 드러냈다.

생각해보면 죽을 정도로 아픈 몸으로 공포스러운 병원 생활을 마쳤는데

또 인간이라는 낯선 종족과 생활하게 됐으니 그 두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동생네 가족은 고양이의 생태나 습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고양이도 강아지처럼 교육만 잘 시키면 순하고 사랑스러운 가족이 되리라 기대했다.


게다가 동생은 어려서부터 강아지를 돌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자기 딸도 강아지 돌보듯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여 성과를 보고 있을 정도로, 

나름 사육이라면 자신감 좀 갖고 있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이 탁월한 사육 실력이 오히려 어린 고양이에게는 반항심과 거부감만 일으켰는지

동생의 사육은 도무지 핑코에게 먹히지를 않았다.


핑코가 아직 철장에 갇혀 격리 생활을 하던 시절, 

동생이 간식을 보여주며 핑코 손! 하면 핑코는 귀를 접고 한 걸음 물러났고

돌돌 만 신문지로 훈육이라도 할라치면 하악질이나 발톱으로 응수했다.

약을 먹이거나 목욕이라도 하려면 온 가족이 한바탕 피바람을 각오해야


사정이 이러니 사람 집에서 처음 살아보는 핑코와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동생네 가족 사이에서는 말 그대로 혈투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스트레스 탓인지 핑코가 새벽에 일어나 큰 소리로 울거나

빨래걸이의 빨래를 찢어놓는 등 이상행동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와 맘을 졸이기도 .






고양이 덕후인 큰언니에게서,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애교 넘치고 사람 좋아하고 깨끗하고 조용한 동물인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동생네 가족은

내심 우리 집에도 고양이가 오면 하나밖에 없는 딸의 좋은 친구가 되고 사람에게 와서 부비고 애교 떠는 귀여운 가족이 더해지리라 생각했으련만...


현실은 기대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한두 달의 시간을 두고 핑코의 입양처를 구했으나

범백을 앓았던 데다 아직도 야생 본능이 팔팔 살아 있는 아이의 입양처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동생을 설득하여 핑코를 입양하게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초등학생인 어린 조카의 정에 호소했던 것 같다.


조카는 툭하면 하악질과 발톱을 드러내는 핑코를 무서워하면서도 아주 떠나보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할퀼까봐 무섭지만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동생네 부부 역시 썩 내키진 않지만 이미 정이 들어버린 핑코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가족으로 받아주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그럭저럭 서로 몸을 부비며 동거를 유지하는 관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핑코를 강아지처럼 쪽쪽거리고 싶은 날이면 

동생과 핑코 사이에는 아슬아슬긴장의 기운감돈


언니, 내가 만지려고 가까이 가 서핑코가 

'제발 나 좀 건드리지 마' 하는 눈빛으로 얼마나 애절하게 쳐다보는지 몰라.

그럼 나는 일부러 더 달려들어서 꽉 껴안아 주지. 질색을 하건 말건 말이야. 하하하.


핑코도 지금쯤은 동생의 이런 장난기가, 딴은 애정의 표현이란 걸 이해했으려나?

하지만 자기를 핑코가 아닌, 서핑코라 불러주는 의미는 아마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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