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대신 소프트웨어를 요구하는 시장, 컨설팅의 실존적 위기
수십 년간 전 세계 경영 전략의 길잡이로 군림해 온 '맥킨지들(전통 컨설팅사)'이 창립 10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과거에는 정보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값비싼 조언을 팔았다면, 이제는 AI가 그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해 최적의 답을 내놓기 때문이다. IT 현장에서 40년을 보낸 필자의 눈에 비친 이 현상은 단순한 업무 자동화가 아니라, '지식의 가치'가 이동하는 거대한 지각변동이다.
팔란티어의 CEO 알렉스 카프는 "고객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파워포인트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소프트웨어"라고 일갈했다. 과거 컨설팅의 결과물이 수백 페이지의 보고서였다면, 이제 기업들은 그 즉시 현장에 적용해 성과를 낼 수 있는 AI 솔루션을 원한다. 화려한 수식어와 전략적 구호보다 '작동하는 결과물'이 우선인 시대가 온 것이다.
오픈AI와 앤스로픽 같은 기술 기업들은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전문가 파견' 모델로 컨설팅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기업의 내부 데이터를 학습해 실시간으로 전략을 제안하고 리스크를 관리한다. 수억 원의 수임료를 내고 수개월을 기다려야 했던 컨설팅 보고서의 효용성이, 초거대 언어모델(LLM)의 즉각적인 답변 앞에 무너지고 있다.
전통 강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다. 맥킨지는 데이터 분석 기업 '퀀텀블랙'을 인수하고 내부 AI 플랫폼 '릴리'를 구축하는 등 기술 회사로의 변신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 컨설턴트의 통찰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이제 컨설팅의 핵심 역량은 '말'이 아닌 '데이터'와 '기술'로 옮겨갔다.
단순히 정보를 취합하고 정리하는 수준의 지식 노동은 이제 AI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AI가 내놓은 수많은 선택지 중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미래의 컨설턴트는 보고서를 쓰는 작가가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다뤄 실제 비즈니스의 복리를 만들어내는 '엔지니어적 기획자'가 되어야 하겠다.
"정보가 권력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권력은 정보를 어떻게 '실행'으로 옮기느냐 하는 구현 능력에서 나온다. 40년 전 우리가 처음 코딩을 시작했을 때처럼, 다시 본질로 돌아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겉치레뿐인 보고서의 시대는 가고, 실질적인 가치를 증명하는 기술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더 읽어보기: 2026.03.14. 김은정 기자. "AI가 맥킨지의 점심을 훔쳤다"… AI의 컨설팅 진출에 존립 위기 맞은 '맥킨지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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