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강조해 온 것처럼, 전쟁은 하루에 천금(千金)이 증발하는 거대한 소모성 사업입니다. 한 번 전쟁을 치르면 백성들의 재산은 10분의 7이 날아가고, 국가 재정의 10분의 6이 수송 수단 파괴와 장비 손실로 허비됩니다. 확고한 재원 조달 계획 없는 전쟁은 국가를 파산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는 것이, 『손자병법(孫子兵法)』 「작전(作戰)」편이 내린 냉혹한 진단이었습니다.
이 원칙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도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하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고구려(高句麗) 제19대 태왕,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정복 사업입니다. 391년 1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413년 4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22년 동안 내몽골에서 한반도 남단 낙동강에 이르는 광활한 대륙을 누비며 쉴 새 없이 전쟁을 치렀습니다. 요즘 기업으로 치면 창업부터 상장까지 22년 연속 흑자를 찍은 것과 다름없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애초에 전쟁을 벌이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나라였습니다. 수도 국내성(國內城) 일대는 첩첩산중이었고,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광활한 만주 평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좁은 산간 분지에 의존하는 농업 기반으로는 대규모 군대를 먹여 살리기도 빠듯했으니,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쥐어짜 전비를 마련하면 국가 생산력 자체가 무너질 판이었습니다.
여기서 합리적인 의구심을 던져야 합니다. 단 몇 달의 전쟁만으로도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는 판국에, 광개토대왕은 도대체 그 어마어마한 22년 치 전쟁 비용을 어떻게 감당했을까요? 산이 많고 평야가 좁은 고구려의 국가 재정은 어째서 파산하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광개토대왕의 위업을 고구려인들의 '불굴의 상무 정신'이나 '뜨거운 애국심' 덕분이라고 낭만적으로 포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애국심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충성심이 밥을 먹여주지 못하고, 애국심을 녹여서 철갑옷을 만들 수도 없으니까요. 당시 고구려의 수뇌부 역시 돈이 없으면 무장시키지도 먹이지도 못한다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이 22년간 쉼 없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은 따로 있었습니다. 전쟁을 영토 확장의 수단으로만 보지 않고, 이익을 창출해 내는 '수지맞는 장사'로 기획한 것입니다. 적의 자본을 탈취해 초기 투자 비용을 대고, 이를 바탕으로 알짜배기 유통망을 확보하며, 그 수익으로 대규모 파병을 단행해 핵심 자원을 독점하는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 비즈니스 모델을 전쟁에 도입했습니다.
이제 민족주의적 자부심이라는 낭만의 베일을 걷어내고, 광개토대왕의 22년 정복 사업을 현대 경영학의 '비용-편익 분석'과 '시장 개척'의 관점에서 해부해 보겠습니다.
백성의 고혈 대신 '외부 자본'을 유치하다
모든 비즈니스의 시작은 종잣돈(Seed Money)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광개토대왕 역시 남쪽의 백제를 정벌하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요했습니다.
보통 고대의 왕들은 전쟁 자금을 마련하려고 자국 백성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거나 식량을 징발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모든 경제적 선택은 한정된 자원 아래 이루어지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을 뜻합니다. 백성들의 식량과 노동력을 전쟁에 징발하면 당장 그해 농업 생산성이 무너지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발생하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고구려는 산간 분지에 의존하는 척박한 농업 구조를 갖고 있었으니, 국내 경제를 훼손하면서 얻는 전쟁 자금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숨통을 조이는 최악의 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딜레마를 꿰뚫어 본 광개토대왕은 자국 백성들의 주머니를 터는 대신, 외부에서의 자본 조달이라는 과감한 방법을 택합니다.
392년(영락 2년) 겨울, 대왕은 내몽골 시라무렌 강 유역의 소금호수(鹽水)로 모여드는 유목민족 거란(契丹), 즉 패려부(稗麗部)를 타깃으로 삼았습니다. 거란족은 해마다 초겨울이면 살찐 가축을 끌고 소금호수에 모여 소금을 채취한 뒤, 이를 곡물과 교환하여 겨울을 났습니다. 광개토대왕은 이 정보를 입수하고 거란족의 소금과 가축을 동시에 노립니다. 탁 트인 초원 대신 험준한 산길을 우회하는 기습 작전을 펼쳐 척후병을 따돌리고 일망타진했습니다. 유목민 입장에서는 겨울 월동 준비를 하러 왔다가 고구려 특공대에 뒤통수를 맞은 격입니다.
이 작전 한 번으로 고구려는 엄청난 양의 소금과 가축(소, 말, 양)을 노획합니다. 당시 소금은 황금에 버금가는 교환 가치를 지닌 핵심 화폐였으며, 수많은 가축 떼는 남쪽 백제를 정벌하러 갈 군사들의 '걸어 다니는 전투 식량'이 되었습니다. 젖을 짜서 마시고, 고기는 도살하여 말안장 밑에 깔아 육포로 만들어 먹으면 별도의 식량 운송 부대가 필요 없습니다. 냉장고도 트럭도 없던 시대에, 가축이야말로 스스로 걸어서 이동하는 최고의 보급 시스템이었습니다.
국내 경제에 타격을 주는 세금을 건드리지 않고, 적의 자본을 빼앗아 남방 정벌이라는 신규 프로젝트의 초기 자본금과 운영비를 전액 충당해 낸 것입니다. 현대 스타트업 용어로 바꾸면, 자기자본 소진 없이 외부 펀딩만으로 시리즈 A를 완료한 셈입니다.
'1대 20 물류 법칙'을 깨뜨린 수륙양용 작전
초기 자본을 확보한 대왕의 다음 타깃은 한반도 최고의 곡창지대이자, 중국 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던 백제 산삼의 주요 산지인 한강 유역, 곧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종잣돈이 넉넉해도, 평양에서 한성까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육로로 내려가면 막대한 물류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시리즈에서도 여러 번 인용한 바 있듯, 『손자병법』은 원거리 육로 수송의 폐해를 정곡으로 찌릅니다. 적지에서 구하는 식량 1종(鍾)이 아군 본국 식량 20종에 해당한다고 했는데, 1종은 쌀로 환산하면 대략 80~100킬로그램에 달하는 양입니다. 쌀 한 가마니를 전선에 보내려면 스무 가마니가 길 위에서 사라진다는 뜻이니, 요즘으로 치면 택배비가 물건값의 20배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광개토대왕은 고대의 상식을 깨뜨리는 결단을 내립니다. 육로 진격을 최소화하고, 압록강에서 거대한 함대(수군)를 편성하여 서해 바다를 거쳐 백제의 심장부로 곧바로 찔러 들어가는 수륙양용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배를 이용한 해상 수송은 육로에 비해 이동 시간을 5분의 1 이하로 단축시켰고, 물류비용과 병력의 체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여 줍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이 물류비용을 아끼기 위해 공장을 항구 인근에 짓는 원리와 같은 것이지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물류 인프라의 혁신을 통해 백제의 방어선을 무력화시키고, 전쟁의 운영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는 비용 우위 전략(Cost Leadership Strategy)을 완성해 냈습니다.
이 수륙양용 작전은 적중했습니다. 396년(영락 6년), 수군과 육군을 동시에 투입한 고구려군은 백제의 58개 성을 차례로 함락시키며 수도 한성까지 밀어붙입니다. 배후가 끊기고 수도가 포위당한 백제의 아신왕(阿莘王)은 남녀 1,000명의 포로와 값비싼 세포(細布, 가는 베) 1,000필을 바치며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몰비용의 늪을 피해 '알짜 상권'만 취하다
그런데 여기서 대왕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항복을 받아낸 뒤의 처리 방식이야말로, 그가 얼마나 냉철하게 자본예산(Capital Budgeting)을 계산하는 리더였는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대왕은 한성을 완전히 점령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국을 멸망시키고 영토를 직접 통치하려면, 반발하는 유민들을 억누르기 위해 막대한 수비군을 주둔시켜야 하고 끝없는 게릴라전에 시달려야 합니다. 이미 지출하여 회수할 수 없는 비용, 경제학에서 말하는 매몰비용(Sunk Cost)의 함정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맛없는 뷔페에서 돈이 아까워 억지로 더 먹다가 체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광개토대왕은 영토에 집착하는 전근대적 군주와는 체질 자체가 달랐습니다. 한성을 직접 통치하는 비용 대신 실리를 택합니다. 아신왕의 동생과 핵심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아 귀국한 것입니다.
이 인질들은 향후 백제의 도발을 억제하는 정치적 담보물이 되었을 뿐 아니라, 백제와 왜국(일본) 사이의 핵심 무역 정보를 빼낼 수 있는 고급 정보통 역할도 했습니다. 고구려는 백제를 멸망시키는 대신 거대한 물류 공급망의 하청기지로 편입시켜, 풍부한 곡물과 고부가가치 상품인 산삼을 지속적으로 헌납받는 안정적인 캐시카우(Cash Cow)를 확보했습니다.
과도한 초기 투자와 유지비가 드는 직영점(직접 통치)을 고집하지 않고, 리스크가 적으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프랜차이즈 모델(조공 체제)로 전환한 셈입니다. 영토는 백제가 관리하고, 수익은 고구려가 거둬들이는 구조. 요즘 말로 하면 '자산경량화(Asset-light) 전략'의 고대 버전이라 할 만합니다.
▶ 거란의 소금으로 백제의 곡창을 열다
광개토대왕의 초기 전쟁 경영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자국 백성의 희생(기회비용)을 강요하지 않고 외부 타깃(거란)을 기습해 종잣돈을 자체 조달했습니다. 둘째, 육로 수송의 천문학적 비용을 수군 활용으로 5분의 1 이하로 압축했습니다. 셋째, 점령지 직접 통치라는 매몰비용의 늪을 피하고, 핵심 인질 확보와 알짜 상권(한강 유역) 장악을 통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거두어들였습니다. 초기 투입 비용을 극단적으로 낮추면서 혁신적 물류망을 통해 가치 창출을 극대화한, 고대 최고의 저비용·고효율 경영 사례라 할 만합니다.
이 거대한 첫 번째 성공은, 이후 신라와 가야 지역의 철(鐵) 시장마저 독점해 나가는 고구려의 확대재생산 사이클을 가동하는 강력한 엔진이 됩니다.
VRIO 프레임워크로 읽는 가야의 철(鐵)
기업이 시장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그 지위를 유지하는가. 현대 경영학은 '자원기반관점(RBV, Resource-Based View)'이라는 해답을 제시합니다.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의 산업구조론이 외부 환경의 매력도를 강조했다면, RBV는 동일한 산업 내에서도 기업마다 수익성이 다른 이유를 기업 내부에 구축된 독특한 자원과 역량에서 찾습니다.
이 이론의 대가인 제이 바니(Jay B. Barney) 교수는 특정 자원이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창출하려면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VRIO 프레임워크를 고안했습니다. 가치(Valuable), 희소성(Rare), 모방 불가능성(Inimitable), 조직화(Organized)가 그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이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인 시점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가 요동치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때는 395년. 고구려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북중국의 강국 후연(後燕)이 북위(北魏)의 공격을 받고 요서의 지방정권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서북쪽의 위협이 사라진 이때야말로 남쪽으로 판을 키울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마침 한반도 남부에서도 거대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신라가 성장하면서 가야를 압박하자 일본 열도로 향하는 철 공급이 줄고 가격이 폭등했고, 생존의 위기를 느낀 왜국(倭國) 호족들이 연합하여 신라를 쳐들어온 것입니다. 400년(영락 10년), 광개토대왕은 이 혼란을 틈타 신라를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무려 5만 명의 대군을 한반도 남쪽 끝까지 파병합니다.
서북방에서 후연 잔존 세력과 여전히 대치하는 상황 속에서, 이토록 막대한 전비를 감수하며 대규모 파병을 단행한 진짜 이유가 있었습니다. 동아시아 무기와 농기구 생산의 허브였던 낙동강 유역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철 유통망을 통째로 장악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였습니다.
당시 가야의 철은 고구려의 입장에서 VRIO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자원이었습니다. 가치(V) — 일본 열도의 호족들에게 철은 무기를 만들고 농경지를 개간하여 생존과 권력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핵심 물자였습니다. 희소성(R) — 금관가야 등 특정 지역에 편중된 매우 드문 자원이었고, 당시 일본은 자체적으로 철을 생산할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모방 불가능성(I) — 오랜 시간 축적된 가야의 제철 기술과 입지 조건은 하루아침에 흉내 낼 수 없는 진입장벽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직화(O) — 대왕은 5만 대군이라는 압도적 물리력을 투입하여 왜군을 궤멸시키고, 가야의 철 생산·유통 시스템을 고구려의 통제 아래 편입시킴으로써 이 자원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독점 시장의 탄생 — 수요의 비탄력성을 쥐어짜다
가야의 철을 장악한 고구려는 동아시아 철강 시장의 유일한 지배자, 곧 독점 기업(Monopoly)으로 등극합니다. 독점 기업의 핵심적인 특징은 시장 가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가격수용자(Price Taker)가 아니라, 생산량과 가격을 스스로 조절하는 가격설정자(Price Setter)가 된다는 점입니다.
당시 일본 호족들에게 철은 대체 불가능한 필수품이었습니다. 경제학 용어로 표현하면 그들의 수요는 극도로 비탄력적(Inelastic)인 상태.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안 사면 칼도 호미도 못 만드니, 울며 겨자 먹기로 살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전 세계에 스마트폰 칩을 공급하는 회사가 딱 하나뿐인 상황과 비슷합니다.
광개토대왕은 이 구조를 철저하게 활용했습니다. 철 공급의 목줄을 쥔 고구려는 일본 호족들에게 철을 넘기는 대가로 고구려 군사들의 겨울철 방한복에 쓸 솜(누에고치)과, 당시 동아시아의 기축통화이자 고가 사치품이었던 비단을 대량으로 징수했습니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장악한 드비어스(De Beers)를 생각해 봅시다. 유통을 통제하고 공급을 제한하여 희소성과 부가가치를 창출한 전략입니다. 고구려는 철이라는 희소 자원을 무기화하여, 파병에 들었던 초기 투자 비용을 수십 배로 회수하는 장사를 해낸 것입니다.
레드오션을 거부하고 '제로 투 원'을 창조하다
경쟁자가 난립하는 시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서로를 쓰러뜨리기 위한 출혈경쟁, 이른바 치킨게임이 벌어집니다. 이 과도한 경쟁은 결국 업계 전체를 저수익의 늪으로 끌고 갑니다.
광개토대왕은 백제, 신라, 가야, 왜가 복잡하게 얽혀 뺏고 빼앗기는 소모적인 레드오션(Red Ocean)의 규칙을 거부했습니다. 경쟁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싸우는 대신, 적들이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근본 시스템 — 철의 생산 및 유통망 — 자체를 장악함으로써, 경쟁 없는 독점 시장(Blue Ocean)을 창조했습니다.
피터 틸(Peter Thiel)이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강조한 대로, 남들과 비슷한 것을 두고 경쟁하는 것은 거대한 낭비이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독점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기업의 조건입니다. 대왕은 기존의 한반도 영토 분쟁이라는 협소한 프레임을 넘어, 가야의 철이라는 독보적 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일본 열도까지 연결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고구려를 대체 불가능한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 철을 쥔 자가 동아시아를 지배했다
거란을 기습해 얻은 가축과 소금으로 벤처 창업의 종잣돈을 마련하고, 그 자본과 물류 혁신을 바탕으로 백제의 한강 유역이라는 핵심 상권을 장악했습니다. 마침내 그 국력을 총동원하여 가야의 철을 확보함으로써, VRIO 자원에 기반한 독점 시장을 완성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고구려는 어떤 경쟁자도 도전할 수 없는 시장 지배력을 손에 쥐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대왕은 어째서 선대 왕들이 번번이 실패했던 남방 작전을, 그것도 수군이라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실패를 거울삼아 조직의 체질을 바꿔 놓은 혁신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뼈아픈 참패, 그 안에 숨은 혁신의 씨앗
창업 후 1년 동안 생존한 기업 중 84%가 5년 이내에 실패의 쓴맛을 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5년 버티기도 힘든데 22년 연속 성장이라니, 국가든 기업이든 지속 가능한 장기적 성공을 거두는 것은 그만큼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는 일입니다.
고구려 역시 광개토대왕이 등장하기 직전, 국가의 존망을 위협받는 최악의 실패를 겪고 있었습니다. 371년, 16대 왕인 고국원왕(故國原王)은 평양성까지 쳐들어온 백제 근초고왕의 군대와 맞서 싸우다 전사하는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습니다. 북쪽으로는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수도 환도성이 함락되고, 왕모와 왕비가 인질로 끌려가는 수모까지 겹쳤습니다. 경제는 파탄 났고, 군사적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불과 20여 년 뒤 왕위에 오른 18세의 청년 군주가, 이 참담한 실패의 잿더미 위에서 고구려를 동아시아 최강의 제국으로 재탄생시킵니다. 선대 왕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맹목적인 정신력에 의존하지 않고, 고구려라는 국가 시스템 전체의 체질을 바꾸는 혁신(Innovation)을 단행한 것입니다.
감지하고, 포착하고, 변혁하라
UC 버클리의 데이비드 J. 티스(David J. Teece) 교수는 환경이 끊임없이 격변하는 시대에는 자사의 강점을 상황에 맞게 변신시키는 동적 역량(Dynamic Capabilities)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이 역량은 감지(Sensing), 포착(Seizing), 변혁(Transforming)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감지(Sense) — 대왕은 고구려의 자랑인 육상 기병, 개마무사(鎧馬武士)만으로는 백제의 방어선을 뚫기 어렵다는 점을 직시했습니다. 기병을 멀리 남쪽으로 이동시키는 데 따르는 혹독한 물류비용과 보급의 한계. 육로 중심의 단조로운 전술은 이미 적에게 간파당했다는 전략의 진부화까지 감지해 냈습니다.
포착(Seize) — 북방 유목민 토벌로 얻은 전리품을 바탕으로, 기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대규모 수군(함대)을 양성합니다. 과거 육전 중심의 군사 자원과 새로운 해상 물류 기술을 융합한 것입니다. 압록강에서 서해로 빠져나와 한강 하구로 직진하는 상륙 작전을 기획하며, 새로운 환경적 기회를 민첩하게 포착했습니다.
변혁(Transform) — 대왕은 북방의 기마 민족이라는 고구려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강력한 육군과 기동력 있는 수군을 동시에 운용하는 수륙양용 제국으로 국가의 체질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 동적 역량 덕분에 고구려는 남부와 북부, 두 전선에서 동시에 유연한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혁신 기업의 딜레마를 넘어서다
기업이 한 영역에서 크게 성공하면 그 강점에 취해 파멸의 길로 접어들기 쉽습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는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에서, 일류 기업들이 끊임없이 고객의 의견을 듣고 기술에 투자하면서도 무너지는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구축한 가치 네트워크(Value Network)에 갇혀, 기존의 성공 공식에 얽매인 채 새로운 변화를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구려의 전통적인 가치 네트워크는 '말을 타고 만주 벌판을 달리는 북방의 전투 방식'이었습니다. 수백 년간 고구려를 지탱해 온 핵심 역량이었지만, 성벽을 높이 쌓고 해상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백제를 상대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피처폰의 왕자가 스마트폰 시대를 맞닥뜨린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광개토대왕은 과거의 전통에 갇힌 경영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습니다. 북방 유목 국가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해안의 해상 작전과 가야의 철기 유통망이라는 새로운 시장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기존의 가치 네트워크를 과감히 끊어내는 파괴적 혁신을 실행한 것입니다.
실패를 포용하는 확률적 사고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은 단기적 성공에 집착하며 실패를 악(惡)으로 규정하곤 합니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완벽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기적 성공은 단기적 성공의 축적이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고 수정하는 힘의 축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GE의 잭 웰치(Jack Welch) 회장은 5,000만 달러 규모의 '할락(Halarc)' 전구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을 때, 팀원들을 처벌하는 대신 훌륭한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보너스를 지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패를 처벌하면 조직 내에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복지부동이 퍼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광개토대왕 역시 선대 왕들의 뼈아픈 실패를 국가적 수치로 덮어두거나 관련자들을 숙청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참담한 실패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구려 군대의 약점 — 보급의 취약성, 공성전의 한계 — 을 철저히 해부합니다. 5만 대군을 신라와 가야로 파병한 결정 역시, 후연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거대한 리스크를 안은 베팅이었지만, 가야의 철 시장을 장악했을 때 얻게 될 기댓값(Expected Value)이 리스크보다 크다는 확률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탐험과 활용을 동시에 — 양손잡이 조직의 완성
조직이 실패를 딛고 혁신하려면 모순되어 보이는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현재의 사업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는 것. 조직이론에서는 이를 기존 역량의 활용(Exploitation)과 새로운 가능성의 탐험(Exploration)을 동시에 추구하는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이라 부릅니다.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군대는 교과서적인 양손잡이 조직이었습니다. 활용의 측면을 봅시다. 전통적 무기인 철기병(개마무사)과 산성 방어 체계는 일사불란한 효율성으로 운용되며 북방 유목 민족을 억제하는 캐시카우 역할을 했습니다. 탐험의 측면에서는, 백제와 왜를 공략하기 위해 기존 교리에 없던 대규모 수군을 양성하고, 적국의 핵심 인질을 잡아 외교 및 정보전에 활용하는 등 벤처 기업과 같은 유기적이고 창의적인 전략을 끊임없이 시도해 나갔습니다.
기병이라는 과거 방식에만 매몰되었다면 백제의 해상 방어망을 뚫지 못했을 것이고, 수군에만 집착했다면 북방 국경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두 역량을 동시에 관리한 대왕의 리더십이 고구려를 어떤 환경 변화에도 생존하는 혁신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 실패의 잿더미에서 피어난 수륙양용 제국
광개토대왕의 22년은 전장에서의 승리 그 이상입니다. 조부 고국원왕의 전사라는 국가적 참극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북방 기마병에 의존하던 군사 교리를 수륙양용 작전과 자원 독점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동적 역량의 실현이었습니다.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기회를 포착하며, 조직의 DNA마저 가차 없이 뜯어고치는 능력. 이것이 고구려를 동아시아 최강의 제국으로 올려놓은 진짜 비결이었습니다.
오일쇼크의 벼랑 끝에서 중동으로 날아간 사나이
광개토대왕이 구축한 국가 경영 시스템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한국 경제사에서 가장 극적인 도약으로 평가받는 1970년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중동 신화'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이 터지면서 전 세계 경제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1달러 75센트 하던 유가가 2년도 되지 않아 10달러로 치솟았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던 한국 경제 역시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정주영 회장은 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갑니다. 현대건설은 20세기 최대 규모의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하고 완공해 내며 막대한 오일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석유파동의 위기를 중동 건설 시장의 외화 수입으로 극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의 진짜 위대함은 달러를 벌어온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중동에서 벌어들인 종잣돈을 금고에 쌓아두지 않고, 조선소(중공업)를 짓고 자동차 고유 모델을 개발하며 반도체 산업의 기틀을 닦는 데 전액 재투자했습니다. 돈 벌면 쓰는 게 아니라 굴려야 한다는 것. 하나의 사업에서 얻은 이윤을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다음 단계의 산업으로 과감하게 투입하는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을 통해 현대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구고,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 자체를 고도화시킨 것입니다.
1,500년 전, 광개토대왕은 이미 그 판을 짜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의 행보는 정주영 회장의 중동 신화와 정확히 겹칩니다. 거란의 소금과 가축으로 종잣돈을 마련하고(1단계), 수륙양용 물류 혁신으로 백제의 한강 상권을 장악한 뒤(2단계), 그 국력으로 5만 대군을 파병하여 가야의 철 시장을 독점했습니다(3단계). 전 단계의 수익이 다음 단계의 투자 자본이 되는 선순환 구조. 한 판 이기면 판돈을 키워 다음 판에 베팅하되, 매번 승률이 높은 곳에만 돈을 넣는 노련한 투자자의 행보와 같았습니다.
명분보다 실리, 맹목적 충성보다 수지타산
『손자병법』 「작전」편은 이렇게 단언합니다. 전쟁에서 시간을 오래 끌어 나라에 이익을 가져온 경우는 없다고. 전쟁이 가져올 해로움을 알지 못하는 자는 전쟁이 가져다줄 이로움도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광개토대왕은 22년간 전쟁을 지속했지만, 하나의 전선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끌며 국력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치고 빠져야 할 때, 인질만 잡고 물러나야 할 때, 수군으로 단숨에 적의 심장부를 찔러야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하여 전쟁의 속도와 효율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또한 「지형(地形)」편은 참된 장수의 조건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진격하면서 명예를 구하지 않고, 후퇴하여 수비하게 되어도 오명을 무릅쓰며, 오직 백성을 보호하고 군주에게 이롭게 하는 장수야말로 나라의 진정한 보배라고. 대왕은 백제를 멸망시켰다는 허황된 명예나 영토의 크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고 국가의 실질적인 부(富)와 안보를 살찌우는 관점, 오직 그 관점에서만 군대를 움직인 인물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과 광개토대왕, 두 사람 앞에는 항상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도태될 수밖에 없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기에, 사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광개토대왕은 18세에 왕위에 오른 뒤 4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순간도 전장을 떠나지 않으며 이 확대재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운명을 걸머진 자의 삶은 고단했지만, 그 고단함이 국가의 명운을 바꿨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22년 치 전쟁 비용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했을까? 이제 그 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광개토대왕에게 전쟁은 비용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비용 자체를 '창출'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만주 벌판을 향해 칼을 치켜든 용맹한 정복자의 평면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지도 위에 끊임없이 해상 물류망과 상권을 그리고, 치밀한 비용-편익 계산 아래 자원을 배분하며, 전쟁의 수익을 다음 시대의 성장 동력으로 환원시킨 냉철한 전략가이자 최고경영자, 광개토대왕. 정주영 회장의 중동 신화를 이미 1,500년 전에 실현했던 그의 22년은, 소모적인 살육전이 아니라 척박한 산악 국가 고구려를 동아시아 최대의 경제 패권국으로 탈바꿈시킨 '기업 인수합병 및 시장 개척사(史)'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낭만적 민족주의의 안경을 벗고 경영학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내야 할 위대한 대왕의 진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