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33년, 6개국의 왕들이 피를 나누어 마시며 맹세했습니다. 서쪽의 진나라를 막아내겠다고. 형제의 의를 맺고, 남북으로 거대한 방어선을 구축한 이 연합체의 이름은 합종(合從). 중원 역사상 거대한 규모의 다국적 벤처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700여 년 뒤인 서기 190년, 거의 똑같은 장면이 재현됩니다. 18명의 군벌이 산동의 들판에 모여 하늘에 맹세했습니다. 낙양을 장악한 동탁을 몰아내겠다고. 원소를 맹주로 추대하고 깃발을 세운 이 연합체는 수십만 대군이라는 외형을 자랑한 거대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리고 2,300여 년 뒤인 2013년, 서울의 한 벤처기업 대표가 비슷한 선언을 합니다. "모바일 스타트업 연합체를 만들겠다." 바로 옐로모바일입니다. 현금 한 푼 쓰지 않고 지분 맞교환이라는 현대판 피의 맹약으로 1년 만에 35개 스타트업을 집어삼키며 기업가치 4조 원의 유니콘 제국을 세운 사나이의 이야기입니다.
세 연합 모두 결성의 순간만큼은 역사의 판도를 뒤집을 듯 화려했습니다. 그리고 셋 다 안에서부터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합종은 15년간 진나라의 동진을 억제하다가 동맹국끼리 서로의 등에 칼을 꽂으며 자멸했고, 반동탁 연합군은 매일같이 연회만 열다가 공중분해되었으며, 옐로모바일은 2,600억 원의 투자금을 태우고 2024년 4월 폐업 처리되었습니다. 시대도 다르고, 등장인물도 다르고, 전쟁의 양상도 다릅니다. 그런데 붕괴의 구조는 너무나 닮은 모습.
왜일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진정한 결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핵심 자원이 각자에게 흩어진 채 공유되지 않거나, 혹은 한 사람에게 독점된 채 견제되지 않거나 — 방향은 달라도 본질은 같았습니다. 슬로건 하나로 묶인 느슨한 외형 아래 화학적 결합은 존재하지 않았고, 비용 지불을 강제할 시스템도 자원의 사유화를 막을 견제 장치도 설계되지 않은 구조. 이 칼럼은 2,500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세 개의 연합 파산 사건을 현대 경영학과 게임이론의 메스로 절개하여, 동일한 병리 보고서를 작성하려 합니다.
리처드 다프트(Richard L. Daft)의 조직이론에 '가상 네트워크 부서화(Virtual Network Grouping)'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강력한 수직적 통제나 단일한 소유 지분 없이, 독립적인 권한을 가진 개별 조직들이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느슨하게 연결되어 움직이는 조직 형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핵심 역량만 투입하고, 최종 목표를 위해 마치 하나의 조직처럼 행동하지만, 실질적인 자본의 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
소진의 합종이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합종을 설계한 이 사나이의 출발점은 초라했습니다. 《사기》 소진열전에 따르면, 소진(蘇秦)은 낙양(洛陽) 출신의 가난한 유세가로 귀곡자(鬼谷子)라는 전설적 은자에게 종횡술(縱橫術)을 배운 뒤 천하를 떠돌며 자신의 전략을 팔아다녔으나, 처음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진나라의 혜문왕을 찾아가 먼저 유세했지만 냉대를 받고 쫓겨났고,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오자 가족들에게까지 멸시를 당했다는 기록. 아내는 베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고, 형수는 밥조차 지어주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소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태공망의 병법서 《음부경(陰符經)》을 밤낮으로 파고들었고, 졸음이 쏟아지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공부한 집념. '인수자고(引錐刺股)'라는 고사성어가 바로 이 시기에서 나옵니다. 피를 흘려가며 갈고닦은 전략을 품에 안고, 소진은 다시 천하를 향해 나선 것입니다. 이번에는 진나라가 아니라, 진나라에게 짓밟히고 있는 나머지 6개국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기열전》과 《동주 열국지》의 기록을 종합하면, 전국시대 중기 무렵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을 거치며 중원의 압도적인 독점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한, 위, 조, 연, 제, 초 등 나머지 6개국은 개별 국력으로는 진나라의 파상 공세를 감당할 펀더멘털이 턱없이 부족한 처지였습니다. 소진은 연(燕)나라를 시작으로 조(趙), 한(韓), 위(魏), 제(齊), 초(楚)를 차례로 돌며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이라는 방어적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했습니다. 진나라의 동진을 막아내겠다는 단일 목표 아래, 6개 국가가 각자의 군사력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투입하여 공동의 방어 네트워크를 구축하자는 기획입니다.
현대로 치면, 대기업에 퇴짜를 맞고 나온 독립 컨설턴트가 중소기업들을 차례로 설득하며 거대한 방어 컨소시엄을 엮어낸 셈입니다.
소진의 핵심 논리는 명쾌했습니다. 6국의 영토를 합치면 진의 5배, 병력은 10배에 달하니, 어느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나머지 5국이 응징하여 진을 함곡관 뒤에 가둬두겠다는 것. 초기 시너지는 놀라웠습니다. 합종이 체결되자 진나라는 무려 15년간 함곡관 밖으로 정예군을 내보내지 못했습니다. 6개 중소기업이 맺은 느슨한 가상 네트워크가 독점 기업의 확장을 억제하는 진입 장벽으로 기능한 것. 소진은 6국의 재상 인장을 동시에 차는 총괄 프로젝트 매니저(PM)로서 전무후무한 위상을 누렸습니다.
700년 뒤, 반동탁 연합군의 탄생도 동일한 설계도 위에 그려집니다. 190년 관동의 제후들이 동탁 타도를 내걸고 결성한 군사 연합은 겉보기에는 거대한 합병 기업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습니다. 조조, 원소, 원술, 손견 등 18명의 군벌은 각자 자신의 영지에 대한 100%의 소유권을 유지한 채, 오직 '황제 구출 및 동탁 축출'이라는 단일 태스크포스(TF) 프로젝트를 위해서만 임시로 모인 것. 18개 기업이 연합했다는 외형적 덩치만으로도 동탁을 낙양에서 장안으로 후퇴시키는 위력을 발휘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두 연합에는 공통된 결함이 있었습니다. 지분 교환이 없었다는 점. 경영권의 양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각국의 왕과 각 군벌이 자기 지갑을 한 푼도 내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합종의 6국 왕들은 형제라 불렀을 뿐 실제로는 자국의 군대와 국고를 온전히 틀어쥔 '각자대표'였고, 반동탁의 18로 제후 역시 명목상 원소를 맹주로 세웠을 뿐 그 누구도 자신의 병력 통제권을 양도하지 않았습니다. 원소에게는 맹주라는 직함이 있었지만, 타 군벌의 병사 한 명을 동원할 수 있는 실질적 인사권이나 군 통수권은 없었습니다. 사세삼공(四世三公)이라는 명문가의 브랜드 가치로 추대된 상징적 얼굴마담. 그것이 전부.
경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구조의 문제는 명확합니다. 가상 네트워크 부서화의 강점은 공장이나 물류 시설에 막대한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계약만으로 거대한 외형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 그러나 이 구조가 장기적으로 작동하려면, 각 구성원의 이기심을 통제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상위 통제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수 후 통합(PMI, Post-Merger Integration)이라 불리는 화학적 융합 과정.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인사 시스템, 재무 구조를 하나로 녹여내는 사후 관리 기법입니다.
합종에도 없었고, 반동탁에도 없었습니다.
두 연합의 설계도 위에는 거대한 외형이 그려져 있었지만, 그 내부를 지탱할 철근은 단 한 가닥도 들어 있지 않은 풍경. 모래성은 세워지는 순간부터 무너질 준비를 마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이 주창한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 Theory)은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말합니다. 정치가나 관료 역시 공공의 선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예산, 생존이라는 이기적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행동하는 경제인이라는 것.
6국의 군주들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합종이라는 공공재가 유지되면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진나라의 동진을 막아내는 거시적 안보. 그러나 그 공공재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정예병을 전장에 투입하는 것은 각국 군주의 정치적 파산을 의미했습니다. 내 군대가 진나라와 맞붙어 무너지면, 진나라가 아니라 어제까지 동맹이었던 이웃 나라가 텅 빈 나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 계산. '천하의 안위'라는 공공선보다 '자국 군사력의 보존'이라는 이기적 효용이 절대적으로 우선시되는 구조.
반동탁 연합군의 18로 제후도 같은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군벌 시대에서 각 제후의 군대는 곧 정치적 생명이자 유일한 자본. 동탁의 서량군과 맞붙어 병력을 잃는다는 것은 기업으로 치면 핵심 자본이 잠식되어 상장폐지되는 것과 같았습니다. 동탁을 몰아낸 뒤 천자를 손에 넣는다는 미래의 보상보다, 지금 이 순간 내 군대가 줄어든다는 현재의 손실이 훨씬 크고 선명하게 느껴지는 인지적 구조.
이것이 각자대표 체제의 본질적 한계. 현대 기업에서 각자대표(Co-CEO) 체제는 각 부문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살릴 때는 유리하지만, 기업 전체의 생사가 걸린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구심점이 없으면 파편화된 의사결정으로 시너지를 잃고 붕괴하기 쉽습니다. 합종의 6국은 진나라 타도라는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을 뿐 화학적 결합을 이룬 단일 법인이 아니었고, 반동탁의 18로 제후는 동탁 축출이라는 깃발 아래 잠시 서 있었을 뿐 같은 회사의 임원이 아니었습니다. 비용 청구서가 날아오는 순간, 모든 각자대표는 동시에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낼 이유가 없다.'
게임이론에 '돼지의 딜레마(Pig’s Dilemma)'라는 모형이 있습니다. 사료 통과 발판이 멀리 떨어져 있는 축사에서 발판을 밟는 수고를 감수하는 쪽이 오히려 사료를 덜 먹게 되는 구조적 모순입니다. 크든 작든 누구나 남이 발판을 밟아주기만을 기다리는 '기다리는 전략'이 우세 전략이 되며, 결과적으로 조달 시스템 자체가 마비되는 현상.
합종 연합이 바로 이 축사였습니다.
진나라의 정예군과 맞서는 것이 발판을 밟는 행위입니다. 6국 중 누군가는 먼저 함곡관 앞에서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나서서 출혈을 감수하면, 뒤에서 팔짱을 끼고 대기하던 다른 동맹국들이 온전한 병력으로 과실만 독식할 것이라는 두려움. 공공의 안보라는 이익은 모두가 원하지만, 전투라는 비용은 아무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 무임승차(Free Rider)의 만연. 조나라의 평원군이 "합종이란 해봤자 모래로 만든 성과 같다"고 탄식한 것은 바로 이 조직론적 모순을 정확히 찌른 한마디였습니다.
실제로 합종군의 진(秦) 공격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반복되었으나 번번이 무너졌습니다. 기원전 318년 공손연이 주도한 5국 연합군은 함곡관에서 패배하며 8만이 참수당했고, 기원전 241년 춘신군이 이끈 마지막 합종군 역시 함곡관 앞에서 진군의 역공에 일제히 패주합니다. 《사기》 춘신군열전의 기록은 이 거대한 전쟁을 고작 두어 줄로 요약하고 있을 뿐입니다. "함곡관에 이르자, 진이 군사를 보내 공격하니 제후들의 병사들이 모두 패주했다." 합종이라는 구조가 어째서 매번 같은 방식으로 실패하는지, 그 반복성 자체가 지배구조 결함의 증거입니다.
반동탁 연합군은 이 모순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호로관과 사수관을 굳게 지키고 있는 여포와 화웅의 정예 서량군. 이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야 사료 통(천자)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발판을 밟는 데 드는 비용이 자신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높게 설정된, 돼지의 딜레마 축사. 원소 같은 대군벌이든 한복이나 교모 같은 중소 군벌이든, 모두가 같은 계산을 마쳤습니다. 연합군 수십만이 산동에 주둔하면서도 매일같이 연회만 열 뿐 아무도 먼저 진격의 북을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 무임승차의 늪에서 유일하게 발판을 밟으러 뛰어나간 이가 둘 있었습니다. 조조와 손견.
조조는 연합군의 관망을 참지 못하고 단독으로 진격했다가 형양에서 서영의 매복에 걸려 궤멸 수준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화살을 맞고 간신히 목숨만 건진 처참한 결과. 손견도 맹렬하게 전진하여 화웅을 베는 전과를 올렸지만, 이 눈부신 성과가 오히려 재앙을 부릅니다. 손견의 급성장을 두려워한 원술이 군량 보급을 끊어버린 것.
남들의 무임승차를 깨기 위해 홀로 비용을 지불하려 했던 선도자가 시스템의 지원을 받지 못할 때 얼마나 철저하게 파산하는지를 냉혹하게 증명하는 장면입니다. 이타적 행위가 도덕적으로는 칭송받을지 몰라도, 이기적 행위자들로 가득 찬 정치 게임에서는 가장 어리석은 전략이 되어버리는 역설.
심리학에서 말하는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현상이기도 합니다. 위기 상황에서 다수가 모여 있을 때 "내가 아니어도 다른 동맹국이 알아서 막겠지"라는 심리. 개인 수준의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가 국가 단위의 동맹 체제 속에서 발현되면, 그 결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재앙으로 돌아옵니다.
벤처연합의 지배구조에 균열이 간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쪽은 경쟁자였습니다.
합종의 경우, 소진의 동문이자 경쟁자였던 장의(張儀)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같은 스승 귀곡자 밑에서 종횡술을 배운 두 사람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천하를 흔든 한 쌍. 소진이 6국을 묶는 합종의 설계자였다면, 장의는 그 연합을 찢는 연횡의 실행자. 진 혜문왕의 재상이 된 장의는 6국 사이를 오가며 동맹의 균열을 벌리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장의의 수법은 교활했습니다. 초(楚) 회왕에게 "진의 땅 600리를 내주겠다"며 제나라와의 동맹 파기를 종용한 뒤, 회왕이 제와의 동맹을 깨자 "600리가 아니라 6리"라고 번복해버린 일화는 사마천조차 혀를 내두를 만한 기만술이었습니다. 위나라 왕을 설득할 때는 "부모를 같이한 친형제도 재산을 다투는 판국에, 사기와 배반이 난무하는 합종의 맹약이 어떻게 유지되겠느냐"며 동맹국 간의 근본적 불신을 파고들었습니다. "합종에 참가하여 진나라에 맞서는 것은 양 떼가 맹호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는 공포 마케팅까지 전개합니다.
장의가 닦아놓은 이 전략은 세대를 넘어 계승됩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진시황 시대의 이사(李斯)는 같은 플레이북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사기열전》 이사 열전에 따르면, 이사는 진왕에게 천하의 명사들에게 황금과 주옥을 뿌려 진나라 편으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 진나라는 각 제후국의 유력한 대신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안기고 자국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현대 B2B 영업에서 경쟁사의 핵심 의사결정권자(Key Account)를 은밀히 매수하여 내부 전략을 뒤틀어버리는 것과 일치하는 방식입니다. 진나라의 자본에 매수된 각국의 연횡론자들은 밤낮으로 자국의 왕을 위협하며 진나라에 영토를 떼어주라고 강요하는 사내 스파이 노릇을 합니다. 합종이라는 거대한 네트워크는 외부의 군사적 타격을 받기도 전에 내부 임원진의 부패로부터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것.
6국의 각자대표들은 다른 동맹국이 이미 진나라와 밀약을 맺었을지 모른다는 극심한 정보 비대칭에 빠졌습니다. 서로 굳게 뭉치면 진나라를 막을 수 있었음에도, 상대의 배신이 두려워 앞다투어 굴복하고 영토를 할양하는 최악의 선택을 취해버린 것.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가 국가 규모로 재현된 장면입니다.
합종이 바깥에서 쪼개졌다면, 반동탁 연합군은 안에서 찢겼습니다.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의 분석에 따르면, 사세삼공 명문가 출신인 원술은 극심한 '외현적 자기애(Overt Narcissism)'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안하무인에 독불장군 같은 태도. 천하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오직 자신만을 향해야 한다는 과도한 우월 콤플렉스(Superiority Complex). 《조직행동론》에서 규명하듯, 나르시시즘에 빠진 리더는 객관적인 성과 창출보다 자신을 향한 의전과 칭찬에 더 집착합니다.
최전선에서 눈부신 실적을 낸 것은 손견이었습니다. 화려한 가문 배경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 동탁의 정예군을 연파하며 연합군의 에이스로 떠오른 인물. 바로 이 순간 원술의 내면에서 시기심이 발동합니다. 자신이 마땅히 독차지해야 할 찬사를 가문도 변변치 않은 타 부서장이 가져가자, 심리적 항상성이 무너진 것. 자기애에 시기가 결합하면 상대의 성취를 파괴하고자 하는 걷잡을 수 없는 적개심이 폭발합니다.
원술은 후방의 병참기지를 총괄하는 자신의 권한을 악용하여,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손견 부대의 군량미 공급을 전면 차단해버립니다. 특정 팀의 뛰어난 실적을 시기한 재무 부서가 고의로 예산 결재를 미루어 회사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를 엎어버리는, 사일로 효과(Silo Effect)의 발현. 진정한 적(동탁)을 보지 못하고 동료의 실적을 깎아내려 자기 조직의 이익만 지키려는 최악의 사내 정치.
합종은 진나라라는 외부의 적이 내부의 균열을 가속시켜 무너졌고, 반동탁 연합군은 내부의 나르시시스트가 자기 손으로 조직의 동맥을 끊어 무너졌습니다. 메커니즘은 달랐지만 작동 원리는 같습니다. 지주회사의 통제력이 없는 각자대표 체제에서는, 밖에서 쪼개든 안에서 찢든, 연합의 파산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사실.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주창한 '현재 지향 편향(Present Bias)'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인간이 미래의 거대한 이익이나 생존보다 지금 당장 손에 쥐는 즉각적 이익을 비합리적으로 우선시하는 인지의 버릇. 이와 연계된 '쌍곡형 할인 모델(Hyperbolic Discounting)'은 현재에 가까운 시간 차이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 미래의 위험이나 보상은 과도하게 깎아내리는 심리적 모순을 설명합니다.
합종 연합의 군주들에게 진나라의 본격적인 천하 통일은 10년, 혹은 수십 년 뒤에나 닥칠 '먼 미래의 리스크'였습니다. 진나라가 당장 쳐들어오지 않고 함곡관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 왕들의 뇌리에서 멸망의 위험성은 급격히 축소되었습니다. 반면, 이웃 연합국의 국경을 기습하여 성을 빼앗는 것은 당장 내일 거둘 수 있는 '현재의 확실한 수익'.
장기적으로 연합을 유지하여 국가를 보존하는 거시적 이익보다, 눈앞의 성 하나를 빼앗는 단기 이익의 달콤함에 굴복하는 구조. 현대 기업의 CEO들이 장기적인 R&D 투자를 삭감하고 당해 연도의 영업이익률을 끌어올려 자신의 인센티브를 챙기는 근시안적 의사결정의 뼈대와 동일합니다.
여기에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의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 더해집니다. 6국의 연합은 그 자체로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극도로 복잡한 다자간 체스 게임.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으로는 이렇게 변수가 많은 다차원적 문제를 최적의 합리성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정보 과부하와 동맹국에 대한 의심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은 복잡한 논리를 요구하는 '시스템 2'의 작동을 멈추고 감정과 직관에 의존하는 '시스템 1'로 도피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6국의 군주들은 천하 7국의 거시적 세력 균형이라는 최적해를 추구하는 대신, 자신의 인지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 문제를 쪼그라뜨렸습니다. 당장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 조나라나 제나라와의 해묵은 원한, 국지적인 자원 쟁탈전이라는 단순화된 프레임 안에서만 '만족할 만한' 대안을 찾은 것. 초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고, 제나라와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는 자중지란. 벤처연합 전체의 생존 관점에서는 명백한 자해 행위지만, 제한된 합리성에 갇힌 개별 군주의 좁은 시야 속에서는 당장의 불만을 해소하는 직관적인 해결책으로 착각됩니다.
인지심리학의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도 강력하게 작용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떠올리기 쉬운 정보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함곡관 너머의 낯선 진나라보다 당장 어제까지 으르렁거리던 이웃 국가의 위협이 훨씬 선명하고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기에, 그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먼 곳의 진정한 위협은 과소평가해버리는 인지적 왜곡. 진나라의 연횡가들이 이간질을 시도했을 때 군주들이 쉽게 넘어간 것도, "저 나라는 원래 믿을 수 없는 놈들이었다"는 과거 선입견을 재확인시켜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믿어버린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산물입니다.
반동탁 연합군의 제후들도 이 편향의 덫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동탁이 장안으로 퇴각한 뒤 눈앞에서 사라지자, '동탁 타도'라는 거시적 목표의 긴급성은 급격히 사라진 상태. 대신 바로 옆에서 병력을 불리고 있는 다른 제후의 존재가 선명한 위협으로 떠오릅니다. 동맹의 깃발 아래 모였던 18개의 군벌은 동탁을 잊고 서로를 경계하며, 빈 영지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합니다. 공동의 적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각자대표 체제의 벤처연합은 내부의 경쟁자를 새로운 적으로 재설정하고 스스로를 해체하기 시작하는 것.
무임승차, 분할통치, 사일로, 근시안적 의사결정. 고대의 실패 구조가 이토록 체계적으로 반복되었다면, 과연 이 공식은 고대에서 멈추었을까요.
2013년, 삼성SDS 출신 이상혁이 '모바일 스타트업 연합체'를 표방하며 옐로모바일을 세웠습니다. 전(前) 옐로트래블 CFO 최정우가 저서 《스타트업은 어떻게 유니콘이 되는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회사의 핵심 무기는 지분 스와프(Equity Swap) M&A였습니다. 현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옐로모바일의 지분과 피인수 기업의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 인수 원칙은 "미팅 3번 만에, 영업이익 4배수 값에 인수." 기업 실사(Due Diligence)라는 절차는 사실상 생략된 속전속결이었습니다.
이 방식으로 출범 1년 만에 35개 스타트업을 흡수하며 기업가치 1조 원을 돌파, 대한민국 최초의 유니콘에 등극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포메이션8로부터 1억 달러를 유치하고, SMATO(Shopping, Media, Advertising, Travel, O2O)라는 이름 아래 카카오와 네이버가 미처 선점하지 못한 5개 버티컬 시장에 각 분야 2~3위 기업들을 연합시킨다는 구상. 기업가치는 4조 원까지 치솟았고, 계열사 수는 한때 140개를 넘겼습니다.
2,500년 전 소진이 6국의 왕들을 차례로 돌며 세 치 혀 하나로 합종이라는 거대 연합을 엮어낸 것처럼, 이상혁 역시 뛰어난 프레젠테이션 능력과 파격적인 비전으로 수십 명의 창업자를 설득하여 거대한 모바일 제국을 조립해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진의 합종보다 훨씬 세련된 현대판 벤처연합입니다. 그런데 이 제국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2,500년 전과 닮은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균열의 첫 번째 층위는 결합의 본질에 있었습니다. 지분 스와프라는 현대적 용어로 포장되었지만, 본질은 합종의 피 맹약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현금이라는 실질적 대가의 교환 없이 종이 위의 지분만 오갔기에, 옐로모바일의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순간 교환 비율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출발한 것. 합종의 6국이 피를 나누어 마셨으나 군대는 한 명도 보내지 않은 것처럼, 옐로모바일의 계열사들도 지분을 교환했으나 실질적인 경영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느슨한 결합은 곧 시너지의 부재로 드러났습니다. 2015년 매출 3,181억 원에 영업손실 467억 원. 이상혁 대표가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매출 6,000억, 영업이익 700억과는 전혀 다른 숫자였습니다. 쿠차는 쿠팡과 네이버쇼핑에 밀렸고, 피키캐스트는 트래픽이 급감했습니다. 각 분야 2~3위 기업을 합쳐도 1위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냉혹한 시장의 법칙. 합종의 6국이 병력을 합치면 진의 10배라고 떠들었지만, 실제 전장에서는 단 한 번도 그 병력을 하나로 집중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합종과 반동탁이 '통제력의 부재' 때문에 무너졌다면, 옐로모바일은 정반대의 방향에서 무너졌습니다. 통제력의 독점. 2016년 하반기 재무팀장과 CFO가 연이어 퇴사한 뒤, 2년간 CFO 자리는 공석이었습니다. 이상혁 대표가 법인통장 OTP를 직접 소지하며 자금을 운영하는 구조. 이사회도 감사 체계도 작동하지 않는 1인 독재. 더 놀라운 것은, 옐로모바일이 2016년에 본사-5개 중간지주사-60개 손자회사로 지배구조를 개편하여 형식상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기까지 했다는 점입니다. 합종에는 지주회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서 문제였는데, 옐로모바일은 지주회사라는 외피를 입히고서도 무너진 것. 형식만 있고 실질적 견제 시스템이 없는 지주회사는, 지주회사가 없는 것보다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2017년과 2018년 연속으로 삼일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면서 IPO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방향은 달랐지만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합종의 각자대표들은 아무도 비용을 치르려 하지 않아서 연합이 마비되었고, 옐로모바일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자원을 빨아들여 연합이 고사했습니다. 분권이든 독재든, 견제 시스템이 부재한 연합은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말은 숫자로 드러났습니다.
옐로모바일이 데일리금융그룹(코인원 모회사)을 인수한 뒤, 코인원에서 300억 원을 빌려가고 상환하지 않았습니다. 여행박사를 292억 원에 매각한 대금은 이사회 승인 없이 본사로 빼돌려졌습니다. 인수한 데일리블록체인의 현금 450억 원은 5개월 만에 50억 원으로 증발한 것. 흑자 계열사의 자금을 적자 본사로 빨아들이는 구조. 원술이 손견의 군량을 끊어 전선을 무너뜨린 것과 방향만 반대일 뿐, 연합체 내부의 자원이 공동의 목표가 아닌 특정 주체의 사적 이익을 위해 전용되었다는 본질은 동일합니다.
결국 핵심 계열사 창업자 10여 명이 '경영정상화 비상대책팀'을 꾸려 이상혁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반동탁 연합군이 동탁을 타도하지도 못한 채 제후들끼리 서로를 적으로 돌리며 공중분해된 것처럼, 옐로모바일 연합도 공동의 적(카카오, 네이버)을 이기지 못한 채 내부 전쟁에 돌입합니다. 30건 이상의 민형사 소송이 터지고, 알짜 자회사들은 앞다투어 계열 분리와 독립 상장을 추진하며 각자도생에 나선 것. 2019년 이상혁 대표 사임, 부채비율 532%. 계열사 수는 140개에서 58개로 쪼그라들었고, 2024년 4월 폐업이 완료됩니다. 누적 투자금 2,600억 원, 한때 4조 원이던 기업가치가 0원이 된 순간.
지금까지의 서술은 세 연합의 붕괴를 지배구조의 결함과 구성원들의 이기적 의사결정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건의 절반만 본 해석. 거시적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구조가 드러납니다.
합종의 경우 — 진나라의 펀더멘털은 이미 승부를 결정짓고 있었습니다.
진나라는 상앙의 변법 이래 철저한 법가주의적 중앙집권과 군공수작제(軍功授爵制)를 도입하여, 국가 전체를 전시 생산과 전투에 최적화된 거대 군사-경제 복합체로 개조하는 전례 없는 '공정 혁신(Process Innovation)'을 이루어냈습니다. 적의 목을 벤 개수에 따라 신분과 토지를 내어주는 철저한 KPI(핵심성과지표)와 파격적 인센티브 시스템. 귀족의 핏줄이 아니어도 전쟁에서 실적만 내면 임원이 될 수 있는 능력 위주의 보상 체계.
《사기열전》에 묘사된 진나라 군대의 모습은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산동의 6국 군사들이 두꺼운 갑옷과 투구를 쓰고 무겁게 싸울 때, 진나라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사로잡는 맹렬함을 보인 기록. 유전자가 달라서가 아닙니다. 목을 하나 더 베면 내 인생이 바뀐다는, 시스템이 설계한 광기.
물류에서도 진나라의 우위는 독보적인 수준. 파(巴)와 촉(蜀)이라는 천혜의 곡창지대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수확한 곡식을 큰 배에 싣고 강을 따라 내려보내면 수십만 대군을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런 압도적 인프라 앞에서는 6국의 벤처연합이 제아무리 굳게 단결했다 한들 장기적인 소모전에서 필연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종은 부실 기업들의 시간을 잠시 연장해 준 진통제에 지나지 않았다는 반론. 이쪽이 오히려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깝습니다.
반동탁의 경우 — 제후들의 해산은 '합리적 손절'이었을 수 있습니다.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천연의 요새인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전쟁의 펀더멘털이 뒤바뀌었습니다. 평야에서의 회전과 험준한 함곡관을 뚫고 장안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 수행 비용에서 천문학적인 차이가 납니다. 당초 산정했던 인수합병 비용이 기업의 지불 능력을 아득히 초과한 상황.
이 시점에서 제후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였습니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끝장을 보자"며 억지로 진격하는 것은 전형적인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에 빠져 조직 전체를 파산으로 몰고 가는 판단입니다. 원소를 비롯한 대다수 군벌은 이미 지출된 비용을 깔끔하게 회계 처리하고, 핵심 자산을 보존하는 손절매(Stop Loss)를 단행한 것. 게임이론의 '후진작업 전략(Backward Induction)'도 겹쳐집니다. "동탁을 몰아내더라도 결국 천자의 조종권을 두고 우리끼리 죽일 것이다." 어차피 서로 죽일 미래가 기다린다면, 지금 굳이 내 군대를 소모할 이유가 없다는 냉혹한 역추론.
그러나 이 손절의 합리성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따라붙습니다. 형양에서 부도가 날 뻔하면서도 대의를 좇은 조조는 훗날 '천자를 구하려 한 유일한 충신'이라는 막대한 평판 자본을 얻었습니다. 장안을 탈출한 헌제가 숱한 제후 중 하필 조조를 자청해서 불렀던 것, 순욱이나 곽가 같은 당대 최고의 두뇌들이 기꺼이 조조의 벤처기업에 합류한 동력은 이때 조조가 보여준 '기꺼이 패배할 줄 아는 결단력'에 있었습니다. 단기적 유형 자산을 내어주고 장기적 무형의 자본을 취한,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이 말하는 '똑똑한 실패(Intelligent Failure)'의 정교한 구현. 당장의 자본을 아낀 원소와 원술은 훗날 그 영지에 갇혀 파멸했지만, 패전의 상처를 떠안은 조조는 천하를 쥐었습니다.
옐로모바일의 경우 — 2~3위의 연합은 1위를 넘을 수 없었던 것인가.
옐로모바일의 몰락을 지배구조의 결함이나 이상혁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만 설명하는 것은 사태의 표면만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옐로모바일이 싸워야 했던 진짜 적은 카카오와 네이버라는 독보적 플랫폼 기업이었습니다. 합종의 6국이 상앙의 변법으로 무장한 진나라의 펀더멘털을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옐로모바일의 SMATO 전략은 이미 검색, 메신저, 결제라는 핵심 인프라를 독점한 플랫폼 생태계 앞에서 구조적으로 열세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 분야 2~3위 기업을 아무리 많이 합쳐도, 사용자의 일상을 장악한 슈퍼앱 하나를 이길 수 없다는 냉혹한 시장의 법칙. 진나라의 군공수작제가 카카오의 플랫폼 네트워크 효과로 치환된 셈입니다.
이상혁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도 해석은 갈립니다. 처음부터 기업가치를 부풀려 투자금을 빨아들인 기만적 기획자였는지, 아니면 실행 능력을 넘어서는 거대한 비전을 품었다가 경영의 복잡성에 압도당한 미숙한 창업가였는지. 최정우는 저서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옐로모바일은 사기였을까? 아니다. 우리는 누구보다 빨랐고 운이 좋았지만, 누구보다 미숙했다."
소진도 세 치 혀로 6국을 엮어냈지만 그 연합을 유지할 시스템을 설계하지 못했고, 이상혁도 프레젠테이션으로 140개 기업을 모았지만 그 연합을 하나의 기업으로 녹여낼 경영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기획의 재능과 운영의 재능은 전혀 다른 근육이라는 것. 2,500년간 반복되는 이 간극이야말로, 벤처연합 파산 공식의 깊은 층위에 놓인 근본 원인일 수 있습니다.
기원전 333년의 합종과 서기 190년의 반동탁 연합, 그리고 2013년의 옐로모바일. 2,500년이라는 시차를 두고 벌어진 세 사건은 규모도, 무대도, 등장인물도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부도 처리서의 양식은 거의 동일합니다.
진정한 자본의 결합이 없었습니다. 합종은 피의 맹약으로, 반동탁은 하늘의 맹세로, 옐로모바일은 지분 스와프라는 종이 위의 약속으로 묶인 연대. 핵심 자원이 각자에게 흩어져 공유되지 않거나, 혹은 한 사람에게 빨려 들어가 견제되지 않거나 — 어느 쪽이든 화학적 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비용 지불을 강제하거나 자원의 사유화를 막을 시스템은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세 사건의 붕괴를 구성원들의 이기심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절반의 진실입니다. 합종의 경우 진나라의 압도적 펀더멘털 앞에서 6국은 구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었고, 반동탁의 경우 제후들의 철수는 합리적인 손절이라는 해석도 성립하며, 옐로모바일의 경우 카카오와 네이버라는 독보적 플랫폼 기업 앞에서 2~3위 연합이 1위를 넘는다는 전제 자체가 허약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거시적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한 가지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설계도에 철근이 없으면, 모래성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
6국의 왕들이 피를 나누어 마시며 세웠던 거대한 방어선도, 18로 제후가 하늘에 맹세하며 세웠던 의로운 깃발도, 140개 스타트업이 지분을 맞교환하며 쌓아올린 4조 원의 제국도, 결국 진정한 결합 없는 연합 앞에서는 한 줌의 모래일 뿐이었습니다. 평원군은 탄식했습니다. "합종이란 해봤자 모래로 만든 성과 같다"고. 700년 뒤 산동의 들판에서 매일 연회만 열던 18명의 제후들도, 2,300년 뒤 강남의 사무실에서 기업가치를 부풀리던 벤처 연합의 기획자도, 자신들이 그 모래성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몰랐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