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이 독이 될 때, 피터의 법칙으로 읽는 몰락의 공식

by 연구소장

프롤로그: 승진장은 왜 사형선고서가 되었는가


918년, 태봉의 왕 궁예는 자신이 세운 나라에서 쫓겨나 도주하다 죽었습니다. 기원전 154년 전한의 어사대부 조착은 자신이 모신 황제의 명령으로 시장거리에서 목이 잘렸고, 1815년에는 나폴레옹의 정예 장군들이 워털루의 진흙탕 위에서 제국을 통째로 날려 버렸습니다.


세 사건의 시대와 무대는 전혀 다릅니다. 한반도의 후삼국, 중국의 전한,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 그런데 이 세 비극의 뼈대를 겹쳐 놓으면 놀라울 만큼 같은 윤곽선이 떠오릅니다. 현장에서 압도적 성과를 내던 인재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는 순간, 과거의 성공 공식이 독으로 변해 자기 자신과 조직을 함께 파괴하는 패턴.


1969년, 교육학자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작가 레이먼드 헐(Raymond Hull)과 함께 이 패턴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 위계 조직에서 유능한 사람은 계속 승진하다가, 결국 자기 능력이 더는 통하지 않는 자리에 도달해서야 멈춘다는 원리입니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상층부는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로 채워집니다. 실무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올라갔건만, 올라간 자리에서 요구하는 역량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입니다.


경영 컨설턴트 램 차란(Ram Charan)은 스티븐 드로터(Stephen Drotter), 제임스 노엘(James Noel)과 함께 이 현상을 '리더십 파이프라인(Leadership Pipeline)'이라는 모델로 더 정밀하게 다듬었습니다.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실무자 시절의 업무 방식과 가치관을 통째로 버리고, 타인을 육성하거나 시스템 전체를 조율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역량으로 전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전환에 실패하면? 과거에 나를 최고로 만들어 준 능력이 이제 나를 무너뜨리는 족쇄가 됩니다.


이 글은 피터의 법칙이라는 렌즈를 들고 세 시대, 세 대륙의 몰락을 동시에 들여다봅니다. 물론 이 이론은 현대 기업의 안정적 위계 조직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10세기 한반도의 군벌,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조정, 19세기 유럽의 전장은 그 전제와 거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유능함이 승진의 근거가 되고, 승진한 자리가 전혀 다른 역량을 요구한다'는 핵심 메커니즘은 시대를 관통합니다. 프레임이 들어맞는 구간과 삐걱거리는 구간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I. 궁예 — 야전 사령관이 CEO가 되면 생기는 일


밑바닥에서 시작한 현장의 천재


궁예의 출발점은 바닥이었습니다. 신라 왕실의 피를 이어받았으나 버려진 왕자. 절에 숨어 자라다가 세상 밖으로 나온 이 사내가 처음 뛰어든 곳은 유민과 도적이 뒤섞인 군벌 집단이었습니다.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에 따르면, 궁예는 초기 상관이었던 죽주의 기훤이 부하들을 제대로 품지 못하자 청길, 원회, 신훤 등 핵심 동료 장수들을 이끌고 북원의 양길 휘하로 옮겨갔습니다. 능력 없는 상사 밑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판단. 이 한 번의 이직이 궁예의 인생을 바꿔 놓았습니다.


양길 밑에서 궁예가 보여 준 실적은 경이적이었습니다.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진성여왕 5년(891년) 기병 100여 명으로 시작한 세력이 겨우 3년 뒤인 894년에는 3,500명으로 불어난 것. 이 과정에서 궁예는 김대검, 모혼, 장귀평 등으로 읽히는 핵심 부장들을 직접 발탁해 14개 대오의 지휘 체계를 세웠습니다. 사졸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되, 상벌은 철저히 공(公)을 따르고 사(私)를 배제하는 투명한 성과주의를 유지한 것. 밑바닥 유민들을 결속시키는 카리스마, 전술 단위의 빠른 기동력, 공정한 보상 체계. 현장 실무에서 궁예의 능력에는 한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승진, 그리고 한계 직급의 도래


899년, 궁예는 옛 상관 양길과 그 휘하의 옛 동료들을 차례로 격파했습니다. 901년 스스로 왕위에 올라 국호를 후고구려(後高句麗)라 칭했고, 904년에는 마진(摩震)으로, 911년에는 다시 태봉(泰封)으로 바꾸며 국가의 외형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습니다. 국호가 바뀔 때마다 궁예가 꿈꾸는 나라의 규모도 커졌고, 그에 따라 요구되는 직무 역량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피터의 법칙이 전제하는 '조직이 나를 승진시키는' 상황과 다릅니다. 궁예는 자기가 자기를 왕에 앉혔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스타트업 창업자가 회사를 키운 뒤에도 CEO 자리를 놓지 않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창업자 함정(Founder\'s Trap)'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다만 핵심 메커니즘은 같습니다. 현장에서 통하던 성공 공식을 상위 직무에서 그대로 반복하는 순간 독이 되기 시작한다는 것.


칼을 들고 돌격하는 사령관의 시대는 끝. 이제 궁예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들을 조율하는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입니다. 태봉의 주주 구성은 복잡한 편이었는데, 궁예와 함께 밑바닥부터 굴러온 구세력(승려·도적 출신 군관)과 송악 등지에서 뒤늦게 합류한 신흥 엘리트 호족 세력(왕건 가문 등)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램 차란의 리더십 파이프라인 이론에 따르면, 이 전환 구간에서 궁예는 야전 사령관 시절의 군사적 카리스마를 내려놓고 두 세력 간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중재하는 역량을 새로 장착했어야 합니다. 궁예도 이를 모르지 않았던 듯, 신라 관제를 버리고 광평성·병부·내봉성 등 독자적이고 방대한 행정 관제를 설계해 놓았습니다. 근래의 일부 연구자들이 이 독창적인 제도 설계에 주목하며 궁예를 정치적 지혜를 갖춘 인물로 재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꽤 그럴듯한 출발이었습니다.


문제는 소프트웨어였습니다. 궁예는 이 정교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자신이 누구보다 잘하던 과거의 '군사적 통제'를 고스란히 복사해 붙여 넣었습니다. 직무는 CEO인데,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야전 사령관. 피터의 법칙이 말하는 '한계 직급'에 정확히 도달한 것입니다.


관심법 — 무능한 CEO의 마이크로매니지먼트


리더십 파이프라인 전환에 실패한 경영자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대신, 실무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직접 감시하는 마이크로매니지먼트(Micromanagement)로 퇴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궁예가 정확히 그 경로를 밟았습니다.


궁예는 호족들의 군권과 경제력을 회수하기 위해 '순군부'라는 기구를 설치하고, 노골적인 중앙집권화를 밀어붙였습니다. 지분을 강제로 빼앗길 위기에 처한 호족 대주주들이 반발하자, 궁예는 타협 대신 '관심법(觀心法)'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꺼내 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며 신하들의 내면까지 통제하겠다는 것. 역모 혐의를 씌워 숱한 신하를 처형했고, 부인 강씨와 두 아들까지 죽이는 데 이르렀습니다.


후대는 이를 정신병적 발작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리 읽으면, 리더가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고갈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불안에 휩싸인 CEO가 폭력적 숙청으로 권위를 유지하려 하면 할수록, 조직의 핵심 인재들은 도륙 나고 펀더멘털은 무너졌습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핵심 역량의 함정(Core Rigidity)'이 여기서 작동합니다. 과거 궁예를 성공시킨 핵심 역량—불관용의 엄격한 군사 통제와 저돌적 기동—이 환경과 직급이 바뀐 뒤에는 오히려 조직을 망가뜨리는 독성 관성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혁신적이었던 창업자의 독단적 리더십이 기업 규모가 커진 뒤에는 성장의 리스크(Owner Risk)로 돌변하는 현상과 겹치는 구조입니다.


이사회의 쿠데타, 그리고 축출


극단적인 폭압과 잦은 부역, 과중한 과세로 백성의 지지마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918년, 상인 왕창근이 가져온 거울에 담긴 참언—궁예의 시대가 가고 왕건이 천명을 받는다는 내용—은 호족 세력이 여론전을 벌인 흔적입니다. 주주총회 전야에 뿌려진 삐라나 다름없는 것.


왕건으로 대표되는 신진 호족 세력이 무력으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궁예가 자랑하던 군사적 카리스마는 이미 힘을 잃은 뒤였습니다. 반군이 들이닥치자 대다수 군중이 동조했고, 궁예는 "나의 일은 이미 끝났다"고 한탄하며 도주하다 부하들(혹은 평강의 백성들)에게 피살되었습니다.


궁예를 피터의 법칙의 전형적 희생자로 읽을 수도 있고, 기득권 카르텔의 진입 장벽(Barriers to Entry)을 너무 빠르게 부수려다 반격에 산화한 체제 혁신가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순군부를 통한 호족 사병 혁파, 독자적 국가 제도 설계, 대규모 인구 재배치—이 일련의 조치가 강력한 중앙집권을 향한 합리적인 국가 개조 작업이었다면, 궁예의 몰락은 무능의 증거가 아니라 개혁의 속도가 이해관계자들의 수용 한계를 넘어선 결과였을 수 있습니다. 승자인 왕건 측이 사후에 궁예를 '정신병자'로 기록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이 물음은 더 복잡해집니다. 다만 어느 쪽으로 읽든, 야전의 성공 공식을 최고경영자의 자리에서 그대로 반복한 것이 파국의 방아쇠를 당겼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대 같은 무대에서 피터의 법칙이 한 단계 다른 층위로 작동한 인물이 있다는 점입니다. 후백제의 견훤. 견훤 역시 군사적 카리스마로 나라를 세운 야전형 창업자였습니다. 그러나 견훤이 부딪힌 한계 직급은 궁예와 다른 층위. 궁예가 '실무자에서 CEO로의 전환'에서 무너진 반면, 견훤은 그 다음 단계—CEO에서 오너(Owner)로서 후계 구도를 설계하는 지배구조 전환—에서 무너졌습니다. 견훤은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맏아들 신검이 이에 반발해 쿠데타를 일으켜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시켰습니다. 전장에서 수만 명을 지휘하던 사령관이, 자기 아들들 사이의 권력 배분조차 설계하지 못한 것.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마지막 관문—후계자를 육성하고 권력을 이양하는 단계—에서 걸려 넘어진 셈입니다.


후삼국의 두 창업자가 나란히 내부 반란으로 축출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야전의 천재성은 조직을 세우는 데는 충분하지만, 조직을 유지하고 물려주는 데는 전혀 다른 역량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같은 시대가 두 번 증명한 것입니다.



II. 조착 — 최고의 참모가 재상이 되면 생기는 일


법률의 천재, 지혜 주머니


무대를 중국으로 옮겨 보겠습니다. 기원전 2세기, 전한의 조착은 법령 정비와 정책 기획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태자 시절의 경제(景帝)가 곁에 두고 '지혜 주머니'라 불렀을 정도입니다. 조착의 핵심 역량은 법률적 논리와 정치적 직관의 결합에 있었습니다.


이를 보여 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승상 신도가가 조착을 죽이려 한 사건. 조착이 태상황 사당의 바깥담에 임의로 문을 낸 것을 빌미로 사형을 추진한 것인데, 조착은 이 수를 미리 읽었습니다. 밤을 새워 황제에게 달려가 방어 논리를 펼쳤고, 다음 날 승상이 공격을 개시했을 때 황제는 "그곳은 사당 담이 아니라 바깥 빈터의 담이니 처벌할 수 없다"며 조착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법률 논리를 구성하는 능력, 상대의 수를 미리 읽는 직관, 황제의 의중을 꿰뚫는 정치 감각. 참모로서 조착은 빈틈이 없었습니다. 신도가는 분을 이기지 못해 병을 얻고 세상을 떠났으며, 조착의 정치적 주가는 정점에 달했습니다.


어사대부의 자리, 그리고 경로 의존성의 함정


경제가 즉위하자 조착은 마침내 어사대부에 올랐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회장 직속 기획 참모에서 부회장 겸 감사위원장에 해당하는 삼공(三公)의 반열로 뛴 셈. 승상(총리) 바로 아래에서 관리들의 비행을 감찰하고 국정 전반에 관여하며, 승상 자리가 비면 관례에 따라 그 자리를 채우는 예비 총리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모와 삼공은 같은 조정에서 일하되, 전혀 다른 근육을 쓰는 직무입니다. 참모는 좋은 기획서를 쓰면 됩니다. 하지만 삼공의 자리에 오르면 그 기획서가 현실에서 일으킬 파장을 예측하고,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관리하며, 때로는 당근과 채찍을 섞어 타협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어사대부가 된 조착에게서 경영전략에서 말하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 나타났습니다. 과거에 성공을 가져다준 방식에 얽매여 환경이 바뀌어도 기존 방식을 비합리적으로 고수하는 현상. 조착은 재상이 된 뒤에도 참모 시절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제후들의 영지를 삭감하는 30장에 달하는 강경한 법령 개정안을 밀어붙인 것.


당시 제후들은 한나라라는 거대 그룹의 알짜 지방 계열사 대표이자, 독자적 군사력을 보유한 강력한 대주주들이었습니다. 참모라면 회장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계열사 분할 기획안을 써내는 것으로 임무가 끝납니다. 하지만 재상이라면 그 기획안이 촉발할 계열사들의 무장 반발이라는 거시적 리스크까지 계산에 넣어야 했습니다. 조착은 문서상의 논리와 법령의 명분만 믿고 이 거대한 기득권 카르텔을 정면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오초칠국의 난, 그리고 시장에서의 참수


결과는 파국이었습니다. 오초칠국의 난. 7개 제후국이 "황제 곁의 간신 조착을 죽인다"는 명분으로 무장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국가 존망이 걸린 이 위기 상황에서 어사대부 조착이 보여 준 행동은 재상의 자격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반란군을 분열시키고 황실을 방어할 전략을 짜는 대신, 조착은 이 혼란을 틈타 오랜 정적 원앙을 제거하려는 궁리부터 했습니다. 원앙이 과거 오나라 왕에게 뇌물을 받았으니 심문해야 한다는 논리. 반란군이 수도를 향해 밀려오는 판에 개인적 원한부터 갚으려 드는 편협함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경직성(Cognitive Rigidity)'—자기가 설계한 정책의 정당성에만 매몰되어 현실의 변수를 유연하게 수용하지 못하는 사고의 닫힘—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사태를 파악한 정적 원앙이 한발 먼저 황제를 찾아가 진언했습니다. "조착 한 사람의 목을 베어 반란군의 명분을 없애야 합니다." 최고경영자인 경제는 경영권(황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충성스러운 대리인을 제물로 던지는 냉혹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조착은 조복(관복)을 입은 채 동시(시장거리)로 끌려 나가 참수되었습니다. 평생을 황제의 권력 강화를 위해 법안을 만든 참모가,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황제의 법에 의해 더없이 굴욕적으로 처형당한 결말.


그런데 조착을 무능한 재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조착의 아버지가 찾아와 "황실은 편안해지겠지만 우리 조씨 가문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하며 자살했을 때, 조착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자는 존엄해질 수 없고 종묘는 편안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파멸을 예견하면서도 황권을 위해 기꺼이 불나방처럼 뛰어든 셈.


조착의 사후, 복야 등공은 황제에게 직언했습니다. "제후들이 반란을 일으킨 진짜 목적은 조착을 죽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이라고." 그리고 조착의 정책이 "만세에 걸친 이익"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조착이 없었다면, 제후들은 더 오랜 기간 힘을 축적해 훗날 황실을 뿌리째 뒤흔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관점에서 조착은 피터의 법칙의 희생자라기보다, 제국의 고름을 일찍 터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을 악역에 배치한 '전략적 희생양(Strategic Scapegoat)'으로 재해석됩니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지불하여 제후들의 반란 명분을 조기에 끌어냈고, 결과적으로 경제가 반란을 진압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완성할 수 있는 토대를 깔아 준 인물. 최악의 재상이라는 평가와 한나라의 미래에 더없이 값비싼 투자를 한 순교적 재상이라는 평가가 동시에 성립하는,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III. 워털루 — 실무자를 전략가 자리에 앉히면 생기는 일


마지막 무대는 1815년 6월 18일, 벨기에의 워털루입니다. 이 전투의 패배를 나폴레옹 개인의 쇠퇴나 시대의 흐름으로 돌리는 시각도 있지만, 지휘부 내부를 들여다보면, 피터의 법칙과 닮은 구조가 보입니다. 다만 앞의 두 사례와 결이 다른 점을 짚어야 합니다. 궁예나 조착은 과거의 유능함을 인정받아 올라간 경우지만, 워털루의 장군들은 '유능해서 승진한' 것이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 배치된' 측면이 강합니다. 제국의 전성기를 함께한 인재풀이 이미 고갈된 상태에서, 남은 카드로 자리를 메꾼 것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실무에서 검증된 역량이 상위 직무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핵심 메커니즘은 이 전장에서도 정확히 반복되었습니다. 세 명의 장군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한계 직급의 함정에 빠졌고, 그 세 개의 구멍이 동시에 열리면서 제국은 침몰했습니다.


술트 — 야전 사령관을 행정 책임자에 앉히다


첫 번째 구멍은 총참모장 니콜라 술트(Nicolas Soult)에게서 열렸습니다. 《세상을 바꾼 전쟁》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워털루를 앞두고 야전 지휘로 이름을 날린 술트를 총참모장에 임명했습니다. 과거 이 자리의 주인은 루이 알렉상드르 베르티에(Louis Alexandre Berthier). 베르티에는 나폴레옹의 천재적이지만 파편적인 구상을 수십만 대군의 정밀한 행군표와 작전 명령서로 번역해 내는 '행정적 두뇌'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술트는 돌격과 야전 지휘에 특화된 전형적인 '영업 임원'이었지, 병참과 통신을 관리하는 '기획·행정 임원'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인적자원관리에서 말하는 '적합성 결여(Person-Job Fit Mismatch)'—개인의 특성과 직무가 요구하는 특성이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는 상태—가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결과는 명령 전달의 병목 현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전투 당일, 전황의 열쇠를 쥔 그루시에게 방향 전환을 지시하는 명령서가 뒤늦게 발송되었는데, 전령을 단 한 명만 보냈고 그마저 실종되어 명령이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타이밍이 생명인 전장에서 정보의 단절은 곧 조직 전체의 마비를 뜻합니다. CEO의 명령이 현장에 닿지 못하게 만드는 병목, 그 원인이 잘못된 인사 배치에 있었습니다.


그루시 — 명령서만 붙잡은 기병대장


두 번째 구멍이자, 워털루 패전에서 결정적 원인으로 꼽히는 에마뉘엘 그루시(Emmanuel Grouchy)의 이야기입니다. 나폴레옹은 리니 전투에서 후퇴하는 프로이센군(블뤼허)을 추격해 영국군과의 합류를 차단하라는 임무를 부여하며, 3만 3천 명의 병력을 그루시에게 맡겼습니다.


그루시는 기병대장으로서는 훌륭한 돌격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의 3분의 1을 이끌고 황제의 통제 밖에서 독립적으로 전략적 판단을 내리는 역할은 해 본 적 없는 인물.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한 채 독립 군단 사령관이라는 상위 직무에 배치된 셈입니다.


결과는 조직행동론에서 말하는 '역할 모호성(Role Ambiguity)'의 극단적 사례로 나타났습니다. 6월 18일, 워털루 방향에서 제국의 운명을 가르는 맹렬한 포성이 울려 왔습니다. 휘하의 제4군단장 제라드(Gerard)가 즉시 포성이 들리는 본대 쪽으로 진로를 바꿔 나폴레옹을 지원하자고 강력히 건의한 것. 전략적 시야를 갖춘 사령관이었다면, '프로이센군 추격'이라는 기존 명령의 표면적 문구에 매이지 않고 '본사의 붕괴 방지'라는 상위 목표를 위해 유연하게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루시는 서류상의 마지막 명령—와브르 방면 추격—만을 기계적으로 고집했습니다. 워털루에서 프랑스 제국이 무너지고 있을 때, 3만 3천 명의 정예 병력은 엉뚱한 곳에서 프로이센 후위대 1개 군단만을 상대로 소모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거시적 판단력 없는 실무자에게 거대 자본을 독립적으로 맡겼을 때 벌어지는 일. 상황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낡은 매뉴얼만 붙들다 회사를 통째로 파산시킨 교훈적인 장면입니다.


미셸 네 — 용감한 자의 맹목적 돌격


세 번째 구멍은 '용사 중의 용사'로 불린 미셸 네(Michel Ney) 원수에게서 열렸습니다. 나폴레옹이 위경련 등 건강 문제로 지휘소에 물러나 있는 동안 현장 지휘를 맡은 미셸 네는 영국군 방어선을 돌파해야 했습니다. 최고의 실무 투사. 그러나 보병·기병·포병 등 여러 병과를 유기적으로 융합하는 '복합 조직 관리(Cross-functional Integration)' 능력은 갖추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꾼 전쟁》은 미셸 네가 웰링턴의 방어선을 향해 거대한 기병 돌격을 감행한 장면을 기록합니다. 미셸 네의 직접 명령이었는지, 기병대가 자발적으로 돌격을 시작한 뒤 미셸 네가 이를 추인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엇갈리지만, 결과는 동일했습니다. 보병과 포병의 화력 지원 없이 기병만으로 밀어붙인 돌격은 '방진(Square)'을 형성한 영국 보병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하는 참극으로 끝났습니다. 영업부서가 단독으로 무리한 공세를 펼치다 재무와 생산의 지원을 받지 못해 회사의 자본(정예 기병)만 탕진한 꼴. 자기 장기에만 매몰되어 조직 전체의 자원 배분을 조율하지 못한 한계 직급 리더의 비극이었습니다.


다만 술트, 그루시, 미셸 네, 이 세 사람의 무능화를 '잘못된 승진'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사태의 절반만 보는 셈입니다. 이들의 자율적 판단 능력이 위축된 근본 원인은 나폴레옹의 극단적 마이크로매니지먼트에 있었습니다. 수십 년간 나폴레옹은 부하들에게 전략적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도록 훈련시킨 것. 부하들이 승진해서 무능해졌다기보다, 혼자서만 생각하고 결정하던 최고경영자가 자리를 비웠을 때 조직 전체가 뇌사 상태에 빠지는 '조직적 관성'이 문제의 뿌리였다고 봐야 합니다.


여기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가 역설한 '마찰(Friction)'의 변수도 더해야 합니다. 전날 쏟아진 폭우로 땅이 진흙탕이 되면서 포병 진입이 지연되었고, 나폴레옹은 오전 11시가 되어서야 첫 포격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연이 만들어 낸 지연이 블뤼허의 프로이센군에게 워털루에 도착할 결정적 시간을 선물한 것입니다.


거시적 관점으로 시야를 넓히면, 워털루의 패배는 경쟁사인 영국-프로이센 연합군 최고경영진(웰링턴과 블뤼허)의 '전략적 제휴(Strategic Alliance)'와 상호 신뢰 자본(Trust Capital)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웰링턴은 병사들을 능선 뒤에 엎드리게 한 뒤 결정적 순간에 화력을 집중하는 유연한 역사면 방어 전술을 구사했고, 블뤼허는 큰 타격을 입고도 끝내 방향을 돌려 연합군을 구원하러 왔습니다. 프랑스의 강점을 학습하고 상향 평준화된 경쟁사들 앞에서, 구시대의 낡은 지배구조로 전장을 통제하려 했던 나폴레옹의 필연적 파산. 부하들의 승진 실패와 조직 구조의 결함, 그리고 경쟁사의 진화가 한꺼번에 겹친 결과였습니다.



에필로그: 승진장을 사형선고서로 만들지 않으려면


궁예는 야전에서 보여 준 카리스마로 왕좌에 올랐지만, 정치적 타협이라는 새 언어를 배우지 못해 자신이 세운 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같은 시대의 견훤은 그 다음 관문—후계 구도 설계—에서 걸려 넘어져 자기 아들의 손에 유폐당한 꼴. 조착은 법률 기획에서 일류였기에 재상의 자리를 얻었지만, 위기관리라는 근본적으로 다른 근육을 키우지 못해 자기가 모신 황제의 칼에 스러졌습니다. 술트, 그루시, 미셸 네는 각자의 전장에서 탁월한 실무자였지만, 거시적 조율과 독립적 판단이라는 상위 직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제국을 진흙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 사건들 모두, 피터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결이 있습니다. 피터의 법칙이 전제하는 '안정적 조직 내 합법적 승진'에 제일 가까운 사례는 조착이지만, 조착조차 전략적 순교자였을 가능성이 그 프레임을 흔듭니다. 궁예는 자기가 자기를 왕에 앉힌 창업자이므로 '창업자 함정'에 더 가깝고, 워털루의 장군들은 유능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인재풀이 바닥나서 배치된 측면이 강합니다. 하나의 프레임으로 역사를 깔끔하게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세 사례가 공유하는 메커니즘—실무에서 검증된 역량이 상위 직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은 프레임의 적합도와 무관하게 반복되었고, 그 반복 자체가 피터의 법칙을 빌려올 이유입니다.


피터의 법칙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수렴합니다. '잘하는 일'과 '올라간 자리가 요구하는 일'은 같은 것인가? 세 시대, 세 대륙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다릅니다. 근본적으로.


현장의 스타 플레이어에게 관리직을 주는 것은 기업에서 오늘도 반복되는 관행입니다. 최고의 영업사원에게 영업부장 자리를 주고, 최고의 개발자에게 CTO 자리를 줍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보며 "왜 갑자기 무능해졌지?"라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실력은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것은 자리인데, 일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을 뿐. 피터의 법칙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불편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유능한 사람은 계속 올라가다가 결국 능력이 통하지 않는 자리에 도달해서야 멈추게 됩니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직장인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궁예도, 조착도, 워털루의 장군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뿐.


물론 현실에는 완충장치가 있습니다. 피라미드 구조상 위로 갈수록 자리가 줄어드니, 한계 직급에 닿기 전에 승진이 물리적으로 막히는 경우가 대부분. 피터 본인이 '창의적 무능(Creative Incompetence)'이라 부른 전략—승진 제안이 왔을 때 의도적으로 사양하는 선택—도 있습니다. 궁예에게, 조착에게, 그루시에게 이 선택지가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램 차란의 리더십 파이프라인이 강조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승진은 보상이 아니라 전환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버리고 새로운 역량을 처음부터 다시 장착하는 과정. 조직이 이 전환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도 있고, 개인이 자기 한계를 직시하고 현장에 남는 용기를 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환 없는 승진이 무엇을 불러오는지는 이미 역사가 충분히 보여 주었습니다. 승진장이 사형선고서가 되지 않으려면, 올라가는 순간 과거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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