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 미군 사령부에 하나의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일본군과의 교전을 마치고 귀환한 폭격기들. 동체에는 어김없이 총탄 자국이 빼곡했고, 사령부는 이 데이터를 토대로 장갑을 보강하려 했습니다. 논리는 명쾌해 보였습니다. 총알이 가장 많이 박힌 부위가 곧 취약한 부분이니, 거기를 두껍게 만들면 된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 통계학자가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총알 자국이 몰려 있는 부위가 아니라, 총알 자국이 없는 부위였습니다.
수집된 데이터는 무사히 돌아온 비행기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돌아온 기체에 피탄 흔적이 많다는 건, 거기에 맞아도 치명타가 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격추되어 영영 돌아오지 못한 비행기들은? 귀환기에 자국이 없는 바로 그 부위—엔진, 연료 탱크—에 총탄을 맞았을 겁니다. 이른바 '생존 편향(Survivorship Bias)'이었습니다.
인간의 직관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 끌립니다. 총알 자국이 빼곡한 동체를 보면 본능적으로 '여기가 위험하다'고 느끼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통계학자는 눈앞에 없는 것—격추된 비행기, 돌아오지 못한 데이터—에 주목함으로써 정반대의 해답을 끌어냈습니다. 직관이 가리키는 방향과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이 정확히 180도 어긋난 순간이었습니다.
이 일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하나의 혁명을 상징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은, 인간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던 전쟁 수행 방식 자체를 수학과 통계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전쟁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든 이 혁명의 이름이 바로 작전연구(Operations Research)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어떤 전쟁과도 규모가 달랐습니다. 무기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졌고, 전장은 유럽의 참호에서 태평양의 산호섬까지 전 지구로 확대되었습니다. 수천 대의 항공기가 하늘을 뒤덮고, 수백 척의 함정이 대양을 누비며, 수백만 명의 병력이 동시에 움직이는 전쟁. 뛰어난 장군 한두 명의 직관과 경험만으로 이 복잡성을 통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연합군—미국과 영국—은 전례 없는 실험에 착수합니다. 수학자, 물리학자, 통계학자를 대규모로 군에 투입한 것입니다. 이들의 임무는 칼을 쥐거나 방아쇠를 당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연필과 방정식으로 전쟁을 풀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학문이 '작전연구(Operations Research, OR)'입니다. 이름 그대로 군사작전(Operation)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과학자들을 동원한 데서 출발한 군사학의 한 분야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기법은 기업과 산업으로 건너가면서 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 의사결정 과학(Decision Science), 혹은 계량 경영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됩니다. 오늘날 산업공학, 경영학, 경영공학, 시스템공학 등에서 폭넓게 다루는 분야가 되었지만, 그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있습니다.
핵심 원리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빠짐없이 찾아내고, 그것을 수학 공식에 넣어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선택지를 뽑아내는 것. 쉽게 말해 '감 대신 계산으로 결정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전쟁을 하나의 거대한 방정식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방정식은 곧 전장 곳곳에서 직관을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수 마일 너머의 적함을 맞히는 법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함포 조준이었습니다. 전함이 수 마일 떨어진 적함을 향해 포탄을 쏘는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과거에는 포수의 시각적 판단과 시행착오, 그리고 감에 의존했습니다. 부정확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며, 실전에서 빗나갈 확률이 높았습니다.
작전연구에 투입된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완전히 해체합니다. 거리, 풍속, 탄두 크기, 두 전함의 상대적 속도와 방향, 발포하는 배의 앞뒤 흔들림과 좌우 흔들림, 심지어 지구의 곡률까지. 함포 조준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를 찾아내어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극적이었습니다. 배의 흔들림 같은 변수들이 센서를 통해 즉각 측정되어 조준 시스템에 자동으로 입력되면서, 오차를 유발하던 인간의 개입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후 레이더가 목표물을 자동으로 인식하고 계산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포수의 감에 의존하던 함포 사격은 정밀 타격으로 탈바꿈합니다. 내비게이션 없이 감으로 운전하던 시대에서, GPS가 최적 경로를 자동으로 안내하는 시대로 넘어간 것과 비슷한 전환이었습니다.
U-보트를 잡아라: 대서양의 확률 전쟁
전쟁 초기, 영국은 독일 잠수함 U-보트의 무차별 공격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대서양을 오가는 보급선들이 줄줄이 격침당하면서 섬나라 영국은 말 그대로 질식 직전에 몰렸습니다.
영국 공군과 해군은 이 위기를 작전연구로 돌파합니다. 수학적 확률과 통계를 토대로 항공기 순찰 경로를 재설계하고, 폭뢰 투하 심도를 최적화했으며, 상선들의 호송 대형을 수학적으로 재편했습니다. 어디를 어떤 경로로 순찰해야 잠수함 발견 확률이 가장 높은지, 폭뢰를 어느 깊이에서 터뜨려야 파괴력이 극대화되는지. 모든 것이 계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시행착오와 통계적 분석이 쌓이면서, 연합군은 마침내 U-보트를 압도하고 대서양의 주도권을 되찾습니다.
란체스터의 제곱 법칙: 전투력을 방정식에 넣다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 '집중의 원칙'도 수학의 언어로 증명되었습니다. 영국의 F. W. 란체스터는 양쪽 군대가 싸울 때 병력이 어떤 속도로 줄어드는지를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근대전에서 전투력은 병사 수에 단순 비례하지 않고, 병력 수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예를 들어 아군이 3만, 적이 1만이면 전투력 차이는 3:1이 아니라 9:1이 됩니다. 숫자의 우위가 제곱으로 불어나는 것입니다.
이 법칙의 함의는 강력했습니다. 전체 전력에서 열세하더라도 결정적인 한 지점에 병력을 압도적으로 집중하면 전체 전투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 것입니다. '병력을 모아야 한다'는 오래된 군사 원칙이 수학을 통해 정확히 얼마나 모아야 하는지까지 계산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풀러의 기하학: 참호를 돌파하는 공식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J. F. C. 풀러는 참호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무작정 병력을 밀어 넣는 대신, 방어의 특성을 수학적으로 계산합니다. 적의 방어 종심이 5마일일 때, 측면 기관총의 사거리(45도 각도)를 극복하려면 이론적 공격 정면은 10마일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아군의 전과 확장 부대가 진출할 안전 간극 5마일을 더하면 최종 공격 정면은 15마일. 정확한 수치적 결론이었습니다.
부대를 목표별로 분할하고 합산하여 필요 병력을 산정하는 이 수학적 분석은, 이후 전차를 활용하는 기갑전 이론인 'Plan 1919'의 뼈대가 됩니다. 풀러는 참호에 갇힌 전쟁을 기하학으로 풀어냈습니다.
방정식은 종이 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레이더, 암호 해독기, 방공 관제망—작전연구가 설계한 시스템들은 실제 전장에서 지휘관의 직관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일방적이었습니다.
기계의 눈 대 인간의 정신력: 태평양 전쟁
태평양 전쟁은 직관에 의존한 일본군과 시스템을 신뢰한 미군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무대였습니다. 당시 일본군에는 맹훈련을 통해 정예 장병을 만들면 정신력만으로 어떤 악조건이든 돌파할 수 있다는 비과학적 신념이 퍼져 있었습니다. 군사 기술과 시스템은 경시되었고, 정신력이 기술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반면 미군은 철저히 데이터와 시스템에 의존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 대비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곳이 야간 해전이었습니다.
엠프레스 오구스타 만 해전을 봅시다.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과거의 지휘관들은 견시원의 시력과 탐조등, 그리고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함포를 쐈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메릴 제독은 달랐습니다. 레이더에 의한 사격 시스템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어둠 속에서 쏟아진 포탄은 놀라운 정확성을 보여줍니다. 반면 일본군의 오오모리 제독은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직관에 의존해 상황을 오판했고, 미군 함대가 건재함에도 전투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수리가오 해협 해전에서는 이 대비가 더욱 선명해집니다. 레이테로 진출하기 위해 야간에 해협을 북상하던 일본의 니시무라 함대. 미 함대의 레이더는 어둠 속에서 적 부대의 위치를 오차 없이 잡아냈고, 정확한 포격이 쏟아졌습니다. 니시무라 함대는 사실상 전멸합니다. 인간의 눈과 정신력이 기계의 눈에 완패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우위는 해전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미군은 실패마저도 데이터로 축적했습니다. 1942년 말 과달카날 공방전에서 미 해병대는 전투 결과를 낱낱이 분석했습니다. 어떤 전술이 효과적이었고, 어떤 전술이 실수였는지를 파악한 뒤, 이를 다음 상륙 작전의 입력값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접근 위에서 미군은 데이터상 수적 우세와 물량이 확보되기 전까지 공격을 극도로 자제하다가, 승률이 입증된 순간에 비로소 화력을 집중하여 상대를 격멸하는 패턴을 반복합니다.
일본군이 정신력의 우위를 믿는 동안, 미군은 전투 하나하나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승패는 정신력이 아니라, 확률과 데이터를 신뢰한 사고방식이 결정지었습니다.
다우딩의 방공망: 영국 본토 항공전
1940년, 독일 공군의 무차별 공습이 영국 본토를 덮쳤습니다. 이 위기에서 영국을 구한 것은 지휘관의 천재적 영감이 아니라, 사전에 구축된 시스템이었습니다.
광활한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오는 적기를 지휘관의 예측이나 정찰기의 육안으로 찾아내 요격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국 공군사령관 휴 다우딩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전쟁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레이더 기술을 적극 지원하고 본토 방공망과 운용 체계를 완성해 둔 상태였습니다.
영국 국민들의 항전 의지라는 소프트웨어에 레이더 시스템이라는 하드웨어가 결합되면서, 영국은 압도적 전력을 자랑하던 독일 공군의 공격 방향을 사전에 예측하고 정확히 요격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기 수에서 열세임에도 거둔 승리. 시스템이 물량의 열세까지 뒤집을 수 있음을 증명한 전투였습니다.
튜링의 암호 해독기: 대서양 전투의 반전
앞서 다룬 대서양의 U-보트 위협을 최종적으로 제압한 것 역시 해군 제독들의 전술적 직관이 아니었습니다. 앨런 튜링이 이끄는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반—이 과학적 시스템이 판도를 뒤집었습니다.
튜링의 팀은 인간의 머리로는 풀 수 없는 나치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는 기계적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처음에는 해독에 몇 시간이 걸리던 것을 나중에는 단 몇 분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영국 함대사령부는 바닷속에 숨은 독일 잠수함들의 위치와 공격 계획을 손바닥 보듯 파악하며 작전을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직관으로 적의 경로를 추측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정확한 데이터에 따라 대잠수함 전력을 배치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거대한 시스템만이 직관을 이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데이터를 읽는 눈 하나가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고, 데이터에 기반한 사고방식 자체가 전투의 판도를 바꾸기도 했습니다. 시대를 넘어 반복되는 이 패턴을 살펴봅시다.
나이팅게일의 장미 도표
크림 전쟁 당시, 군 수뇌부와 의사들은 병사들이 전장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죽는 것을 전쟁의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이 '당연함'에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제외하면.
그녀는 사망 원인을 꼼꼼히 집계합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전투에서 입은 외상보다 야전병원의 열악한 위생 상태로 인한 전염병 사망률이 훨씬 높았던 것입니다. 병사들은 적의 총탄이 아니라 아군 병원의 불결함에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윗선에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팅게일은 관료들이 한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표와 그림—이른바 '장미 도표'—으로 정리한 800쪽이 넘는 통계보고서를 작성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경영진에게 올리는 대시보드 리포트를 만든 셈입니다. 숫자를 날것으로 나열하는 대신, 보는 사람이 즉시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시각화한 것입니다. 이 보고서 덕분에 야전병원 시설 개선에 필요한 지원을 받아냈고, 사망률은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총칼이 아니라 데이터가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롬멜: 교범이 아닌 현장 데이터의 장군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의 탁월한 전술은 흔히 천재적 영감의 산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데이터에 대한 그의 집착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제1차 세계대전 보병 장교 시절부터 쌓여온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장교들이 교범에 적힌 보병의 하루 적정 행군 거리 같은 수치를 맹목적으로 따를 때, 젊은 롬멜은 직접 현장에서 데이터를 뽑아냈습니다. 병사들이 어느 거리를 행군하면 어느 정도 지치는지, 그 상태에서 어느 수준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참호를 파면 포격 희생이 줄어든다'는 막연한 통념에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특정 지형에 몇 발의 포탄이 떨어졌을 때 몇 퍼센트의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지 직접 관측하고 기록했습니다.
1차 대전의 참호에서 축적한 이 현장 데이터가 2차 대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빛을 발합니다. 병사들의 잠재 능력치와 상황별 희생률을 정확히 산출해 두었기에, 적의 직관과 상식을 파괴하는 속도와 타이밍으로 기습을 가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 '감'이라 불렀던 것의 실체는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데이터가 뒷받침한 계산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작전연구는 전장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수학과 통계를 무기로 삼은 미국과 영국이 승리하면서, 작전연구의 위력은 전 세계에 입증되었습니다. 반면 확률론적 사고를 무시하고 정신력이나 직관에 의존한 추축국은 패배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물론 군대 자체도 작전연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정교하게 발전시켰습니다. 현대 군대의 지휘 결심 과정에서는 아군(파랑)과 적군(빨강)으로 나뉘어 모의전을 실시할 때, 작전 참모 옆에 반드시 ORSA 참모—작전연구 및 체계분석 전문가—가 배석합니다. 이들은 각 행동 방침별로 변수를 계량화하고 대안별 승률을 정량 분석하여, 지휘관이 가장 합리적인 작전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2차 대전 당시 과학자들이 전선 뒤에서 하던 일을, 지금은 전문 참모 조직이 제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작전연구가 더 큰 파급력을 보여준 곳은 군대 밖이었습니다. 전쟁이 증명한 기법들은 '경영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산업, 정부 조직으로 급속히 퍼져나갑니다.
컴퓨터 혁명과 맞물리면서 경영과학은 다양한 도구로 분화합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적의 배분을 찾는 선형계획법, 가상의 시나리오를 수천 번 돌려보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새로운 정보가 들어올 때마다 예측을 갱신하는 베이지안 통계학, 복잡한 프로젝트의 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PERT 차트 같은 기법들이 현대 비즈니스의 인프라가 됩니다.
전장에서 폭뢰 투하 심도를 최적화하던 방정식은, 이제 전혀 다른 종류의 문제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경로를 계산하라
수천 개의 변수를 동시에 계산해야 하는 물류와 배송 경로 최적화는 경영과학이 가장 먼저 뿌리내린 영역입니다. 보스턴 공립학교 연합은 MIT 연구팀과 함께 스쿨버스 운행 최적화 알고리즘을 개발해 연간 500만 달러의 예산을 절감했습니다.
쓰레기 수거라는 의외의 분야에서도 경영과학은 힘을 발휘합니다. 미국의 웨이스트 매니지먼트는 수거 경로 최적화 시스템 하나로 연간 약 1억 달러를 아꼈습니다. 알래스카 항공은 세인트헬렌스산 화산 폭발 당시 기상전문가들과 협력하여 화산재 분출 경로를 예측하는 컴퓨터 모형을 만들고, 안전한 우회 항로를 즉각 계산해 냈습니다. 전쟁 당시 U-보트의 위치를 예측하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구조의 문제를, 같은 계보의 기법으로 푼 셈입니다.
사람을 배치하라
항공사 승무원, 앰뷸런스 운전자,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원—수많은 직원의 근무 일정을 최적으로 짜는 것도 경영과학의 몫입니다. 월트디즈니 월드는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놀이기구 대기 시간을 최소화하면서 직원 배치와 기념품 판매까지 연계하여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콘티넨탈 항공은 기상 악화로 비행 일정에 차질이 생겼을 때 승무원을 다른 항공편에 최적으로 재배정하는 의사결정 모델로 연간 4천만 달러를 절감했습니다.
공급망을 통제하라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 관리 역시 경영과학 모델 없이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는 제조 시간과 재고 수준을 최적화하는 분석을 통해 2억 달러 이상을 절감했고, 쉐브론은 정유 공장의 복잡한 운영 과정을 최적화하여 수억 달러의 이익을 창출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라
경영과학의 최전선은 금융과 마케팅입니다. 금융 서비스 기업들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영과학자들의 수리적 기법을 도입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자산을 배분합니다. 마케팅 영역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특정 점포의 상권 트래픽, 강수량, 특판 일수 등을 변수로 매출을 예측하거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소비자 행동 이력을 분석해 맞춤형 상품을 추천합니다.
그 너머에 있는 것이 '예측적 분석'과 '처방적 분석'입니다. 예측적 분석은 과거 데이터의 패턴을 토대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내다보는 것이고, 처방적 분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시스템이 직접 답을 내려주는 것입니다. 의사가 검사 결과를 보고 진단을 내리는 것이 예측적 분석이라면, 최적의 치료법까지 처방해 주는 것이 처방적 분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경영과학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떠오르고 있는 영역입니다.
항공사의 비행기 배정, 택배 회사의 배송 경로, 테마파크의 대기 시간 관리, 정유 공장의 생산 최적화. 현대 비즈니스에서 수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 이 모든 효율화 시스템의 뿌리가,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호와 전함 위에서 태어난 작전연구입니다.
그렇다면 경영과학은 만능일까. 그렇지 않습니다.
경영과학이 위력을 발휘하는 건, 문제를 숫자로 쪼갤 수 있을 때입니다. 항공기 순찰 경로, 폭뢰 투하 심도, 스쿨버스 운행 거리처럼 명확하게 측정 가능한 변수가 있어야 방정식이 작동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의사결정에는 숫자로 담기 힘든 요인들이 언제나 끼어듭니다. 경쟁자의 예측 불가능한 반응, 소비자의 미묘한 기호 변화, 상품의 인기도, 직원의 사기. 이런 것들은 방정식에 온전히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경영학에서 이를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라 부릅니다. 말과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현장의 경험 많은 사람은 체감으로 아는, 그런 종류의 지식입니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이더와 암호 해독기는 적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었지만, 병사들의 공포와 피로, 아군의 사기, 적 지휘관의 돌발적인 판단까지 방정식에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작전연구는 승리의 확률을 높여주었을 뿐, 전쟁의 모든 변수를 통제하지는 못했습니다.
따라서 훌륭한 경영자는 데이터 분석 결과를 맹신하지 않습니다. 수리적 분석을 토대로 삼되, 거기에 자신의 경험과 직관, 현장에서 우러나온 통찰을 결합합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반합리성(Quasirationality)'이라 부릅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과 데이터가 말해주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경영자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다시 처음의 폭격기 앞으로 돌아가 봅시다.
총알 자국이 빼곡한 동체를 보고 '여기를 보강하자'고 외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눈에 보이는 증거를 따르는 것이 직관이니까요. 하지만 통계학자는 눈앞에 없는 것—격추된 비행기, 돌아오지 못한 데이터—에 주목함으로써 정반대의 해답에 도달했습니다.
이 칼럼에서 살펴본 사례들은 모두 같은 구조를 공유합니다. 함포 조준에서 인간의 감을 배제하고 방정식을 신뢰한 것. 순찰 경로를 확률적으로 재설계해 U-보트를 압도한 것. 란체스터가 전투력을 수학으로 증명하고, 풀러가 참호 돌파를 기하학으로 풀어낸 것. 다우딩이 전쟁 전부터 레이더 방공망을 구축해 독일 공군을 꺾은 것. 튜링이 에니그마를 기계적 시스템으로 해독하여 대서양의 판도를 뒤집은 것. 나이팅게일이 '당연한 죽음' 뒤에 숨은 위생 문제를 데이터로 드러낸 것. 롬멜이 교범 대신 현장 데이터로 전술을 세운 것. 미군이 실패마저 데이터로 축적하여 승률이 확보된 순간에만 공격한 것.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이 방법론은 전장을 떠나 보스턴의 스쿨버스 노선으로, 삼성전자의 공급망으로, 디즈니의 대기 시간 관리로, 쉐브론의 정유 공장으로 흘러들었습니다. 군대 안에서도 ORSA 참모 조직으로 제도화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모의전의 승률을 계산하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를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낼 것인가.
작전연구가 전장에서 증명하고 경영과학이 회의실에서 이어받은 교훈은 결국 하나입니다. 인간의 직관은 강력하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무기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그 위험을 제어하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바로 숫자와 데이터라는 것. 다만 그 숫자에 영혼을 불어넣는 마지막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