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과 사회심리학으로 해부한 '간신'의 탄생 메커니즘

조직의 눈과 귀를 넘겨준 군주들

by 연구소장

프롤로그 — 수백 년째 침을 맞는 동상


지난 글에서는 간신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는지, 그 기술의 해부에 집중했습니다. 정보를 독점하고, 충신의 가면을 쓰고, 조직을 쪼개어 지배하는 — 간신이라는 기생충의 작동 방식. 이번에는 그 후속편으로, 간신은 왜 탄생하는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간신을 만들어내는 수요의 구조, 그리고 간신 대신 양신을 선택한 군주들의 사례를 함께 살펴봅니다.



중국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 호숫가 북쪽에 악비묘(岳飛墓)가 있습니다. 남송의 구국 영웅 악비의 무덤 앞에는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는 철제 동상 두 개. 재상 진회(秦檜)와 진회의 아내 왕씨입니다.


이 동상들은 명대(明代)에 처음 세워진 이래 수백 년째 침을 맞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지나가면서 진회의 동상에 침을 뱉고, 오물을 던지고, 욕을 퍼붓습니다. 관리 당국이 '침을 뱉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붙여놓았지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풍경. 직접 가서 보면 동상은 타액과 이물질로 뒤덮여 있고, 경고문만 무색하게 바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악비를 죽인 발주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은 황제 고종인데, 무릎을 꿇고 침을 맞고 있는 것은 진회뿐이라는 것. 고종의 동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황제는 역사의 심판대에서조차 빠져나간 셈. 수백 년에 걸친 이 분노의 향방이야말로, 고종이 설계한 '희생양 메커니즘'이 얼마나 정교하게 작동했는지를 증명하는 더없이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전편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하나의 불편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간신 뒤에는 반드시 간군(奸君)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명합니다. 간군은 왜 간신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유능한 군주 밑에서는 왜 간신 대신 양신(良臣)이 나타나는가.


세 개의 층위로 파고듭니다. 첫째, 최고경영자가 간신을 '발주'하는 수요의 구조. 둘째, 간신이 인재 시장 자체를 파괴하여 조직을 파산시키는 시스템 붕괴의 과정. 셋째, 간신 대신 '합법적 반대자'를 발주하여 조직을 살린 정반대의 사례. 간신의 공급이 아니라 수요를 추적하는 것, 그것이 전편의 후속작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1장. 수요자 층위 — 남송 고종과 진회

굴욕과 숙청의 외주화, 그리고 희생양의 탄생


1편에서 고종과 진회의 관계를 '주범과 종범의 역전'이라는 짧은 한 단락으로 다룬 바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구조의 내부로 들어갑니다. 간군이 간신에게 정확히 무엇을, 어떤 절차를 거쳐 발주했는지. 그리고 그 대가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전가했는지를 해부합니다.


필요한 프레임은 두 가지입니다. 경영학의 '외주화(Outsourcing)' — 내부에서 직접 처리하기에 비용과 리스크가 큰 업무를 외부 제3자에게 위탁하여 효율을 높이는 경영 기법. 그리고 르네 지라르(René Girard)가 체계화한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ing)' — 집단 내부의 극심한 위기와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 대중의 분노를 투사하기 쉬운 대상을 찾아내 처벌함으로써 체제의 결속과 안정을 꾀하는 사회적 방어 기제입니다.


이 두 프레임의 교차점에서 고종과 진회의 관계를 재구성하면, 이들의 거버넌스는 네 단계의 아웃소싱을 거쳐 완성되는 구조로 읽힙니다. 물론 이 단계는 당대 사료에 그대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현대 경영학의 렌즈로 재배열한 것입니다.


제1단계: 최고경영자의 소유권 딜레마


《간신들은 어떻게 정치를 농락하는가》의 기록과 당대 정세를 분석해 보면, 1127년 정강의 변으로 북송이라는 본사가 파산하고 강남으로 쫓겨와 남송이라는 신설 법인을 세운 황제 고종은 심각한 '소유권 딜레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금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전임 황제들 — 휘종과 흠종 — 이 무사히 귀환할 경우, 임시 CEO에 지나지 않았던 고종의 황좌는 즉각 정당성을 잃고 경영권을 반납해야 할 처지였습니다.


여기에 군부의 핵심 인재 악비는 무력을 키워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고 두 황제를 구출하겠다는 공격적인 북벌 — 일종의 성장 전략 — 을 맹렬하게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주주(백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악비의 군사적 성공은 국가적으로는 경사였으나, 고종 개인에게는 '구사주(舊社主)의 귀환'이라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초래할 위협이었습니다.


고종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합리적 선택은 현상 유지, 즉 경쟁사인 금나라와의 평화협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적국과의 평화'와 '전임 황제 구출 포기'를 황제가 직접 입에 올리는 순간, 백성과 사대부들의 거센 반발을 맞아 무형의 상징 자본 — 국가적 정당성 — 이 붕괴할 것은 뻔한 일. 평화 조약도 맺어야 하고, 통제 불능의 임원인 악비도 숙청해야 하지만,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쓰기는 싫었습니다. 발주서를 쓸 펜은 있되, 서명란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올라가야 하는 구조.


제2단계: 전략적 파트너의 등장과 '외주 계약'의 성립


이 거대한 리스크의 수렁에서 고종을 구원한 하청업체가 바로 금나라에 억류되었다가 돌아온 진회입니다. 진회는 고종의 은밀한 공포와 니즈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황제가 차마 짊어질 수 없는 굴욕과 도덕적 비난을 자신이 모두 대행하겠다는 암묵적인 '외주 계약'을 제시합니다.


진회는 남송 조정 내부에서 주화파(主和派)를 결집시키며 금나라와의 협상을 주도하기 시작합니다. 고종의 입장에서 진회는 이상적인 대리인이었습니다. 전임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옅었고, 오직 현재의 권력에만 집착했으므로 고종과 이해관계가 빈틈없이 맞아떨어진 것. 경영권을 지키려는 CEO와 국정을 독점하려는 2인자의 수요와 공급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역사상 더없이 악명 높은 아웃소싱이 가동됩니다.


이 '계약'이 성립하는 순간이야말로 간신이 탄생하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진회를 간신으로 만든 것은 진회의 간악한 성품이 아니라, 고종이라는 수요자가 발행한 발주서였습니다.


제3단계: 굴욕과 숙청의 전면 외주화


이 아웃소싱의 백미는 1138년 금나라 사신 영접 사건에서 드러납니다. 금나라 사신은 조서를 전달하며 남송 황제에게 '금나라 황제의 신하로서 무릎을 꿇을 것'을 강요했습니다. 남송 군민의 분노가 들끓는 가운데, 진회는 기막힌 우회로를 제안합니다. 황제가 상중(喪中)이라 예를 행할 수 없으니, 재상인 자신이 황제를 대리하여 무릎을 꿇고 조서를 받들겠다는 것.


고종은 즉각 수용합니다. 황제는 실질적인 항복 문서에 도장을 찍으면서도, 무릎을 꿇는 물리적이고 상징적인 굴욕은 진회에게 하청을 주어 자신의 알량한 체면을 지켰습니다.


나아가 고종은 악비를 제거하는 작업 역시 온전히 진회에게 위탁합니다. 진회는 '막수유(莫須有)' — 직역하면 '아마도 있을 것이다' — 라는 황당한 혐의로 악비를 하옥하고 독살했습니다. 증거도, 재판도 없는 처형. 더러운 칼자루는 철저히 진회가 쥐었고, 고종은 뒤의 장막에 숨어 묵인하고 최종 승인만 내렸을 뿐. 조직 내에서 누구도 직접 하고 싶지 않은 구조조정을 악역을 자처한 외부 컨설턴트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은 손을 씻는, 현대 경영의 냉혹한 꼬리 자르기 수법과 동일한 구조입니다.


제4단계: '희생양 메커니즘'의 완성 — 서호의 동상이 증명하는 것


악비의 죽음과 굴욕적인 조약 체결 이후, 모든 백성과 지식인의 분노는 오직 진회 한 사람에게만 쏟아졌습니다. 그 분노는 수백 년이 지나도 식지 않았습니다. 오늘날까지 악비묘 앞 진회의 동상은 침과 오물로 뒤덮여 있을 뿐.


그런데 이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분노의 부재입니다. 이 사기극의 설계자이자 최종 결정권자인 고종의 동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종은 천수(天壽)를 누리며 안락한 여생을 보낸 인물. 대중은 체제 자체(황제)를 부정하는 거대한 혼란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분노의 배출구로 진회라는 단일 희생양을 선택함으로써 심리적 위안을 얻은 것.


최고 권력자가 국가의 자존심을 팔아넘기는 의사결정을 내리고도, 그 결과에 대한 정치적 파산을 피하기 위해 특정 대리인을 희생양으로 제단에 던져버린 구조. 진회는 권력과 부귀영화를 대가로 기꺼이 고종의 방패막이가 되어 천고의 욕을 먹어주었습니다. 간신이란 결국 군주의 이기적인 리스크 관리 수요가 만들어낸 기생적 대리인이라는 점이, 악비묘의 이 풍경 앞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정치학자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퀴타(Bruce Bueno de Mesquita)의 '선택자 이론(Selectorate Theory)'으로 보면 이 구조가 한층 선명해집니다. 정치 지도자는 국가 전체의 공익(영토 회복)보다 자신의 권력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자신을 지지해 줄 최소한의 필수 핵심 지지층 — 금나라와의 교역으로 부를 축적하려는 강남 지주 및 주화파 관료들 — 에게만 자원과 권력을 집중 배분하고, 통제하기 힘든 거대 집단(군부와 주전파)은 배제합니다.


프레임의 경계 — 비겁함인가, 생존 전략인가


다만, 고종의 주화(主和) 선택과 악비 숙청을 순전히 '개인의 황좌 보존을 위한 이기적 탐욕'으로만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거세한 편협한 시각일 수 있습니다. 당시 남송과 금나라의 체급 차이는 자본금과 기술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부실한 벤처기업과 이미 시장을 장악한 글로벌 독점 기업만큼이나 컸습니다.


악비의 연전연승은 전술적 국지전의 승리였을 뿐, 국가 전체의 펀더멘털로 볼 때 남송이 금나라를 밀어내고 중원을 수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였습니다. 지속적인 전쟁은 강남의 열악한 재정을 파탄 낼 위험이 다분한 상황. 악비를 처형하고 굴욕적인 화의를 맺은 것은 고종의 비겁함 이전에, 신생국 남송이 물리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이자 타협의 산물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를 최고경영자의 권력욕으로만 치부하면, 당대 국가 존망의 위기감을 지나치게 축소하게 됩니다.


뒤집어 보면 — 굴욕 외교가 낳은 경제 기적과 테크노크라트 진회


이 사건의 층위를 경제사적 관점으로 돌리면, 상반된 해석이 도출됩니다. 《전쟁기획자들 —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따르면, 진회가 주도하고 고종이 승인한 화의의 대가로 남송이 금나라에 바친 막대한 세폐(은과 비단)는 조공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 막대한 유동성이 북방으로 흘러 들어가 금나라 사람들의 구매력을 폭발시켰고, 금나라는 다시 남송의 차, 도자기, 기호식품, 서적 등을 대량으로 수입합니다. 결과적으로 남송의 수공업자들과 상인들은 쏟아지는 주문을 감당하며 유례없는 경제적 활황과 상업 자본주의의 만개를 맞이하게 됩니다.


고종과 진회의 굴욕적 외교는 단기적으로 국가의 자존심을 팔아먹은 매국 행위였지만, 거시경제적 관점에서는 파괴적인 소모전을 멈추고 자국의 막대한 무역 흑자와 내수 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잉태시킨 '거시경제 턴어라운드 전략'이었다는 — 꽤 불경스럽지만 설득력 있는 — 반론이 성립합니다. 이 관점에서 진회는 맹목적인 주전론에 맞서 국가의 재무 건전성을 지켜낸 냉혹한 테크노크라트(Technocrat)로 재평가될 여지마저 있습니다. 간신과 테크노크라트 사이의 경계가 이렇게 모호하다는 것. 역사의 불편한 진실 중 하나.



2장. 시스템 붕괴 층위 — 이임보의 인재 축출

부패한 악화는 어떻게 유능한 양화를 구축하는가


1편에서 이임보가 포도넝쿨(비공식 네트워크)을 장악하여 황제를 폐쇄시스템에 가두는 과정을 해부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정보를 독점한 이임보가 그 독점적 지위를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 인재 시장 자체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적용할 프레임은 경제학의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과 경영전략론의 '진입 장벽(Barriers to Entry)'입니다. 그레셤의 법칙은 영국의 재정가 토머스 그레셤이 주창한 이론으로, 귀금속 함량을 줄인 나쁜 돈(악화)이 시중에 풀리면 사람들은 가치 있는 좋은 돈을 장롱 속에 숨겨두고, 결국 시장에는 악화만 유통된다는 원리입니다. 현대 조직론으로 확장하면, 사내 정치에만 능한 무능한 직원이 유능한 직원을 조직에서 쫓아내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개념. 진입 장벽은 마이클 포터의 경쟁 전략 이론에서 강조되는 개념으로, 시장을 선점한 기존 독점 기업이 신규 경쟁자의 진입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쌓아 올린 구조적 장애물을 뜻합니다.


승진 사다리를 끊어버리다 —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절단


《간신들은 어떻게 정치를 농락하는가》에 따르면, 8세기 중반 당 제국에는 변방을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운 무장이나 중신을 중앙의 재상으로 발탁하는 전통적인 인사 제도가 있었습니다. 기업으로 치면 험지 — 해외 영업망이나 현장 공장 — 에서 훌륭한 실적을 올린 핵심 인력을 본사의 임원으로 승진시키는 건강한 '리더십 파이프라인'입니다.


이임보는 이 승진 경로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임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현종에게 "문인과 귀족 자제를 변방의 장수로 임용해선 안 된다"는 정책을 건의하여 관철시킨 것. 당대 사료에 남아 있는 이임보의 명분은 '문인이 장수가 되면 화살과 돌을 겁낸다'는 논리였지만, 현대 경영학의 렌즈로 재구성하면 실상은 유능한 문인과 귀족 자제들이 변방에서 실적을 쌓고 내각 핵심부로 진입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거대한 '진입 장벽'을 세운 것으로 읽힙니다. 승진 사다리 자체를 치워버렸으니,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도 이임보가 앉아 있는 재상의 자리까지 올라올 물리적 경로가 사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다 — 통제 가능한 무능력자들의 전성시대


진입 장벽을 세워 유능한 인재(양화)들의 유입을 막은 이임보는, 그 빈자리를 철저히 악화(惡貨)들로 채워 넣었습니다. 이임보는 변방의 사령관 자리에 소수민족 출신의 학문적 소양이 부족한 자들을 의도적으로 앉힌 것. 안록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임보의 계산은 이랬습니다. 이들은 중앙 정계에 정치적 기반이 없으므로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지 못할 것이며, 오직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통제 가능한 하청업체가 될 것이라는 판단. 조정과 군부의 핵심 요직은 모조리 이임보의 패거리나 이임보에게 아부하는 자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나 이 역선택(Adverse Selection)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유능한 인재가 멸종하고 통제 불가능한 이민족 군벌만이 거대한 무력을 쥐게 되면서, 조직의 펀더멘털은 속부터 무너져 내립니다. 결국 안록산의 난이라는 거대한 주주 반란(내전)이 터지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대당 제국은 멸망 직전의 상태로 내몰리는 뼈아픈 부도를 맞게 됩니다. 충성스러운 무능력자를 고르고 골라 앉혀놓았더니, 그 무능력자가 제국을 통째로 뒤집어엎은 것.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격언이 이렇게 처절하게 증명된 사례도 드뭅니다.


프레임의 경계 — 자연스러운 도태인가, 폭력적 숙청인가


다만, 이임보의 인재 축출을 '그레셤의 법칙'으로 1:1 대입하기에는 미세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경제학에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국가가 정한 고정환율제도라는 시스템의 결함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이 수동적으로 좋은 돈을 숨기면서 발생하는 현상. 반면 당나라 조정에서 양화(유능한 인재)가 사라진 것은 시스템의 자연스러운 결함이 아니라, 이임보라는 한 개인이 감사망을 동원하고 언로를 차단하며 정적을 제거한 '능동적이고 폭력적인 숙청'의 결과였습니다. 시장 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도태라기보다, 반독점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불법적인 시장 교란 행위에 더 가까운 셈입니다.


뒤집어 보면 — 이임보는 위험한 외주업체였을 뿐


그러나 이 거대한 제국의 위기가 오직 이임보 한 사람의 교활한 꼼수 때문이라는 해석은, 사건의 본질을 반쪽만 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인사 평가 시스템이 무너진 토양을 제공한 것은 이임보가 아니라, 최고경영자인 황제 현종. 현종이 국정의 목표를 국가 발전이라는 정량적 KPI에서 자신의 사치와 심리적 편안함이라는 정성적 충성도로 변경한 순간, 시스템은 이미 붕괴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임보는 무능한 황제의 욕망을 성실히 대행한 '위험한 외주업체'였을 뿐, 진정한 붕괴의 진원지는 권력의 정점에 앉아 책임을 방기한 최고경영자 그 자체였습니다. 앞 장의 고종과 진회에서 본 구조가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간신은 수요가 있는 곳에 출현하는 법입니다.



3장. 대안 층위 — 당 태종과 위징, 고려 광종과 서필, 조조와 곽가

안티-예스맨 시스템, 혹은 합법적 반대의 제도화


앞의 두 장이 간신의 수요 구조와 그 파괴력을 해부했다면, 이번에는 거울을 뒤집어 봅니다. 최고경영자가 간신 대신 '합법적 반대자'를 발주한 사례입니다. 간신이라는 기생충 대신 레드팀이라는 백신을 선택했을 때, 조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메인 프레임은 두 가지입니다. 경영학의 '레드팀(Red Team)' — 조직의 핵심 전략이 지닌 취약점을 발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적의 관점에서 맹렬하게 공격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독립된 내부 비판 그룹. 그리고 조직행동론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이 주창한 개념으로, 조직 구성원이 보복과 징계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고 믿는 조직 내 공유된 분위기입니다. 아무리 좋은 레드팀을 꾸려도, 심리적 안전감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구조. 칼을 쥐어줘도 칼을 휘두르면 목이 날아간다는 공포가 깔려 있으면, 아무도 칼을 쥐지 않는 법입니다.


적의 참모를 영입하다 — 적대적 핵심 자산의 인수


《중국 4천년 역사를 이끈 포용의 리더십》의 기록을 보면, 당 태종 이세민은 형제들을 죽이고 아버지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습니다. 현대 경영으로 치면 피비린내 나는 경영권 분쟁이자,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회장이 된 셈. 이 패륜적 한계 때문에 태종은 반드시 압도적인 경영 성과를 내어 주주(백성)들에게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이때 태종이 선택한 방식은 놀랍게도, 적대적 인수의 대상이었던 형(태자 이건성)의 핵심 참모 위징을 자신의 레드팀 수장으로 발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정관정요》에 따르면, 태종이 "그대가 우리 형제를 이간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질책했을 때, 위징은 이렇게 맞섰습니다. "태자가 만일 저의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오늘의 재앙은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의 군주라면 즉시 참수했을 상황. 그러나 태종은 이 적장의 참모가 지닌 냉혹한 분석력과 직언의 가치를 꿰뚫어 보았습니다. 충성파로만 채우면 편하지만 무너지기도 쉽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간파한, 인적 자원 포트폴리오의 재편.


역린을 스스로 해체하다 — 심리적 안전감의 제도화


태종은 일시적인 관용을 베푸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에 '심리적 안전감'을 시스템으로 이식합니다. "용의 목 아래에는 역린이 있다고 들었소. 그러나 여러분은 군주가 화를 내는 것을 피하지 말고 각기 상소를 올리도록 하시오." 권력자의 역린 — 건드리면 죽는 그 비늘 — 을 스스로 해체해 버린 것. 손복가라는 신하가 직언을 하자 엄청난 가치의 공주 땅을 하사하며 "내가 즉위한 이래 간언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상을 준 것"이라고 공언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앞서 다룬 '조직 침묵'의 정반대편. 1편의 조직 침묵이 "말하면 죽는다"는 공포의 산물이었다면, 태종의 시스템은 "말하면 보상받는다"는 인센티브의 산물이었습니다.


충신 말고 양신 — 레드팀의 KPI를 재설정하다


위징은 태종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저를 충신(忠臣)이 아니라 양신(良臣)이 되게 해주십시오." 《정관정요》에 실재하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위징의 원뜻을 현대적으로 확장해 보면, 충신은 군주의 잘못을 맹렬히 간하다가 자신도 죽고 나라도 망하게 만들어 결국 군주를 폭군으로 역사에 남기는 자입니다. 반면 양신은 군주와 합심하여 천하를 태평성대로 이끌고, 군주를 위대한 성군으로 만드는 자. 위징은 레드팀의 목적이 'CEO와의 권력 투쟁'이 아니라, 철저히 '조직의 성장과 CEO의 성공'에 있음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쓴소리를 하되 적이 되지 않는 기술. 1,300년 전의 레드팀이 현대의 어떤 컨설팅 펌보다 정교한 포지셔닝을 보여준 장면입니다.


황후라는 안전장치 — 폭주를 막는 이사회


어느 날 태종이 위징의 직언에 극도로 분노하여 "그 시골 영감을 죽여 버려야지"라고 길길이 날뛸 때가 있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 장손황후가 더없이 화려한 예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나 "바른말을 하는 신하가 있다는 것은 폐하가 성군이시라는 증거이니 축하드립니다"라며 절을 올립니다. 폭주하려는 CEO의 감정을 진정시키고 레드팀을 보호하는 이사회의 제어 시스템으로 작동한 것. 좋은 시스템은 혼자 작동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보호하는 또 다른 시스템이 필요한 법입니다.


거울이 깨진 뒤 — 세 번의 상실


태종은 위징을 가리켜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내 행위의 옳고 그름을 알 수 있다(以人爲鏡)"고 칭송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상실되었을 때 역설적으로 증명됩니다.


643년, 위징이 사망합니다. 2년 뒤, 태종은 병석에 누운 방현령 등의 읍소를 물리치고 17만 대군을 이끌고 무리한 고구려 원정을 단행합니다. 결과는 안시성에서의 참담한 패배. 참패 후 돌아오며 태종은 뼈저리게 탄식했습니다.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 과인을 말렸을 것이다."


이 패턴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반복됩니다.


약 300년 뒤, 고려의 제4대 군주 광종(光宗)과 내의령 서필(徐弼)의 관계에서 동일한 구조가 나타납니다. 광종 역시 태종처럼 격렬한 권력 투쟁의 산물이었습니다. 태조 왕건의 넷째 아들로, 형들의 불안정한 재위를 지켜본 뒤 왕위에 올라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도입하며 호족 세력을 정면으로 견제한 개혁 군주입니다.


서필은 유력 호족 출신이 아닌, 하급 관료 출신의 대쪽 같은 성격을 가진 신하였습니다. 언행 하나하나가 촌철살인의 직언이었다고 전하는 인물. 광종이 내국 신하들의 가택을 몰수하여 쌍기(雙冀)를 비롯한 귀화인들에게 나누어줄 때, 서필은 광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차라리 제 집을 먼저 바치겠습니다. 제가 죽고 난 뒤 자손들 대에서 빼앗길 바에야, 미리 바치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날 선 비아냥. 광종은 분노했지만, 서필의 말에 느낀 바가 있어 신하들의 가택 몰수는 줄였다고 전합니다. 다만 호족들의 집과 별장은 계속 몰수하여 귀화인들에게 나누어주었으니, 서필의 직언이 정책 전체를 뒤집지는 못한 셈. 그럼에도 서필이 유력한 집안 출신이었다면 즉시 숙청당했을 것. 정치적 기반 없이 오직 직언의 날카로움으로만 신임을 얻은 사람이었기에 광종도 서필의 말만큼은 귀담아 들은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서필은 고려 외교사의 전설적 인물 서희(徐熙)의 아버지입니다. 서희는 993년 거란의 소손녕과 마주 앉아 논리와 직언으로 강동 6주를 얻어낸 인물. 아버지 서필이 군주에게 쓴소리하는 직언의 전통을, 아들 서희가 이민족 장수를 논파하는 외교술로 계승한 셈입니다. 직언의 DNA가 대를 이은 것입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965년, 서필이 병사합니다. 서필이 사라진 뒤 광종의 통치는 급격하게 변합니다. 참소를 믿어 사람을 다수 죽이고, 역대 훈신숙장들이 줄줄이 처형당하며, 경종 대에 살아남은 구신은 겨우 4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필이라는 거울이 깨어진 뒤, 광종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의 폭주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더 멀리, 같은 패턴이 또 있습니다. 후한 말의 조조(曹操)와 곽가(郭嘉). 곽가는 조조가 "나의 대업을 이룰 자는 이 사람밖에는 없다"고 평가한 핵심 참모였습니다. 조조 스스로가 "매번 큰 일이 있거나 적을 맞이할 때 의사결정을 못 내리고 있으면, 곽가가 이를 이루어 주었다"고 술회했을 정도. 곽가가 살아있는 동안 조조는 여포를 격파하고,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고, 오환을 정벌하며 승승장구했습니다.


207년, 곽가가 서른여덟의 나이에 풍토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208년, 조조는 적벽대전에서 손권-유비 연합군에게 참패합니다. 참패 후 조조는 탄식했습니다. "곽봉효가 살아있었다면 내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 명의 군주, 세 번의 상실. 태종은 "위징이 살아있었더라면"이라고 직접 탄식했고, 조조는 "곽봉효가 살아있었다면"이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광종의 경우는 서필 사후 공포정치로 급격히 기울어진 사건의 흐름이 그 탄식을 대신합니다. 기록된 말은 없지만 벌어진 일이 말보다 웅변하는 셈.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거울 상실 → 자기 과신 → 전략적 실패'라는 공식은 동일합니다.


조조에게는 왜 간신이 없었는가 — 분산형 레드팀의 구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고종에게는 진회가 있었고, 현종에게는 이임보가 있었는데, 조조 주변에는 왜 간신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첫째, 조조는 '유일재사거(唯才是舉)' — 오직 재능만으로 뽑는다는 인사 원칙을 내걸었습니다. 1편에서 다뤘듯, 성과 평가 시스템의 KPI가 '충성도'로 바뀌면 아첨꾼만 살아남는 역선택이 발생합니다. 조조는 그 반대로, KPI를 '실전 능력'에 고정시킴으로써 간신이 발붙일 토양 자체를 없앴습니다.


둘째, 조조에게는 순욱, 순유, 곽가, 가후, 정욱 등 다수의 참모가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태종이 위징 한 명에게, 광종이 서필 한 명에게 '거울' 역할을 집중시킨 것과 달리, 조조는 여러 명의 거울이 서로를 교차 검증하는 분산형 레드팀 구조를 운용한 것. 한 명이 빠져도 나머지가 작동하는, 이른바 '이중화 시스템'. 곽가가 죽었을 때 조조가 참패한 것은 그 이중화마저도 핵심 노드를 잃으면 흔들릴 수 있다는 한계를 보여주지만, 조조의 조직은 곽가 사후에도 붕괴하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위징을 잃고, 광종이 서필을 잃은 뒤의 참상과 비교하면 분산형 구조의 복원력이 훨씬 높았던 것입니다.


셋째 — 그리고 이것이 무엇보다 불편한 각도인데 — 조조 자신이 한(漢)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간신 그 자체였습니다. 황제를 끼고 정권을 농단한 '권신'. 간신이 주변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간신 역할을 조조 본인이 직접 수행했기 때문에 굳이 대리인이 필요 없었다는 역설적 해석도 가능합니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 손으로 칼을 쥔 군주에게는, 칼을 대신 쥐어줄 간신이 필요하지 않은 법입니다.


프레임의 경계 — 인격에 의존한 시스템의 한계


현대 기업의 레드팀이나 감사위원회는 정관과 법률에 의해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됩니다. 회장이 바뀌어도 시스템은 굴러갑니다. 그러나 태종의 레드팀은 이세민 한 명의 도량에, 광종의 레드팀은 서필 한 명의 생존에, 조조의 분산형 시스템조차 조조 개인의 인사 철학에 온전히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인치(人治, Rule by Man)'의 한계입니다.


태종 사후 레드팀은 후계자에게 승계되지 못했고, 광종 사후에도 서필의 직언 시스템은 제도로 남지 못했으며, 조조의 위나라 역시 사마의(司馬懿)에게 권력을 찬탈당합니다. 셋 모두 제도를 만들었으나, 그것을 '영속적인 지배구조(Governance)'로 법제화하는 데는 실패한 것. 조직의 미래를 한 사람의 인품에 맡기는 순간, 그 시스템의 수명은 그 사람의 수명과 같아진다는 교훈입니다.


뒤집어 보면 — 위징은 브랜딩 도구였을 뿐인가


위징의 레드팀 역할이 훌륭했던 것은 사실이나, 반대 시각도 성립합니다. 위징의 끝없는 도덕적 간언은 군주의 신속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규제 리스크(Regulatory Risk)'로 작용하여 국정의 유연성을 떨어뜨렸다는 실용주의적 비판이 가능합니다. 더 냉소적인 해석도 있는 것. 형제들을 도륙하고 권력을 잡은 태종이 '폭군'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성군'으로 포장하기 위해, 위징을 의도적인 'PR(Public Relations) 도구'로 이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입니다. 냉소적이지만, 쿠데타로 집권한 군주가 '간언을 수용하는 성군' 서사를 의도적으로 연출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에필로그 — 서호의 동상 앞에서


다시 항저우 서호의 악비묘 앞으로 돌아갑니다.


무릎 꿇은 진회의 동상은 오늘도 침을 맞고 있습니다. 경고문은 여전히 무색하고, 방문객들의 분노는 수백 년째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읽은 뒤라면, 그 장면이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침을 맞는 진회의 동상은 희생양 메커니즘의 증거이자, 고종이 설계한 리스크 전가의 걸작이라는 것. 진짜 발주자는 역사의 심판대에서조차 빠져나갔습니다.


세 개의 장을 거치며 하나의 공식이 선명해졌습니다. 고종은 진회라는 간신을 발주했고, 현종은 이임보라는 간신을 묵인했고, 태종은 위징이라는 양신을 발주했고, 광종은 서필이라는 양신을 곁에 두었으며, 조조는 곽가를 포함한 복수의 양신을 시스템으로 운용했습니다. 리더가 무엇을 발주하느냐에 따라 간신이 오거나 양신이 오는 구조. 간신은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의 산물이었습니다.


전편에서 우리는 '비밀번호를 나눠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편의 교훈은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비밀번호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 진회에게 맡길 것인가, 위징에게 맡길 것인가, 아니면 조조처럼 여러 명에게 분산시킬 것인가 — 그 선택지를 설계하는 것 자체가 리더의 일이라는 것.


다만 역사가 증명하듯, 위징을 선택한 태종조차 위징이 사라진 뒤에는 폭주했고, 서필을 곁에 둔 광종조차 서필이 죽은 뒤에는 공포정치에 빠졌으며, 분산형 시스템을 구축한 조조의 위나라마저 결국 사마의에게 먹혔습니다. '좋은 발주서'를 쓸 수 있는 리더의 안목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격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인격이 흔들리는 순간 함께 무너집니다.


그래서 진정한 답은 발주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발주하든 레드팀이 작동하도록 설계된 지배구조에 있습니다. 리더의 도량이 아니라 정관(定款)이, 군주의 관용이 아니라 법률이 직언을 보호할 때, 비로소 거울은 깨지지 않습니다.


서호의 동상 앞에서 침을 뱉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볼 일입니다. 당신의 조직에서 발주서를 쓰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발주서에는 무엇이 적혀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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